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즐거움 주식회사에 다닌다 - 즐거움이 곧 성과다
리차드 셰리단 지음, 강찬구 옮김 / 처음북스 / 2014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을 읽고 좀 충격을 받아서, 한동안 직장에서 일이 손에 잡히질 않았습니다.


지 금의 환경을 바꾸어야 살아남는다며, 조직에 대거 혁신을 가하고, 비능률 요소에 메스를 들이대는 노력은 주로 관리자 쪽에서 시도하게 마련이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잘 돌아가는 조직은 보통 "이대로도 해피한데?"를 말하며 대폭적인 개선 노력에 미온적입니다. 잘 돌아가지 않는 조직도, 일단 자기 밥그릇 보전에 골몰하는 과정에서, 혁신을 거부하고 타성에 젖을 수 있습니다. 부하들은 대체로 혁신을 달가워하지 않는 게 보통이고, 이런 반발이 있기 때문에 관리자 역시 그 효과가 확실하지도 않을 개조작업에 마냥 대담하게 나설 수도 없습니다.


리처드("리치") 셰리던은 사실, 엉망인 조직에 관리자로 취임하여 A부터 Z까지 모조리 바꿔 놓은 그런 혁신가가 아니었습니다. 그가 몸담았던 회사는, 최상의 성과를 내는 업계 최강의 경쟁력을 갖춘 곳은 아니었어도, 나름 평균치는 해 주는 건실한 업체였죠(저자는 자기 기준에서 아주 불만족스러운 듯 이야기했지만, 객관적으로 보아 그 회사는 큰 문제가 없는 곳입니다. 독자는 눈치 챌 수 있습니다). 그런데, 리치는 좀 달랐습니다. 그는 이미 10대 시절에 자신의 적성을 일찍 깨닫고 프로그래머의 길을 걸은 사람이며, 학생 시절에도 동급생을 넉넉히 앞질러 가는 공부 외에, 사회 활동을 병행하며 벌어들이는 수입을 주체 못 하는, 최고로 잘나가는 이 분야 엘리트였습니다. 졸업 후 여러 회사를 거치며 그 나이 또래 중에서는 가는 데마다 최고 대우를 받았고, 젊은 나이에 임원 취임을 눈 앞에 둔, 실패를 모르고 달려 온 인생이었습니다. 이제 남은 일은, 주위와 호흡만 잘 맞추고, 40대라는 비교적 이른 나이에 현업에서 다소 거리를 둔 채 넉넉하고 안락한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급여를 수령하고, 기업 임원이라는 사회적 지위와 위신을 마음껏 누리기만 하면 되는 위치였습니다.


good 과 great는 여기서 차이가 나는가 봅니다. 리치는 그 편한, 현명한 길을 굳이 거부하고, 주위와 많은 마찰을 빚는 선택을 감행했습니다. 그는 평소에, 자기가 몸 담았던 회사 내부에서 벌어지는 각종 비능률 요소, 원활하지 못한 의사소통, 충족되지 않은 성과 따위에 대해 큰 불만을 갖고 있었습니다. 사실 이런 건 조직이 완전 단일 인격체가 아닌 이상에야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부작용이고 삐걱거림입니다(최소한 우리는 그렇게 생각하죠). 그런데 리치는, 평소부터 이런 게 쌓이고 쌓인 스트레스의 주범이자 커다란 한이라도 되는 양, "일 못하고 성과 못 내는 조직을 근본적으로 뜯어 고치자!"며 일찍이 그 누구도 해 보지 못한 대수술을 조직을 향해 시도합니다.


대체 어떤 변화와 혁신을 조직에 적용하려 했는가? 사실 그 구체적인 내용은 리치 셰리던이 처음 창안한 건 아닙니다. 그는 단지, 평소 자기 조직에 "이대로는 안 된다"며 경 험에서 우러나온 많은 문제점을 막연하게 인식하고 있었을 뿐, 구체적인 대안을 조직화하여 떠올리지는 못했습니다. 그가 섬광처럼 영감을 얻은 출처는, 켄트 벡이라는 어느 이론가의 블로그에서 본 내용이었습니다. 이름하여 "익스트림 프로그래밍"인데 그 개략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작업 공간 개방하기 : 어느 회사건 부서별로 사무실이 나뉘어져 있고(안 그러면 그게 공장이지 사무실일까요?), 그 사무실 내에서도 개인별로 파티션이 구별되는 공간입니다. 직원은 조용히, 자기 업무를 진행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야 그게 회사가 베푸는 최소한의 배려가 됩니다.

