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미의 일본 가정식 요리 - 단순함, 간소함, 우아함 Everyday Harumi
구리하라 하루미 지음, 최경남 옮김 / 시그마북스 / 2014년 5월
평점 :
절판


외국 출장길이라면 정말 몸소 느끼게 되 는 일인데요. 서양인들은 진심으로 대접하고 싶은 손님을, 꼭 집 안으로 모셔서 자신의 솜씨로 빚은 식사로 맞이한다는 사실입니다. 아직도, 우리는 이런 문화가 많이 미비합니다. 그들의 이런 심리는, 우리가 마치 갓 친해지기 시작한 친구를 자기 집으로 데려와, 자신의 성장 과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앨범을 보여 주는 것과 어느 정도 비슷합니다. "이것이 나였고, 지금의 나를 만든 자취였어." 이렇게, 나에 대한 은밀한 구석까지 열어 보이는 행위야말로, 진정한 친교의 시작이니까 말입니다.


" 당신이 먹는 것이, 바로 당신 자신이다."라는 말이 있죠. 그런데, 여기서 "먹는 것"을 꼭 음식에 한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평소에 뭘 입고 다니는가, 집은 어떻게 해 놓고 사는가 같은, 당신의 스타일 그 총체가 바로 당신 자신이라는 뜻도 됩니다. 우리와는 달리, 서양인들은 대체로 농사를 지어도, 집단 노동(부락 단위의 품앗이라든지)에 의지하지 않고 개인(과 그의 식솔) 단위의 노고에 의지했습니다. 자연히, 음식 하나를 해먹어도 개인이나 집안 단위의 레시피에 의존합니다. 우리가 고유의 장맛이다 김치맛이다를 논하면, 어지간히 큰 규모의 부농, 양반가 출신이 아니고선 좀처럼 힘든 것과는 많이 대조되는 사실입니다.


요리하는 저자의 모습이 정말 행복해 보입니다.


이 책의 저자 구리하라 여사는, 일본에서 아주 유명한 요리작가라고 합니다. 유명한 요리사라고 하면 그만의 뼈어난 조리법을 많이 보유하고 있다거나, 이름난 곳에서 커리어를 많이 쌓았다거나 하는 과정을 통해 그 자리에 오를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요리 작가"가 되는 일은, "책" 안에 그만의 철학과 관점을 담아야 하기 때문에, 비법을 많이 지니고 솜씨가 뛰어난 것만으로는 힘들 것 같습니다.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두 가지 점에 주목했습니다. 하 나는, 구리하라 하루미 씨가, 자신의 모친으로부터 전수 받은 요리법을 매우 자주 언급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고서는 남성이 요리에 몰두하기가 어려우니, 요리를 배운다면 양친 중에 아버지 아닌 어머니로부터가 자연스럽겠습니다. 나 자신의 존재 그 정체성이, 나 1대에서 평지돌출한 게 아니라, 연원이 있고 내력이 있다는 건, 그 사람의 참된 자긍, 자기 존중감 형성에 큰 도움이 됩니다. 어머니(설사 아버지라고 해도)에게 배운 요리법이 있고, 주관적으로건 객관적으로건 세상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나만의 비법이라면, 이것을 현재 시행하고, 앞으로도 다른 이들에게 베풀어(맛잇는 요리를 타인에게 제공하는 건 분명 "베풂"입니다) 주는 일은, 내가 세상에 무엇인가 긍정적인 걸 만들어 공헌한다는 점에서, 정말 뿌듯한 일입니다. 맛있는 요리를 어머니(그 어머니 역시 자신의 어머니로부터 배웠을)에게서 배워 만들 줄 안다는, 그 사실로부터 비롯한 자신감은 누구보다 자신을 행복하게 만듭니다.


보기만 해도 군침이 넘어갑니다.


