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20시간의 법칙 - 무엇이든 가장 빠른 시간 내에, 가장 완벽하게 배운다
조시 카우프만 지음, 방영호 외 옮김 / 알키 / 2014년 1월
평점 :
절판


1만 시간의 법칙이라는 "발견"이 열풍처럼 통용되고 유행한 적이 있습니다. 유행은 다소 가라앉았는지 모르지만, 어떤 이들은 이제 유행 차원을 넘어 아예 이 명제를 확립된 법칙으로 받아들이고도 있는 형편입니다.


카우프만의 이 책에서도 수시로 언급되는 말콤 글래드웰의 그 주장은, 주장 자체의 혁신성에 기대었다기보다는, 그의 현란하고 설득력 넘치는 언변에 의존한 바 컸다고도 보여집니다. "1만 시간의 법칙"은 사실 글래드웰의 순수 창의 소산도 아니고, 앤더스 에릭슨 박사의 실증 연구 결과 중 엑기스를 아름답게 추출하여 대중에 시연한 이상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비유하자면, 제품 자체의 탁월성보다는 마케팅 역량에 크게 힘입은 히트 상품에 유사하다고나 할까요. 1만 시간이란, 정상적으로 경제 활동을 하는 사람에게는 결코 적은 투자가 아닙니다. 단순 육체 노동으로 환산해도, 웬만한 사람에게는 막대한 기회비용을 발생시킬 자원입니다. 여간 재능이 부족하지 않고서야, 일만 시간을 투자해서 설사 달인까지는 될 수 없다고 해도, 상당한 결과가 나오지 않기란 그게 오히려 힘듭니다. 글래드웰의 그 법칙이 주는 매력은 1) 일단 누구나 공감하거나 이미 알고 있던, 그래서 기꺼이 동의를 보낼 수 있는 내용이고. 2) 누구에게나 공평히 주어진 시간만 일정하게 투자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그 "양적인 발상"에 혹할 만하며, 3) 설사 결과가 기대한 만큼 나오지 않았다고 해도 "나는 그러나 최선을 다했어!"라는 일종의 도덕적 숭고감을 느끼게 하기엔 충분하기에, "사후 회환"을 최소화한다는 점에서도 매력적입니다. 책임질 사람도, 패배한 사람도 없다는 견지에서, 이 "법칙"은 그 수용자보다 차라리 주창자를 winner로 만드는 캐치프레이즈입니다.


카 우프만은 이 책에서, 글래드웰의 그 언명과는 외관에서부터 큰 차이를 보이는 "처음 20시간의 법칙"을 이야기합니다. 무슨 뜻일까요? 눈치 빠른 분들은, "아, 1만 시간.. 하고는 뭔가 다른 입장인가 보다, 그와는 정반대되는 이야기가 펼쳐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지레 가질 만도 한 컨셉입니다. 사실, "1만 시간"이라는 말에 선뜻 기운부터 솟는 이들은, 시간을 금쪽 같이 관리해서 써 본 적이 없는 무경험자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앞서도 말했지만, 1만 시간은 결코 적은 시간이 아닙니다. 달인이 된다는 달콤한 결과 언급에 혹하지 않고, "여전히 힘들겠군.."이라며 고개를 흔드는 이들은, 오히려 이 책의 표제와 기조에 끌릴 가능성이 많습니다.


"당신은 지금 정반대로 말하는 것 아닌가? 1만 시간 정도 투자해야 원하는 결과가 나온다는 말은 차라리 덜 유혹적이지만, 20시간으로 뭐가 바뀐다는 주장은 오히려 요행을 부추기는 분위기 아닌가?" 이 책을 다 읽고 난 지금, 이런 가상의 질문에 대해 정면으로 답하기보다는, 저는 이 책의 내용 일부를 소개하는 것으로 간접 해명을 할까 합니다.


우선 제목이 풍기는 인상과는 달리, 그리고 책 서두와 중간중간에 글래드웰을 자주도 언급하고 있지만, 저자 카우프만은 결코 "1만 시간의 법칙"과 그 주창자를 "디스diss"하지 않습니다. 그렇기는커녕, 속마음이야 어찌 되었든 그는 "1만 시간의 법칙"에 대해 어느 정도는 경의를 표하는 듯한 인상마저 줍니다. 다만 이 와중에 슬쩍 그가 강조하는 포인트가 두엇 있습니다.


"우리들은 과연 독하게 1만 시간을 투자할 각오가 되어있는가?"

"1만 시간을 투자하여 달인이 되고 싶다는 마음에 어느 정도 진정성이 갖추었는가?"

"1만 시간씩이나 투자하고서 소정의 결과가 안 나왔을 경우, 그 보상은 정신적 위안 외에 어떤 것을 스스로 준비하고 있는가?"


