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를 디자인하라 - 비즈니스 프레젠테이션을 성공으로 이끄는 20가지 전략
러스 웅거 & 댄 윌리스 & 브래드 넌널리 지음, 추미란 옮김 / 정보문화사 / 2014년 7월
평점 :
절판


사실 영어 단어 "디자인"에는, "기획하다, 설계하다"의 뜻이 더 우선입니다. 그러니, 우리 한국인들이 대뜸 이 단어에서 "미술적 아름다움"만을 떠올리는 건, 우리만의 오해요 원칙에서도 벗어난 일이라 하겠습니다. 최근에 들어 소위 "혁신의 아이콘"으로 자리잡은 애플의 성과와 평판 때문에, "이제는 기능 뿐 아니라 겉모습도 상당히 중요하게 되었나 봐."처럼 생각하는 건, 그런 의미에서 좀 오해에 가깝습니다. 잡스나 조니 아이버의 생각이나 의도는 "올바른 모양에서 최선의 기능이 나온다"는 원칙론에 가까운 것이었기 때문이죠.

 

그래서, "대화의 기획, 설계" 역시 그런 관점에서 접근해야 합니다. 저는 이 책을 다 읽고 난 지금, 저자(들)의 의도 역시 그런 것이었다고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라고 해도, 그 생각이, 생각을 짜낸 이의 머리 속에 머물러 있는 이상, 그 사람의 외계를 향해 어떤 유익한 결과를 빚어내지 못함은 당연합니다. 생각이 성과를 내려면, 외부와의 유의미하고 효과적인 소통을 거쳐야 합니다. 효과적인 소통을 거쳤다고 해서 반드시 좋은 결과가 나오라는 법은 없지만, 목적지에 가려면 일단 다리를 놀리고 걸어야 하듯이, 올바르게 걸음을 걷는 방법을 몸에 익히는 건, 그 사람의 가진 체력(때로는 의지 포함)을 최대한 활용하게 한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바른 디자인에서 바른 기능이 나오고, 바른 (운동) 자세에서 최대한의 효과와 파워가 발휘되며, 대화를 하는 시스템과 관습, 룰이 올바로 잡혀 있을 때 모임의 성과가 극대화되는 건, 다 같은 이치의 결과입니다. 이 책은, 요즘 많이 출판되는, "어떻게 하면 획사에서 열리는 그 많은 회의를, 무용지물 아닌 성과의 장으로 바꿀 수 있을까?'하는 고민을 덜어 주기 위해 나온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그런 말을 합니다. "회의 많이 하는 직장치고 제대로 된 곳 없다. 회의를 다 없애 버려야 한다." 그런데, 이런 분도 "소통의 중요성"은 강조를 합니다. 회사가 조직인 이상 회의를 없앨 수는 없습니다. 회의가 문제가 아니라, "소통이 안 되는 잘못된 회의"가 문제입니다. 우리 나라 사람들은 어려서부터 "대화하는 교육, 토의하는 버릇"을 학교에서 가르쳐 주지 않기 때문에, 직장에서도 자기 의견을 효과적으로 전달할 줄을 모르고, 남의 의견에 일단 귀 기울인 후 그 장점, 단점을 정리해서 전체 분위기를 생산적으로 바꾸는 데에 전혀 익숙하지 않습니다. 결국 몇몇 소수끼리 뭉쳐 "뒷담화까는" 자리가 가장 신나는 자리이며, 아예 중상 모략의 장으로 회사를 변질시키기도 합니다. 안 되는 조직은 이래서 안 되는 거지, 회의가 많아서 안 되는 게 아닙니다.

