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백과사전 - 고대부터 인간 세계에 머물렀던 2,800여 신들 보누스 백과사전 시리즈
마이클 조던 지음, 강창헌 옮김 / 보누스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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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신 백과사전"이란 시작부터 모순과 난점을 포함하는 기획일지도 모르겠습니다. OO 백과사전이란 개념이 성립하려면, 먼저 그 OO이 무엇인지에 대한 개념적 합의부터 이뤄지거나, 최소한 집필자가 자신의 책에서 그 개념의 외연과 내포가 각각 어디부터 어디까지를 의미하는지 분명한 범위를 정해 줘야 합니다.

 

하지만 제가 이 책(특히 서문)을 꼼꼼히 읽어 봐도, 이 "백과사전"이 주제로 삼고 있는 "신"의 의미가 무엇인지, 분명히 제시한 대목은 찾기 힘들었습니다. 톨스토이의 어느 작품에 나오는 말처럼, "어디인지도 모르는 곳에 가서 무엇인지도 모르는 것을 구해 오라"는 식의, 집필자이건 독자에게건 너무도 어렵고 대담한 작업을, 이 책(상당히 두껍지만, 시도하려는 목적의 난이도에 비하면 이 정도 불륨도 그리 넉넉해 보이지는 않네요)은 다소 무모하리만큼 론칭하고 있는 인상입니다.

 

본문을 보면, 나르키소스, 보디사트바(보살님), 여동빈(도교의 신선) 등의 항목도 나와 있습니다. 우리 개념으로는 이들은 신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서양식 사고와 종교 관념의 그 어떤 입장에서 이들을 이 "백과사전" 항목에 넣었는지도 그리 명확하게 설명되거나, 암묵적으로 전제되어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어떤 스킴 상의 엄정성이 부족하다거나, 논리적, 혹은 구조적으로 빈약한 토대 위에 서 있다거나 하는 이유로(아니면, 요즘 흔하게도 거론되는 인문적 고민의 빈곤 따위로 딴지를 걸 수도 있습니다), 이 책을 비난하거나, 혹은 시선도 주지 않고 경멸할 독자는 그리 많지 않아 보입니다. 왜냐 하면, 책이 너무 재미있기 때문이죠.

 

그림이나 시각적으로 이해를 도와 줄 자료가 없다는 건 아쉬움입니다. 그러나 이 책은, 신적 존재라고 생각되는 다양한 상상 속의, 혹은 종교상의 엔트리들을, 교집합이 아닌  최대 영역 포괄의 합집합으로 포함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그리스 신화 안에서조차 신의 위상이 아닌 여러 캐릭터들을 "하급 신"이란 모호한 범주로 포섭한 건 얼핏 보아 고개가 갸웃거려집니다.

 

다시, 하지만, 상관 없습니다. 뭐 어떻습니까. 인간성을 초월한 존재, 널리 신성을 지닌다고 인정되는 존재, 우리 인간의 상상력과 종교적 심성을 오래 동안 사로잡아 온, 우리가 그들의 피조물인지, 반대로 그들이 우리의 피조물인지 헷갈리는 그 숱한 정령과도 같은 존재들을, 이처럼 "통통한" 책 한 권에 놓고 알파벳(이 한국어판에서는 가나다) 순으로 정렬시켜 보는 것도, 필멸이어서 슬프고 반(反)불멸이도록 발칙한 우리 인간들만의 특권이 아닐까 합니다.

 

가장 배타적이요 타의 인정을 강하게 거부할 것 같은(그래서 다른 "신"들과 함께 이 책에 실리는 걸 매우 싫어했을 것 같은) 야웨("야훼" 항목은 여길 다시 참조하게 합니다). "알라"보다는 길지만, 다소 짧고 싱거운 설명입니다. "알라"는 이 존재가 이스람 세계에 알려진 이름이라고 설명되는데, 두 분(?) 다 서로 불쾌해할 만한 언급입니다. "나는 나로다." "야, 네가 나였어?"

 

중동에 야웨, 알라가 있다면, 우리 동양에는 옥황상제가 있고, 이 항목이 실제로 나옵니다. 인도의 창조신 브라마는. 거의 한 페이지가 넘어가는 분량입니다. 이 책에서 가장 자세히 설명된 신 중 하나입니다.

 

별의 신 부다(Budha)도 있고, 우리가 부처님으로 아는 붓다(Buddha)도 있습니다. 역시 약간 실망스럽게도, 설명은 길지 않습니다. 아마도 "신"적 의미에서의 붓다에 대해서는 할 말이 그리 많지 않은지도 모르겠습니다. 부처님을 믿는 분들도, 그분이 신이라서 믿는 동기는 아니라고 봐야 하니까요. 같은 "종교"라는 카테고리에 속하지만,  동과 서가 갖는 종교 관념, 혹은 신에 대한 개념은 서로 이만큼이나 큰 차이가 나는 것 아닐까 생각도 해 보았습니다.

 

기독교에서 삼위일체 교리에 의해 분명한 "신"으로 여겨지는 "예수"는, 이 책에 나오지 않습니다. 이런 태도는 저자가 "신"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이 책을 편집했는지 어느 정도 짐작을 가능케 합니다. 마호멧은 이슬람에서도 그저 "예언자"일 뿐이므로 당연 엔트리 제외입니다.

 

일본의 신도에서 언급하는 신, 그리고 건국 신화에서 언급하는 신은 참 여럿이 나옵니다. 천조대신(아마테라스 오미카미)뿐 아니라, 부엌의 신, 목수들의 신 등 전통 관념과 설화에 등장하는 존재가 거의 뻐짐 없이 나옵니다. 일본의 신화 모티브가 이처럼 풍성했나 하는 생각이 들곤 했습니다. 한국의 환웅이나 단군 왕검은 나오지 않습니다. 이 책의 성격을 감안하면 자격이 아주 없는 것도 아닌데, 다만 지명도가 좀 떨어지는 탓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중국의 삼황 오제는 물론 빠질 수 없었겠죠.

 

특히 미네르바의 어원, 기원을 설명한 부분이 좋았습니다. 처음에는 아테나와는 별개의 존재였다가, 우수한 이웃 문명의 영향을 받고 자신들의 관념을 통합, 혹은 대체시킨 결과라는 사실을 지적합니다. 왜 Venus가 본성에 반하게 남성형인지도 이 관점에서 시사 받는 바 있습니다.

 

저자는 특히 이쪽의 전공자가 아니었을까 싶게, 이 책은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의 각종 신화에 등장하는 신, 혹은 신적 존재들을 잘 정리하고 있습니다. 다소 소략해서 아쉽지만 페르시아의 아후라마즈다 역시 빠질 수 없습니다. 아리만은 이 책의 자매편인 <악마 백과사전>에 나오지 않을까 싶었는데, 이 책에서 바로 다루더군요.

 

백과사전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다고 해서 주눅 들거나, 정말 참조용(레퍼런스)로만 쓸 필요는 없습니다. 그냥 재미삼아 아무데나 펴서 읽어 나가도 됩니다. 미미르 등 북유럽 신화에 등장하는 존재도 거의 빠짐 없이 다루고 있으므로, 판타지 소설 애독자에게 필요한 책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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