카 우프만은 "1만 시간..."을 부정하거나 폄하하는 게 아니라, "그 좋다는 1만 시간 스케줄"이 과연 우리에게 필요한지를 먼저 묻고 있습니다. 극단적으로, 1만 시간을 투자해서 달인이 되었다 해도, 알고 보니 이 분야에서 달인까지는 될 필요가 없는 상황이었다면(개인적 만족 면으로나 사회에서의 상품적 수요 면에서나), 사실 이 투자는 성공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달인까지나 되지 않고, 그저 내가 적당히 만족하고 증기기 위해, 어지간히 재주에 능해서 남과 나를 만족시키는 레벨만 성취하고 싶다면, 1만 시간이 아닌 그보다 훨씬 적은 시간 투자만으로 가능하다는 취지입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가격 대비 고성능"이란 미덕과도 통합니다. 고통스럽고 기회 비용도 엄청난 1만 시간을 쏟을 게 아니라, 약게약게 잠시만(상대적으로) 집중한 후, 최대한의 성과를 내는 게, 나 자신과 시간한테 모두 덜 미안한 길이라는 거죠. 이런 의견에 누가 동의를 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취 지는 좋습니다. 이제 그럼, 구체적인 방법론으로 들어갈 차례입니다. "대체 어떻게 20시간을 보내야 최대한의 효용을 뽑을 수 있을까?" 소설가도 장편보다 단편에서 승부 내기가 더 힘들다는 말처럼, 카우프만은 차라리 더 모험적인 승부수를 독자에게 던졌는지도 모릅니다. 그가 진정성과 자신감을 충분히 갖추지 않은 이상, 말에 대한 책임은 쉽사리 지기 어려울 것 같기도 합니다만...


대체로 글래드웰의 문장이 "나-저자-와 당신-독자-를 구별하는 스타일이라면, 이 카우프만은 1 인칭 복수 대명사 "우리" 안에 모든 주제를 포함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이런 모습은, " 내가 직접 해서 안 되는 것이면 독자들에게도 강변하지 않겠다."는 겸손과 실천 중시의 태도를 풍깁니다. 자계서의 생명은 "실천과 실용성"인데, 이를 만족 못 하는 책이라면 제아무리 멋진 말로 겉을 포장한다고 해도 별 소용이 없다는 점에서, 그의 말에선 일단 강한 신뢰감이 풍깁니다. 그 기대를 저버리지 않겠다는 듯, 이 책의 후반부는 그가 직접 시도해 본 "20시간 실전 적용기"로 채워져 있습니다.


책 의 제 2장에서 그는 이른바 10원칙을 제시합니다(구체적인 내용은 책을 찾아 보시구요). 일반 이론은 이 2장에서 그가 제시한 것이 다입니다. 그런데, 일반론이 중요한 게 아니라 (다시 강조하지만) 실천이 문제입니다. 저자는 그래서, 어떤 실험군이나 연구 대상 집단이 아닌 자신이 직접 실천에 옮겨 본 요가, 우쿨렐레, 윈드서핑, 바둑에의 "도전기"를 자세히 풀어 주고 있습니다. 이 중에서 특히 바둑은, 서양인에게는 아마 마법의 게임과도 같은, 상당한 난이도가 있는 오락(두뇌 스포츠에 가까운)일 것 같습니다. 그는 "체스와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복잡하고, 체스보다 훨씬 고급의 두뇌작용과 고도의 집중력이 요구되는" 이 바둑이란 게임에서, 자신이 이뤄낸 성취(우리 동양권 독자가 보기에는 별 것 아니지만)를 대단히 뿌듯해합니다.  아마 그는 이 정도의 결과만으로도 충분히 책 한 권을 쓸 자신감이 생겼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한국의 성인 남성이라면 아마 군 복무 중에 담배와 함께 배우는 필수 취미 정도겠지만 말이죠.


결론은 그것입니다. 달인이 되고 싶으면 1만 시간을 투자하되, 적당히 만족스러운 수준으로 잘하고 싶으면 20시간을 똘똘하게 투자하라! 이 두 요청은 알고 보면 서로 배치되는 것도 아닙니다. 대체재가 아닌 보완재 관계라고나 할까요? 양과 질이 서로 상충관계라고 보는 분도 있겠지만(지나친 몰입으로 예컨대 1만 시간을 유지하기는 힘들다는 점에서), 시간을 영리하게, 그리고 즐겁게 쓰라는 저자의 말에 동의 못 할 바는 전혀 없습니다. 이 책에는 권두 부록으로, 예쁜 노란색 바탕의 시간 계획표가 첨부되어 있습니다. 실용성 면에서 참 큰 도움이 되었다는 평을 남기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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