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에 쓴 인생론
박목월 지음 / 강이북스 / 2014년 8월
평점 :
품절


<밤에 쓴 인생론>은, 민족의 시인, 국민적 시인이라 일컬어지는 목월의 수상록입니다. 영식 박동규 교수님의 두 책을 읽고 나서 비로소 알았지만, 목월은 뻬어난 산문가이기도 하며, 그 주옥 같은 산문 속에 인생의 본질을 꿰뚫은 통찰과 지혜를 가뜩 담아낸 스승이기도 했다는 사실이 참 신선했습니다.

 

이 책은 시인 목월 자신이 직접 쓴, 다양한 출처의 산문을 모아 놓은 것입니다. 이미 예전에도 출간된 적이 있지만, 이번에 예쁜 장정과 현대적 편집으로 새로 나온 고전이라고 하겠습니다. 고전은 시절을 거쳐도 그 빛이 바래지 않고, 읽을 때마다 읽는 사람에게마다 새로운 깨달음을 주는 게 특징이라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서 저는, 욕심 없고 정도(正道)를 벗어나지 않는 삶을 살면서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고 나의 가족 나의 친구에게까지 고루 그 행복을 전파할 수 있는 삶이 무엇이인지를 깊이 생각해 보게 되었어요.

 

이 책은 시인 목월의 비교적 젊은 시절까지를 두루 다루고 있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일제 강점기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는 않더라도, 한국전 직후나 자유당 집권기처럼 아직 목월이 젊은 혈기와 열정을 간직하던 시기에 쓰여진 글들이 다수 실려 있어서 그렇습니다. 물론 글들은 대부분 목월의 1인칭 시점입니다. 그러나 목월 자신이 워낙 전설적 존재이다 보니, 우리는 1인칭으로 쓰여진 글에서도 화자의 시선으로 대상을 보지 않고, 대상과 화자를 동시에 관찰하는 쪽으로 자연스럽게 독서가 가능해지는 느낌입니다. 이 이유는, 보통의 경우야 화자의 전달, 표현에 신뢰를 보내면서 그 대상에 집중하게 되지만, 다른 이도 아닌 전설적 시인 목월이 무엇인가를 이야기하면, 그 "무엇"보다는 오히려 그를 말하는 화자에 더 시선이 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책의 독서는, 저에게 이중의 레이어를 가졌습니다. 하나는 물론 목월 자신의 가르침을 경청하고 내 것으로 새기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내가 알던(물론 부정확하고 오류나 선입견도 많지만) 목월과, 이런 주제를 두고 이런 말을 하는 목월의 태도나 분위기로부터 추론 가능한 목월의 모습 사이에서, 미세하게나마 느껴지는 그 차이를 느끼는 은근한 각성의 쾌감입니다. 이 책은 그래서, 목월의 가르침과, 인간 목월을 동시에 공부하는 보람이 있었다고나 하겠습니다.

 

목월 역시 인간이었는지라, 사모님과의 동반 행로가 마냥 평탄하지만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매우 조심스러운 대목이고, 제 지식(으로부터의 기대)과는 많이 어긋나기도 하고, 책에서도 분명하게만은 다뤄지지 않아서 이 독후감에서 적기가 조심스럽지만, 목월처럼 성자에 가까운 분도 살아 오신 인생 내내 마냥 가정적이지만은 않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 책에 실린 첫 글은 사모님이, 목월과의 첫 만남과 시모 되시는 어른의 당부, 그리고 힘든 시련의 시기를 회고한 글입니다. 시인의 배우자로 사는 그 고단함과, 남모를 보람, 그리고 그 시인을 빼닮은 자제들을 교육하는 일의 숭고함을, 그 극히 일부나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 책 역시, 아드님 박동규 교수님의 모습이 살짝이나마 등장합니다. 첫 월급을 받아 양친께 드리는 모습, 아직은 어렸던 다른 아드님의 (요즘 아이들에게서는 볼 수 없는 어른스럽고 의젓한) 모습, 그로부터 알 수 있는, 딱히 가부장적이지도 않으면서 전통적 모범으로 간주되었던 우리네 옛 가정의 풍경을 머리 속에 선하게 복원할 수 있었지요.

 

따뜻합니다. 찬바람이 휘몰아치고 밖에는 정체 모를 들짐승이 울부짖는 황량한 밤이 아니라, 그저 화롯불에서 속 든든히 밤이나 까먹고 할머니가 들려 주시는 옛이야기 외에 어떤 간난도 근접지 않은, 안온한 겨울밤만 연상되는 그런 "밤에", 가장 진실된 도덕과 명철한 논리를 지닌 스승이 들려 주는 "인생론'입니다. 읽고 읽고 또 읽고 싶습나다. 가을, 겨울, 봄, 그리고 태양이 작렬하는 여름에도 맑은 톤의 피붓빛을 잃고 싶지 않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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