켄트 벡은 이걸 다 없애라고 합니다. 회사가 도떼기 시장이 되어도 좋으니, 직원 간에 정직하고 효율적인 소통이 격의 없이 이뤄지는 게 더 우선이라는 취지입니다.


책의 중간 부분에 나오지만, 이 렇게 하면 업무 추진 과정에 문제가 발생했다. 혹은 누가 새로운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싶으면, 큰 소리로 주의를 전체에 대해 환기합니다. 소통은 그 자리에서 이뤄지고, 전체의 의견 수렴을 거친 후, 다시 진행됩니다. 칸막이가 없으니, 문제의 발생이건 해소건 간에 즉시 전 직원 사이에 정보가 공유됩니다.


2) 종이 카드에 손으로 글씨를 써 가며 프로젝트 관리하기

모 든 조직은 정보와 보고가 이뤄지는 라인과 체계가 있습니다. 없으면 그건 조직이 아닙니다. 이게 우리의 확고한 선입견이고 통념으로 간직하는 상식인데, 이걸 다 없애 버리라는 겁니다. 누가 종이에 써서 상황판에 게시하면, 다들 그걸 보고서는 "아 이게 문제구나.","음 저런 게 들어가야겠네."라며 바로 자신의 프로세스에 반영합니다. 책임 소재도 명확해지고, 전체로서의 프로젝트는 유기적 통합성이 향상됩니다. 상사르 통해 윗선에 보고하고, 이걸 검토한 후 타 부서에 지시를 하달하고.. 벌써 늦습니다. 파편화된 부서는 제할 일만 하면 다른 동료에는 무관심이니, 같은 팀, 같은 회사라고 부르기조차 어색할 수 있는데, 익스트림 프로그래밍에서는 이게 다 해소됩니다.


3) 프로젝트는 기간별로 나눠 관리하기


4) 둘씩 짝을 이뤄 업무 진행하기 : 사실 충격적인 건 이 부분입니다. 요즘은 초등학교에서도 개인별 책상배정이 이뤄지며, 둘씩 고정된 자리에 짝을 지어 앉는 건 어색합니다. 개개인의 개성이 중시되어야 자신의 적성에 잘 맞는 아이디어가 도출되고, 사고의 조직적 계발이 이뤄진다는 전제에서 비롯한 건데, 이 확고한 상식을 뒤집어 버리자고 그는 주장했습니다.


더군다나 그의 회사 "멘로"는 소프트웨어 개발 업체입니다. 프로그래머, 개발자들은 남과 떠들썩하게 어울리며 일을 하기보다, 자기만의 공간에서 조용히 사고를 정리하는 게 보통입니다. 실제로 이 구상을 리치가 (부사장의 위치에서) 직원(잘 알던 사람이기도 했습니다) 제안하자, "미친 소리", "리치, 그건 내 코드입니다. 모르시겠어요?" 같은 반발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이보게, 우리는 공개된 주식회사고, 직원이 개발한 프로그램은 회사의 소유, 즉 주주의 소유라고 생각하는데?" "젠장, 이건 내 코드란 말입니다!"


아무튼 화사를 완전히 말아먹을 각오를 하고 이 시스템은 도입이 되었습니다(리치 셰리던은 둘째치고, 경영진도 참 어지간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게 무슨 브라질이나 동남아도 아니고, 미국 실리콘 밸리 한복판에서 벌어진 일이라니). 그 결과는 어땠을까요?


1) 미국 내에서 성공 사례로 꼽혀, 회사는 자기 일을 할 뿐 아니라, 타 업체에서 견학 온 이들을 위해 일정 시스템을 마련해야 할 지경에 이릅니다.


2) 외국에서도 대학생 인턴을 받아 견습을 시킵니다.


