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만 광년의 고독 속에서 한 줄의 시를 읽다 - 류시화의 하이쿠 읽기
류시화 지음 / 연금술사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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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령 선생의 <축소지향의 일본인>을 읽으면, 삼라 만상을 규격화한 틀에 짜 맞추어 욱여넣되 그 미니멀리즘의 미학 추구에서 최상의 쾌감과 안도감을 느끼는 일본인 본연의 습성에 대해 논급한 부분이 나오죠. 서양인들은 특히 19세기 이후 자발적으로 개항하여 세계를 향해 마음의, 그리고 시스템의 문을 열어 젖힌 일본을 "발견'하면서, 이 미니멀리즘의 집약적 성취인 "하이쿠"라는 시문학 장르에도 관심을 주기 시작합니다.



그 결과는 오늘날에 보듯, 하이쿠 문학의 세계적 인지도 달성입니다. 아직 시문학 분야에서의 성취만으로 노벨 문학상을 탄 일본인은 나오지 않았고, 노벨 문학상의 성격상 하미쿠 전문 시인이 이 상을 받기도 힘들겠지만, 여 튼 하이쿠는 이제 일본인만의 문학이 아닙니다. 세계인이 그 존재에 대해 알고, 직접 창작하기도 하며, 문학을 넘어 타 예술 장르에서도 그 영향을 스스로 입는 일이 흔합니다. 이 책에서도 류 시인이 언급하지만, 레마르크의 소설을 바탕으로 한 영화 <서부 전선 이상 없다>는, 그 엔딩 씬을, 바로 하이쿠 시인 부손(蕪村, 무촌)의


나비 한 마리

절의 종에 내려앉아

잠들어 있다


를 염두에 두고 구성한 것입니다.



이 책은 400년에 걸친 일본 하이쿠 문학의 최고 정수만을 뽑 아(선집이기는 하나 양이 방대합니다), 우리말로 해석하고, 이에 대한 상세한 해설을 류시화 시인이 달아 놓은 내용입니다. 해설은 장르 전반에 대한 게 아니라 개별 작품론이지만, 개별 작품론이 워낙 충실하고 시인의 정열과 애정이 담겨 있다 보니, 각론을 공부하며 자연스럽게 총론이 습득되는 매력과 장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이쿠의 문학적 개성과 매력, 역사, 전통에 대해 전혀 모르는 독자라도, 아름다운 각각의 명편 명구 절창을 감상하며, 자연스럽게 하이쿠가 무엇인지 알게 될 것입니다. 사실 시란 느끼고 몸에 배게 하는 것이지, 공부해서 이해하는 대상이 아니니까 말이죠. 



알 다시피 하이쿠는 세상에서 가장 짧은 시입니다, 길이가 그냥 짧은 것도 아니고 17음으로 정해진 틀에서 가장 짧다는 건, 이 시가 자유시 아닌 정형시라는 걸 이미 전제로 합니다. 사실, "가장 짧은 시"가 정해져 있다는 건 그 자체로 모순입니다. 어느 시인이 짧은 한 마디 감탄사를 내뱉으면, 그게 바로 세계 신기록을 수립하는 단가(短歌)이지 뭐겠습니까? 그러므로 하이쿠는, 창작 과정에서의 기술적 난이도 외에도, 이미 정형시라는 전근대성을 핸디캡으로 안고 있는 모습입니다.



이 런 여러 한계(그것도 전근대적인)를 안고 있는 하이쿠 장르지만, 세계인들이 오히려 20세기 들어서, 그리고 그 이후에까지도 계속 관심과 애정을 보내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요? 그것은 컨텐츠가 안고 있는 모던함 덕분입니다. 하이쿠는 예를 들어,


무덤도 움직여라

나의 울음소리는 

가을 바람


-바쇼(이 책 p59)


처럼 처연한 감상을 상당히 노출하는 것도 있고,


벼룩 네게도

분명 밤은 길겠지

외로울 거야


-잇사(p21)


처럼 해학과 자조를 동시에 드러낸 작품도 있지만, 이런 것은 예외이며, 대부분은 극도로 감정을 절제한 스타일입니다. 최근 왜 저기 그 ... "생각하면(이해하면) 무서운 이야기" 따위가, 일본 것들이 소개되어 들어 와 우리 네티즌 사이에서 인기를 끌기도 했지 않습니까? 그야말로 필요 최소한의 진숢만 하되, 남은 의미의 여운과 해석은 독자(청중)에게 맡김으로써 더 큰 공감과 소통 효과를 낳는, 이러한 절제, 자제의 미학이야말로, 현대에 들어서도 이 장르가 큰 인기를 누리는 비결이 아닐까 합니다.



