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장박동을 듣는 기술
얀 필립 젠드커 지음, 이은정 옮김 / 박하 / 2014년 7월
평점 :
절판


어느 잡지에서 그런 연구 결과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자신의 심장 박동 소리(혹은 타인의 것이라도)를 들은 사람은, 보다 더 도덕적인 행동을 하게 된다." 비유적인 의미가 아니라, 문자 그대로, 실험군과 대조군을 놓고 연구를 행한 결과가 그렇게 나왔다고 합니다. 여기서 실험 주제가 된 행위는, 담배 꽁초 함부로 버리지 않기, 교통 법규 잘 지키기 같은 것이었습니다만, 범위와 난이도를 확대해서 폭력, 낙태, 절도, 저작권 위반 같은 행위에 적용시켜도 왠지 같은 결과가 나올 것 같습니다.

 

 

인간의 본성은 과연 선할까 악할까. 이 질문에 대해서는 쉬운 답이 나올 수가 없습니다. 인류 역사에서 가장 현명하고, 때로는 가장 도덕적이기까지 했던 철학자들도 답을 내지 못했기에, 아마 후세에 들어서도 이 모호한 인식적 상황이 나아질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심장 박동 소리를 듣고도 악한 행동, 혹은 예전의 실수를 그대로 되풀이하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은 결코 선한 사람은 아닐 것 같다는 사실. 반대로, 생명의 근본이자 존재의 연원인 저 아득한 리듬에 새삼 접하게 된 후, 엄마 품에 안겨 자신의 (아직은 미약한) 생명력을 키워 나가던 그 시절을 희미하게나마 상기하는 사람이라면, 일시적으로 실수를 저질렀다 해도 곧 본연의 좋은 마음을 회복하리라는 어떤 기대를 가질 수 있습니다.

 

 

이 소설과 우연히 같이 읽게 된 다른 작품(<이웃의 아이를 죽이고...>)에도 그런 말이 나오더군요. "영혼과 영혼은 어느 순간, 서로가 서로를 알아보는 때가 온다. 둘이 같은 출발에서 나왔다는 걸. 둘이 서로 너무도 닮아 있으며, 서로가 상대의 부족한 점을 완벽히 채워 주리라는 사실을." 우리가 어디에서 왔으며, 무슨 인과 연이 서로 얽혀 현재의 모습, 관계를 가지게 되었는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다만 현세의 형편과 신분, 겉모습과는 무관하게, 저 먼 피안이나 전생에서 틀림 없이 어떤 각별한 사이로 엮였었기에, 광막한 하늘 아래 천행으로 이처럼 둘이 만나, 아웅다웅 알콩달콩 귀한 시간을 특유의 교감으로 물들여가는 관계가 되었다는 걸, 막연하게마나 느낍니다. 때로는 이런 단편적인 느낌이 모이고 모여, 종교적인 교의를 생성하기도 합니다.

 

 

애정 깊은 부모님 사이에서 태어나 많은 사랑을 받고 자란 건강한 아이가, 현세의 우리가 전혀 알 수 없는 어떤 법칙, 섭리, 운명에 의해 한 순간 눈이 멀게 된다는 건, 정말 세상에 천도가 있는지 극히 회의적인 결론에 도달하게도 합니다. 아무 죄 없는 아이가 극악의 불행에 빠지고, 불패천 불외지의 일탈자는 아무 탈 없이 한 세상 유복하게 마친다는 사실은, 얼핏 보아 정의니 도덕이니 하는 게 다 공염불에 불과한 것 아닌가. 그저 죽으면 끝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사람을 몰아 넣습니다. 인생은 정말 아무것도 아니고, 단지 자연계와 물리 현상, 각종의 환경 변수가 사람을 장난 하듯 몰아넣다 어느 순간 무작위로 나오는 랜덤의 노름패가 아닌가 하는 느낌도 듭니다.

 

 

눈이 먼 소년이, 아름답고 지체 높은(그러나 걸을 수가 없는) 소녀를 만나게 됩니다. 육안으로 볼 수 없지만 심안으로 그녀의 존재와 아름다움을 감지할 수 있는 그는, 우리가 보기에 불가능한, 그리고 치명적인 사랑에 빠지게 됩니다. "사랑에 눈에 멀다"는 표현을 흔히 씁니다만, 마음의 눈이 멀지 않았던 소년은 소녀와 사랑에 빠짐으로써, 나와 상대, 그 존재의 꽃을 활짝 피웁니다. 저주로부터 가장 숭고한 축복이 나온 셈입니다.

 

 

세상의 이치를 다 알 길이 없지만, 뭔가 악한 자, 저열한 영혼의 상식과 구미에 맞지 않다 싶은 일이 벌어지면, 반드시 그를 원위치로 돌려 놓으려는 훼방꾼이 등장하게 되어 있습니다. 업보를 갚는 게 그리도 좋으면 제 자신이 제 신체를 훼손해서 갚든지 하면 될 것을, 굳이 눈먼 조카에게 강요하는 고모부가 여기에 등장합니다. 이 자의 책동으로 인해, 둘은 헤어지고, 소년은 자신이 나고 자란 고장에서 멀리 떨어진, 그 겨레가 사는 곳 중 가장 번성한 도시인 랭군(양곤- 역자가 일일이 원 텍스트를 교정해 놓았습니다- 안 해도 되는 걸)으로 옮아가게 됩니다.

 

 

도시란 전통적으로 악, 타락, 음행이 집결한 장소를 상징합니다. 우 소는 여기서 외세와 결탁하여 큰 부를 모은 걸로 소문이 파다합니다. 눈먼 소년은 막연하나마 불길한 운명이 그를 기다리고 있다고 판단하고, 미밍과의 이별이라는 결과가 이것을 확인해 줍니다. 그는 눈을 뜨게 되지만, 영혼의 반쪽과 헤어진 그의 운명은 더욱 큰 번뇌에 가득하게 됩니다. 수도원에 있을 무렵 스님이 들려 주신 말이 생각납니다.
"육안의 밝음은 진리와 실체를 꿰뚫어 보는 데에 오히려 방해가 될 수 있다."
"인내는 시간을 무의미하게 만든다."
영혼의 깨침에서 비롯한 인내는, 시간 뿐 아니라 결국 공간까지도 무의미하게 만듭니다. 딸 줄리아는 이런 아버지, 어느 순간 갑자기 곁에서 사라진 아버지를 좇아 지구 반 바퀴를 돌아 와서는, 현인 우 바와 어느 커피숍에서 "말도 안 되는" 전설을 듣고 있습니다. 어느 순간 눈을 덮고 있던 비늘이 떨어지고, 아름다운 그녀는 자신의 초롱초롱한 두 눈이 미처 보지 못한던 것을 보게 됩니다. 산 속에서 사슴과 새를 맞이하는 옹달샘의 맑음처럼, 그저 착하고 선한 심삼만 가득한 이 장편을 읽으면서, 우리 역시 깨끗하고 티 없었던 초심을 회복하며, 괜히 눈 한번 비비고 감다 떠 보기를 반복합니다. 그리고 다시 눈을 감고는 귀기울입니다. 나의 심장, 나의 가슴이 전하는 소리에. 우리가 그토록 오래 잊고 있었지만, 우리가 꿈 속에서도 잊지 못하던 엄마, 고향, 자연, 우주, 섭리의 부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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