 

이 책은 일단 "촉진의 기술"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요즘 대세가 또, 이 "촉진"의 방법을 일러 주는 책들의 기획이더군요. 그럴 수밖에 없죠. 앞에서 제가 적은 대로, 말은 많은데 전부 각개약진입니다. 오히려 독재자(즉 사장)가 이끌고 가는 것만도 못한 결과가 나오며, 실제로 그 많은 회의가 다 무용지물이며 결정은 다 사장이 합니다. 그런데 이 결과는 사원 모두가 꺼리는 상황이며, 실제로 사장 역시 이 분위기를 마냥 즐기는 것만은 아닙니다. 머리를 여럿 맞대게 헸으면, 그 머릿수만큼의 성과가 나오는 게, 사장 입장에서도 월급이 아깝지 않을 테니까요.

 

그렇다면 이 "촉진"이란 무엇이냐. "일을 술술 풀리게 하는 것"입니다. 1) 일단 대화가 잘 풀려야 합니다. 사원들이 각각 좋은 아이디어를 내놓고 있습니다. 잘만 뭉치게 하면 작품 하나 나옵니다. 그런데 서로 오해, 감정 싸움 때문에 말이 얽히고 꼬이며, 이 때문에 그 좋았던 아이디어가 다 묻히고 맙니다. 2) 일단 대화가 잘 풀렸다면, 전체 기획안의 성사를 위해 이 대화의 성과가 최대한 반영되게 "촉진"해야 합니다. 촉진(퍼실리테이팅)은 바로 이 두 가지 의미에서 요구되는 것입니다. 그 중에서도, 이 책은 1)에 더 비중을 두고 있습니다. 2)는 주로 경영자가 조직 구조 개편 과정에서 고민해야 할 분야이니까요.

 

대화를 두고 일정 룰과 틀을 만들어서 행하는 관습에 거부감을 느끼는 분도 있습니다. "그건 상황에 따라 융통성 있게 해야지, 틀을 짜면 더 비효율적이야." 이 말도 일리가 있지만, 우리나라 회사처럼 중구난방, 아니면 정반대로 일방통행식 지시 하달인 환경에서는, 초보적 룰의 정립이 꼭 필요합니다. "를을 정립"한다고 하면 그런데 너무 경직화한, "초등학교 발표, 토의"처럼 수준이 떨어져 버릴 수 있으므로, 이 책(그리고 다른 논자와 주장들)은 한 발 물러서서 "원칙적으로 자유롭되, 대화가 막다른 골목에 몰렸을 경우에 활용하는 '촉진술'"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보통 대화 촉진 기법을 다룬 다른 책은, 단일 저자가 자신만의 체계를 세워서 독자에게 전달합니다. 이런 책은, 머리에 정리하기는 쉽지만 실제 응용을 해 보면 좀 힘든 수가 있었습니다. 1) 미리 상정한 경우의 수가 적다. 2) 이 체계에 대해 다른 성원이 거부감을 느끼면, 회의 전체에 적용하기 힘들다. 반대로 이 책은, 1) 다양한 저자들이 다양한 상황을 가정하여 의견을 펴고 있다. 2) 하나가 안 되면 다른 방법을 꺼내 쓸 수 있다. 는 게 좋은 점이었죠.

 

그러나 아쉬운 점도 있습니다. 독자가 기대한 건 대회 촉진술인데, 여기에 등장한 많은 분들은 명강사가 상당수입니다. 물론 우리는 PT 자리에서 많은 "청중"을 상대로 내 의견을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능력도 키워야 합니다. 그러나 더 많은 상황에서는, 회의 자리에서 중구난방이 되기 쉬운 의견을, 나라됴 나서서 정리하는 게 더 시급한 상황인데, 이 책에서 다룬 "촉진'은 포커스가 좀 분산되어 있다는 느낌이었습니다. 여기에, 한국과 미국이 서로 회사 소통 환경 면에서 크게 다르다는 점도, 책의 효용을 보다 직접적인 것으로 하지 못하는 하나의 장벽이었고요.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주로 관리자, 경영자 입장에서 참고해야 할 것 같았습니다. 번역이나 편집은 아주 깔끔합니다. 통독보다는 레퍼런스 용도로 더 탁월한 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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