"과거 20개의 세기(世紀) 중, 중국이 세계 제일의 풍요를 누렸던 기간이 18개 세기에 달한다." 역사를 공부한 사람이라면 다 아는 이야기이며, 새삼스러울 게 없습니다. 이 전제로부터 어떤 결론을 이끌어내는가 하는 건, 개인의 세계관과 성향에 따라 다를 뿐, 정답이 따로 정해진 바는 없습니다. 정답이 따로 정해져 있다고 한다면, 그것부터가 벌써 전체주의적 불길함을 풍기는 언사입니다.
이 책의 원제는 <중국미래 30년>으로, 우리말 번역본의 저 제목은 원제의 느낌을 잘 살려 옮겨졌다는 생각입니다. 말이란 게 언제나 아 다르고 어 다른 법이어서, 주어진 선택지 위에 얼마든지 다른 가능성도 있기 마련입니다. 막상 일을 해 보면, 의도에 부합하고 많은 이의 공감을 유도할 수 있는 멋진 안이 도출되기가 그리 쉬운 게 아닙니다.
덩샤오핑이 지명한 장쩌민이, 1999년 일본을 방문하여, 땀을 뻘뻘 흘리며 와세다대 학생들의 송곳 같은 질문에 답하느라 곤욕을 치르던 걸 본 기억이 납니다. 불쌍하기도 하고 한심하기도 한 모습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런 모습도 다 "도광양회"의 일종이 아니었을까 싶기까지 합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오늘날의 중국을 만들어 낸 가장 직접적 기여자이자, 현재까지도 살아 있는 실세 장쩌민은, 거의 신화적 존재로 회고되고 평가되는 중이라서입니다. 진정 이런 걸 두고 격세지감이라는 표현을 써 줘야 할 것 같습니다.
어떤 일이든 처음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고, 그것이 어엿한 모습을 형성하기까지의 과정을 보면, 뭔가 어설프고 마뜩지 않습니다. 다 자라서 세상에 제 활개를 펴는 모습을 볼 때면 그제서야 소급 재평가가 내려지며 "아 본래 될성부른 싹이었어." 같은 아부, 찬양이 이어지는 거죠. 하지만 중국은, 불과 몇 십 년 전만 해도 "거지 국가, 야만인들"의 평가를 면하지 못했습니다. 지난 18세기가 어쨌다구요? 대륙의 제국은 소수 지배층의 소유였을 뿐, 절대 다수 인민은 그저 농노의 신세를 못 면하는 비참한 반 짐승의 처지나 다름 없었습니다.
여튼 중요한 건 현재입니다. 로버트 포겔은 앞으로 10년 후, 중국의 국내 총생산은 미국을 앞지를 것이라 예측합니다(이 책은 2011년에 초판이 나왔습니다. 포겔의 해당 논문은 앞뒤 내용으로 짐작건대 2008년경에 쓰여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중국의 구매력 기준 GDP가 미국을 능가했다는 발표가 나온 건, 이 서평을 쓰는 시점 기준으로 바로 그제입니다. 책을 읽는 분들은 참고하십시오). 포겔의 논문은 사실 이 책에 왜 끼었는지 좀 의문입니다. 나머지 글들과 성격도 맞지 않고, 심지어 평소 쓰곤 하는 그의 글들과 비교해서도 스타일이 좀 튀는 편입니다.
필자들의 붓 놀리는 모양새란 도도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들이 그처럼 자랑스레 여기는 공맹의 도, 군자의 마음가짐이란 간데 없고(공산 중국의 기초를 놓은 이가, 바로 문화대혁명을 주도하기도 한 마오라고 하죠? 공자고 뭐가 다 때려 없애라고 했던?풋), 그 예전, 조공국에 와서 경복궁을 보고 "삼각산 아래 일개 기와집이구나!"하며 조롱했던 자의 오만함이 가득 배어납니다.
민주주의가 아닌 민본이랍니다. 이 민본은 서구에서 배워 온 게 아니라, (편리할 때만 또 등장하는) 맹자의 가르침이 그 연원이라는 거죠(그렇게 민본을 잘 베풀어서 수천 년 동안 농민반란이 쉴 틈도 없이 일어났었는지). 다수결의 원리는 이익 집단의 권력 투쟁 유발 원인에 지나지 않는답니다. 진정한 공동체의 조화는, 지금 공산당이 행하는 것처럼 "집정 집단"에 의한 과두적 통치가 바람직하다는 거죠. 분권 역시 엘리트 지배의 기만적 담보 장치에 지나지 않으므로, 권력이 집중되되 소관 업무가 나뉠 뿐인 "분권"이 바람직하답니다.
현재 중국이 고전 중이면 씨도 안 먹힐 선전인데, 잘나가고 있는 중이니 이런 말도 태연하게 할 수 있습니다. 국민들의 수준을 고려할 때, (대만처럼) 소모적 정쟁에 빠져들기라도 하면, 나라가 어떻게 되겠는가? 정치적 논쟁에는 가급적 빠지지 말아야 한다는 말까지 있습니다. 이것은 이미 자국 인민의 성숙함을 (전에도,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믿지 않는다는 뜻이며, 국호인 "인민공화국"이 무색한 자가당착의 결론입니다. 손문(쑨원) 선생이 이 모습을 보았다면 과연 뭐라고 했을까요?
패권국이란 타의 모범이 될 장점을 많이 갖추어야 합니다. 막고, 가리고, 가두고, 조작하고, 억누르는 정치 체제가 아무리 국부를 많이 축적한다 한들, 그로부터 이웃 나라가 뭘 배울 수 있겠습니까? 앞으로 30년은 그들이 말하는 한 갑자(甲子)의 절반인데, 수천 년이 지나도 미신적 수비(數秘)론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을 보며, 안타깝기도 하고 불쾌하기도 합니다. 하긴 남을 탓할 때가 아니죠. 지금 우리의 모습은? 솔직히, 30년은커녕 당장 3년 뒤 어떤 꼴이 되어 있을지가 아찔할 정도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