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날 좋아할지도 몰라 라임 향기 도서관 9
이성 지음, 김윤경 그림 / 가람어린이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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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을 향해 두근거리며 설레는 마음을 갖는다는 건, 어렸을 때, 그리고 젊었을 때만 갖는 특권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 중에서도, 성(性)에 대해 채 관념이 없을(요즘 아이들은 또 그렇지 않다고 합니다만) 초등생 시절에, 예쁘고(혹은 멋지고) 맘 착하게 생긴(공부까지 잘하면 금상첨화죠) 이성을. 때로는 간절하게 때로는 애타는 마음으로 그리던 추억은,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는 소중히 새겨진 정신의 한 결입니다.

 

이름이 남자 같아서 간혹(정말 간혹만) 놀림도 당하는 준영이는, 전학을 좀 자주 다녀 친구를 오래 못 사귈 뿐 예쁘고 키 크며 마음 착한 여학생입니다. 그렇다 보니 전학 오자마자 새 학교에서 두 남자 아이에게 관심을 받게 되는데, 하나는 개구장이이자 여자애들 사이에서 악명 높은 유승민이고, 다른 한 명은 이 학교의 킹카라 할 최지훈입니다. 둘은 참 대조적인 개성을 가지고 있는데, 공부 잘하고 얼굴 새하얀 최지훈과는 모든 면에서 반대인 유승민과, 새로 전학 온 박준영은 짝이 됩니다.

 

단발머리를 한, 성질 드세고 앙칼진 강세나는, 여성만의 직감(?)으로, 자신이 평소 좋아해오던 최지훈의 관심을 이 전학생이 빨리도 독차지했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이런 세나의 동향에 대해, 지우와 유림이 같은 여러 친구들은 준영이에게 조심하라고 조언해 줍니다(세나는 나중에 얘들과 대판 싸우고, "마귀할멈" 소리까지 듣습니다). 워낙 매력이 많은 지훈이에게 자신 역시 마음을 빼앗겼다는 걸 준영이도 알고 있지만, 과연 이런 감정을 가져도 되는 건지, 지훈이 같이 인기 많은 애는 정작 날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는데, 나 혼자 좋아하면 창피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에 마음의 갈피를 못 잡습니다.

 

최지훈은 속마음을 잘 드러내지 않는 아이입니다(그래서 더 여자애들 애를 태우는 거죠). 박준영은 그런 지훈이가 의젓해 보여서 더 좋습니다. 의젓함과는 아주 거리가 먼 승민이 역시 어느 순간부터 장기인(?) "괜히 괴롭히기"를 포기하고, 짝 준영이에게 노골적으로 잘해 주려 듭니다. 착한 준영이는 그런 승민이의 마음도 잘 알기 때문에, 한편으로 미안해하고 갈등도 합니다. 준영이의 이런 행복해하면서도 갈팡질팡하는 "내 마음 나도 몰라"가, 이 성 작가님의 섬세한 필치로 곳곳에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저는 준영이 엄마와 아빠의 성격이 마음에 들고 재미있게 여겨졌어요. 준영이 엄마는 좋은 분이고 유머도 많지만, 가끔 해야 할 일을 잘 잊어버리는 등 그리 야무진 스타일은 아닌가 봅니다. 오죽하면 준영이에게, 시장 가기 전에 메모 좀 해서 가라는 말을 다 듣겠습니까. 목소리가 하이 소프라노이시라고 묘사되는데, 제 경험상 이런 아주머니들이 보면 꼭 이처럼 느슨한 면이 있으시더라구요. 부인처럼 준영이 아빠도 참 성격 좋으신 분입니다. 직장 문제 때문에 자주 전학을 시켜야 해서 항상 준영이에게 미안한 마음이었던 아빠는, 그나마 격무에 시달리다 보니 딸 얼굴도 자주 못 봅니다. 이런 남편에게 준영이 엄마는, 다림질한 와이셔츠를 제때 준비 못하는 등 특유의 덜 야무진 모습을 또 보입니다. 그러나 두분은 초딩 시절부터 장기 연애(?)를 해 온 닭살 커플답게, 사이가 너무도 좋습니다. 그런가 하면 딸한테 서로 잘보이려고 상대의 약점, 비리(!)를 고자질(?)하는 등, 행복한 가정의 전형적인 모습을 징글징글하게 노출하고 있어요.

 

약간 스포일러가 되기 때문에 자세히는 이야기할 수 없지만, 준영이네의 이런 행볷한 모습이 상세히 나오는 건 이유가 있습니다. 요즘은 서구의 영향을 받은 탓인지 그리 드문 양상도 아니지만, 한부모 가정, 재결합 가정 등 자라는 아이가 스트레스깨나 받을 만한 환경이 주위에도 제법 많이 보입니다. 어쩌면 준영이가 나이와 달리 의젓하고 어른스러운 모습을 보인 건 다른 이유도 있었구나, 독자는 책을 읽어 나가며 생각하게도 됩니다.

 

이성 작가님 특유의 재미있는 표현이 많이 나옵니다. "통통 정육점에는 통통통 뛰어서 가야 하나?" "준영이 너는 돼지고기 사라갔다가 돼지를 잡아서 오는 거니?" "삼각 팬티, 아니 삼각 관계래요~." 등등. 그런가 하면, "지금 맞선 보냐?" ,"너희들 당장 그만 두지 못해?" 같은 말은, 과연 아이들이 그런 말을 쓸까 싶어 좀 어색하기도 했네요. 아무리 아동 문학 장르의 컨벤션을 감안해도 말이죠.

 

초등학교 시절이 눈에 선하게 기억나는 장면 묘사가 언제나처럼 좋았습니다. 초등학생 시절밖에 할 수 없는 "스포츠"인 피구를 하는 아이들의 모습은, 예나 지금이나 다른 게 없는 것도 있구나 하는 생각에, 책장을 넘기다 말고 한동안 생각에 잠기게 하더군요. 준영이 같이 여리여리한 여자아이나, 승민이 같이 운동 신경 좋은 남자아이가 함께 어울려 할 수 있는 운동은 피구하고 발야구 뿐이죠. 중학생만 되어도 남자 아이들의 완력이 너무도 비약적으로 발전하기 때문에, 같은 남자애들끼리라도 안전 사고에 주의해야 할 상황이 벌어지곤 하죠.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정겨운 그 시절을 달콤쌉싸름하게 떠올리게 해 주는, 김윤경 선생님의 유머러스하고 따스한 그림이 돋보이는 좋은 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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