3) 사실 켄트 벡의 초안이 아무리 구체적이었다고 해도, 모든 회사에 만능으로 적용 가능한 완성된 솔루션은 없습니다. 책 후반부에 나오지만, 저자 리치 셰리던 부사장은 그 구체적인 살붙이기 작업을 일일이 현장에서 상황에 맞게 수행해야만 했습니다. 그에게는 이것이 특별한 난제가 아니었는데, 생각지도 않던 "남의 생각"을 "내 조직"에 이식하는 작업이 아니라, 평소 그가 언제나 불만을 느껴 왔던 점을, 마침 좋은원군을 만나 초안 작성의 수고를 던 것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비록 타인, 외부인에게서 영감을 받았지만, 일을 실천에 옮길 때는 완전히 자기 호흡과 리듬으로 추진하고 있었습니다.


4) 직원들은 심지어 이렇게 말하기도 합니다.

"월급을 받지 말아야겠어요. 내가 즐거워서 하는 일인데 급여까지 받는다는 게 꺼려지네요."

입이 딱 벌어지는 반응입니다. 이제 회사 일은, CEO에서 말단 직원까지 동질화된 책임감으로 모두에게 다가온 것입니다. 이 책 제목 " 즐거움 주식회사"는 바로 여기서 연유합니다. 회사 일이 내 일이고, 업무의 성취가 나의 기쁨인데, 납기일이 늦어지고 품질이 떨어지고, 사고가 나면 책임 회피를 하기 급급하고... 이런 일은 이제 멘로에서는 찾아 볼 수 없습니다.


책 의 내용이 사실 모든 면에서 완벽히 검증된 진리는 아닙니다. 저자는 아무래도 자신의 소신을 걸고 이 조직 개편을 추진했고, 그래서 빚어진 부작용들은 책 내용에서 다소 그늘진 자리로 감춰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회사에서도, 성과를 못 내고 타 직원의 템포를 못 쫓아가는 직원은 밀려나는 게 당연합니다. 다만 재미있는 건, 짤린 직원도 이 멘로라는 회사의 분위기만은 정말 그리웠는지, "내 여길 향해서는 오줌도 어디 누나 봐라!"같은 원한이 아니라, 현재 직장의 상사를 모시고 와서 계약을 성사시키기까지 했다는 에피소드가 이 책에 나와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 이면에는 "우리 회사도 여기 멘로처럼 만들자구요, 네?" 같은 애교어린 희망이 자리하고 있었다 봐야 하지 않을지요?


책 의 구성은 약간 두서없는 편입니다. 저 같으면, 차라리 심풀하게 시간적 순서를 따라 적어 가고, 마지막에 "무엇이 문제였는데, 이렇게 해결되었다"고 전체를 요약 정리하는 식으로 책을 적었을 겁니다. 하지만 워낙 책의 내용, 저자의 증언이 충격적이라 다른 생각 할 겨를 없이 책 내용을 따라가는 독서가 되었습니다.


리 치 셰리던은 제가 앞에서도 말했지만, 전문 프로그래머로 커리어를 시작한 사람이지 경영자가 아닙니다. 이 책은 지금 소프트웨어 프로그래밍의 특성이나 현황에 대해 적은 책이 아니고, 일개 프로그래머 출신이 여태 어느 산업사회에서도 존재하지 않던 조직 형태를, 그럭저럭 돌아가던 중견 업체에 적용해서 큰 성공을 거둔 경영 혁신 사례를 소개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합니다. 기술 개발보다 더 어려운 게 조직 혁신입니다. 사람들의 타성이나 관행은, 물리적 한계보다 더 완강하게 현상을 유지하려 들기 때문입니다.


이노베이션은 확실히, 인적 자원의 자발적인 흥(興)을 돋우는 데서 이제는 그 원천을 찾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직원들이 이처럼 "즐거움"이란 동기로 업무에 헌신하는 모습은 일종의 경이에 가깝습니다. 또 하나 주목해야 할 것은, 책 후반부에 나오듯 리치 셰리던은 일일이 수작업으로 회사 조직 개편의 세부적인 상황까지 손수 점검하고 기능적 개선을 이뤘다는 사실입니다. 여기서 우리 기업들이 시사받을 점이 혹 있다면, 역시 디테일은 각 회사의 형편에 맞게 새로 짜 나가야 한다는 점이겠습니다. 이 익스트림 프로그래밍 체제를 수용한다 해도, 멘로에서 쓰던 알고리즘을 그대로 이식하는 건 아마 큰 부작용이 따르를 것으로 예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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