다 른 하나는, 어머니에게 배우거나, 스스로 개발. 발전시킨 요리법이, 내가 속한 문화권에서 어떤 의미가 있는지, 음식을 이런 식으로 해 먹고 산다는 게, 그 문화권의 사람들에 대해 무엇을 알려주는지에 대해, 구리하라 하루미 씨는 깊은 성찰을 하게 되었다고 토로한 점입니다. 그녀는 외국에 나가서, 그 다채롭고 진기한 각종 요리법을 접하고 나서야, 자신이 지닌 요리법의 문화적 의의를 깨달았다는 취지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우리 일본인들은 이런 걸 재료로 써서, 이런 방식으로 해먹고 산다." 를, 그녀는 귀국한 뒤에도 줄곧 곱씹게 되더라는 거죠. 요리는 이런 의미에서. 자기 성찰의 계기가 되기도 했나 봅니다. 일본의 먹거리 문화와 우리의 그것은, 물론 엄청난 차이를 보이지만 비슷한 점도 아주 많습니다. 구리하라 하루미 씨는 "다양한 식자재를 상비하고, 한 가지 주제로 식단을 다 채우지 않는 다양성"을 일본적 특징의 하나로 꼽고 있는데, 이 점 만큼은 우리도 상당히 공감할 수 있습니다. "상다리가 휘어지게"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 우리 역시 장류, 김치류, 젓갈류를 상비하면서, 한 끼니에 정말 많은 반찬을 제공하는 게 기본입니다. 


이 책의 장점은, 큰 판형에 선명한 사진, 그리고 모두 67종의 독립 아이템 조리법을 소개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책 후 반에 나온 토마토, 양배추 파트 중 몇 가지 역시 "그것만으로 메뉴가 된다"는 점에서 저는 67종에 세어 넣었고, 다만 책 맨 앞에 나온 7종은 소스와 드레싱이라는 점에서 계산에서는 제외했습니다(그러나 소스와 드레싱의 레시피는 다른 독립 요리에의 기여, 완성에 엄청 중요하다는 점이야 강조할 필요도 없겠죠). 요리 하나당 보통 크고 선명한 사진이 일일이 첨부되어 있고, 레시피가 그리 길지도 않아서 저 같은 초보자가 따라하는 데에 큰 부담이 없었습니다.


치킨 가라아게

월드컵 시즌이다 보니 (예전 같지는 않아도) 밤 늦게 치킨 같은 걸 시켜 먹기도 하는 요즘이죠. 닭고기를 튀겨 먹는 건 다 거기서 거기지 싶어도, 일본식은 간장, 마늘이 들어간다는 점에서 서양식과 큰 차이가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이 방법을 채용하여 개발한 메뉴가 모 프랜차이즈에서 큰 인기를 끈 것도 유명하죠. 제가 튀김 요리를 해 볼때마다 느끼는 건데, 튀김의 성패는 정말 기름의 어느 온도에서 담그어, 어느 시점에서 빼느냐입니다. 구리하라 하루미 씨는 이 메뉴의 경우 180℃를 제시합니다. 마요네즈와 함께 하루미 씨가 권유하는 건 시치미 도가라시입니다. 우리는 임시방편으로 고춧가루 같은 걸로 대용할 수도 있겠습니다.


두부 스테이크

저자가 이 책에서 한 챕터에 걸쳐 소개하는 요리 중에, 두부를 이용한 코스가 많습니다. 저자는 "외국에 가 가 봐도, 일본인처럼 두부를 즐겨 먹는 민족을 보지 못했다."고 합니다만, 아마 저자는 한국에는 큰 관심을 두지 않은 듯합니다. 한국인처럼 두부를 즐겨 먹는 이들도 없는데 말이죠. 이 요리는 간장 소스를 어떻게 잘 만드느냐가 중요하더군요. 특히, 불을 다 끈 후에 다시마를 넣어야 하고, 이걸 냉장고에 다시 넣어 보관을 한 뒤에 적용해야 한다는 게 힘들었습니다(그러나 맛을 내기 위해서라면...) 이건 물론 드레싱이고, 이 요리의 본체는 "두부를 팬에 구운 것"입니다. 이 요리 뿐 아니라, 아주 자주 쓰이는 게 "미린"입니다. pp19~39에서 소개된 다양한 재료를 어느 정도 미리 다 갖추어야만, 개별 메뉴를 따라해 보는 데에 무리가 안 생깁니다.

하여튼 이런 설명에서, 흔한 와사비 하나도 그냥 볼 게 아니라고 여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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