이 책은 네 명의 대가, 즉 바쇼, 부손, 잇사, 시키의 작품들이 주로 돌아가면서 소개되고, 그 사이사이에 다른 작가들의 대표작이 소개되는 형식입니다.  이 4인의, 장르에 대한 역사적 공헌이 지대하니 그게 자연스럽고, 한 권이 책이 지녀야 할 스토리, 레퍼토리의 통일성을 고려할 때, 시대를 넘어 서로 긴밀한 영향을 받았거나 바로 시적 적통(適通)을 이어받은 당사자들의 작품이 소개되는 편이, 초심자인 독자가 이해하고 접근하기에 편리합니다.



류시화 시인은 장르에 대해 정확한 구조적 해설을 베풀고 있을 뿐 아니라 개별 시에 대한 감상도 아주 몰입적으로 이뤄 주고 있습니다(물론 자신의 평가 뿐 아니라, 평단에서 이뤄진 정평 있는 코멘트를 소개도 하고 있지만요). 예를 들면


오래된 연못

개구리 뛰어드는

물소리


-바쇼


같은 것은, 시간적으로 과거와 현재, 청각적으로 정적과 그의 깨뜨림 등 대비되는 심상을 교묘히 압축해 놓았다고 해설합니다. 저는 그저 흔하면서도 유쾌한 찰나의 포착이라고 전에 이해하고 있었는데, 이 해설을 듣고 나서 완전히 달리 보이는 느낌이었습니다.


두 사람의 생

그 사이에 피어난

벚꽃이어라


이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동일 영혼의 전생 후생을 두 사람으로 보고, 그 간생(間生)의 잠깐만의 매개가 벚꽃이라는 의미인 줄 알았는데, 시인의 배경적 해설을 듣고 보니 지인과의 조우가 그 창작 동기더군요. 두 사람은 동일 공간에서의 별개 존재인데, 다만 벚꽃이 중재하는 공감을 하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하이쿠란 이름을 처음 붙인 사람도, 장르적 완성을 이룬 이도 시키(子規. 자규)입니다. 이 시키는 물론 명치 유신 이후의 근대인이며, 그의 삶과 다양한 일화에 대해서는 예컨대 시바 료타로의 <언덕 위의 구름> 같은 장편 소설에 잘 나와 있습니다. 책에도 소개되어 있지만, 20대 초반에 폐결핵에 걸렸으면 그 당시 의학 수준으로는 그대로 죽는 것인데요. 용케 30대까지 살아남아 현대인들에게 이런 선물을 많이 남겼죠. 저 "자규"만 해도, 우리 고려 시대의 이조년이 남긴 시조 "일지 춘심을 자규야 알랴만은, 다정도 병인양 하여 잠못 들어 하노라"에 나오는 바로 그 소쩍새를 가리킵니다. 예명이고 필명입니다. 이 자규는 두보 이래 임을 그리는 여인, 돌아오지 않는 벗을 사모하는 시정의 전통적인 상징이죠.


살짝 아쉬움이 느껴지지 않습니까? 우리에게도 절제미가 약간 떨어지긴 하지만, 3434 3434 3543의 멋들어진. 시조라는  장르 단가가 따로 존재하는데 말이죠. 우리의 근대사가 쇄국 정책 등에 의해 움츠려들고 국세를 펴 나가지 못한 질곡이 있었기에, 마땅히 조명 받을 가치가 있었던 문학적 유산이, 이웃 나라의 그에 비해 너무 묻혀 버렸다는 안타까움 말이죠. 더 안타까운 건, 우리 시조 문학은 우리 국내에서 애독되기에 적합한 예쁜 책도, 이처럼 좋은 모습으로 출간된 예가 드물다는 사실입니다.


저는 이 책을 다 읽고, 괜히 일본 것이다 뭐다 하며 꺼리는 심리에, 그동안 참 아름다운 예술의 감상을 스스로 차단했다는 아쉬움이 크게 들었습니다. 장르의 아름다움도 아름다움이지만, 그 깊은 경지의 완상(玩賞)을 도와 준, 오로지 류시화 시인만이 할 수 있는 해설 역시 큰 축복을 접한 듯했습니다. 무엇보다, 책이 참 예쁩니다. 하이쿠를 담기에 최적의 "그릇"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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