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다시 정도전일까요? 저자 김용상 선생의 말을 빌리면 이렇습니다.
"그가 역성 혁명의 주인공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의 민본 정치가 지금 절실하기 때문이다."
이 소설은 정도전이 40초입을 들어서고, 이성계가 중년의 고비를 훌쩍 넘을 무렵, 함남 함주에 진을 친 그 무장(武將)을, 기력과 지력이 팔팔한 유생이었던 그가 몸소 찾아나서 역사적인 첫 만남을 갖는 일에서 그 시작을 잡습니다. 역
사서에는 이 만남에서 의기투합을 이룬 두 사람 간에, 단지 지나가듯 던지는 "이 군사를 가지고 무엇을 이루지 못하겠습니까?"란
질문에 그저 못 들은 척 깊은 속내를 간접으로 내비치는 광경만이 펼쳐졌음을 암시합니다. 작가 김용상 선생은, 여기에 잔뜩 상상을
불어 넣어, 마치 유현덕과 제갈공명의 운명적 대면만큼이나 멋진 장면을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첫 장면의 임팩트가 너무 강렬했던
탓에, 이어지는 이야기들, 적잖은 흥미 요소와 밀도를 지닌 내러티브가 다소 매력이 감했다는 느낌이 들 만큼이었죠. 하긴 동아시아
작가들의 아쉬운 점 하나가, (야마오카 소하치의 <덕천가강>도 그렇지만)
강렬한 인트로의 아우라를 종반 내내 이어가지는 못한다는 점이기도 하죠,. 으레 결말은 인생만사 일장춘몽 아니던가 투의 영탄으로
마무리짓는 관행도 그렇구요. 하긴 실제 역사가, 그 푸른 청운의 이상이 만개하듯 실현되는 해피 엔딩이 아니었던 까닭도
있어서이겠지만 말입니다.
정도전은 실제 역사 기록을 보면, 열혈 개혁가이자 독불장군형 실무가였습니다. 이런 사람이 보통은 학문적 지식의 바탕이 깊지 못한 때가 많은데, 정도전은 그렇지도 않았다는 게 특이합니다. 태조가 말년에 이르러 "유종공종(儒宗功宗)"
이라는 현판을 친필로 써서 내려 줄 만큼, 그는 조선 건국에 있어 그 누구의 뒤에도 서지 않을 만큼의 공헌자요, 아직 조선풍의
성리학 도그마가 중국의 그것을 모방하는 수준에 그칠 때 대담하고 창의적인 응용론을 전개한 파이오니어였습니다. 문제는 우리
동아시아에서, 이처럼 재능과 결기가 함께 충천하는 유형의 인물은, 언제나 그보다 못한 삼류의 인물들에 의해 견제를 받곤 했다는
역사적 사실입니다. 개중에는 기술도 변변찮은 돌팔이류의 소인배가 빚은 망상장애적 중상 모략에 의해 피해를 입기도 했던 사실마저
있습니다.
소설의 제목은 "정도전"이라고 되어 있습니다만, 그 상당 비중은 이성계의 행적을 다루는 데에 할애되어 있습니다. 이성계는, 물론 황산 대첩. 對홍건적 전투 등에서 왜구를 격퇴한 크나큰 공적을 세운 인물이지만, 이 소설에서는 그 이후의 생애, 즉 위화도 회군에서부터 기득권 권문세족과의 정치 투쟁, 정몽주 격살(아들 이방원에 의해 주도된), 공양왕과의 마지막 "동맹"을 위한 만남 약속에서 대왕대비의 폐위 교서 발부까지, 숨막히듯 전개된 고려사 폐막의 무대를 박진감과 설득력 있게 묘파하고 있습니다.
이 소설에서 특히 돋보였던 부분은 "위화도 회군"을 다룬 파트였습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의구심을 가졌던 부분은, 전군(全軍)을
요동경략에 몰아 주고 왜 역쿠데타에 대한 대비를 우왕과 최영이 하지 않았느냐는 것이었는데요, 소설을 읽어 나가다 보니 그 과정이
정말 그런 식으로 흘러갔겠다 하는 납득이 되었습니다. 이성계를 찬탈자, 배신자, 역모자로 보면 이런 식의 서술을 하는 작가의
태도에 반대할 수도 있겠지만, 실제 이성계라는 인물의 성격이, 교활하고 치말한 이중 플레이를 즐기는 스타일이라기보다는, 순리를
따르고 체면을 중시하되 주어진 책임은 구태여 마다하지 않는 후덕한 무인에 가까웠겠다는 생각에서, 작가의 시선과 통찰에 수긍하게
되더군요. 정도전이 사불가론 문언을 일러주는 대목은 약간 억지스럽기도 했지만, 실제 역사에서도 측근 중 그 아니었으면 과연 누가
임무를 맡았겠습니까?
우왕은 방탕한 행실로 폐위와 국망을 자초한 인물이었지만, 머리를 쓰는 품새는 마냥 뒤떨어진 주제를 면한 정도는 되었나 봅니다. 이런 진단은 극중 인물 이성계와 정도전의 입을 통해 독자에게 전달되고 있습니다. 즉, 언제나 그 술수와 수단을 안심할 수 없는 이인임을 제거한 후, 딴
생각 없는 최영을 느닷 국구(國舅)로 모시고 그 정치적, 군사적 위세에 왕권을 의탁하겠다는 속셈, 나아가 좋은 말로 일단 신생
제국 명의 수뇌부를 안심시킨 후, 북원과의 대치에 여념이 없는 틈을 타서 요동을 치겠다는 구상은 나름 노련하고 앞뒤가 맞는
행보였습니다. 문제는, 큰 그림만 그럴싸했지 실천론이 부재했다는 데에 있었습니다. 이성계는 딱히 역모의 의도나 개인적
reluctance의 태도를 지녔었다기보다, 아 하고 싶어도 할 방도가 없는데 어쩔 것인가 하는, 상황론적 논리에 크게 의존했고,
여기에 현장에 동원된 군심(軍心까지 업은 채 대세와 순리를 따르는 선택을 취했다는 게 작가의 의도인 듯하고, 독자로서 저도 그
무난한 서술에 동감을 표하게 되었습니다.

우
왕은 이후, 대담하게도 두 군부 실권자 조민수와 이성계를 암살하려는 책동을 꾸미는 걸로 소설에 나옵니다. 소설의 전체 구상에
비추어 무리도 아니겠지만, 이 대목에서 정도전이 한몫을 합니다. "자택에 머물지 말고 즉시 가족을 동반하여 군영으로 피신하시되,
조민수에게도 알려 주십시오." 여기서 기막힌 대목은 정도전이 조민수에까지 구원의 손길을 뻗었다는 것입니다. 이 한 수로 인해 사후
조민수를 숙청하는 작업이, 배신과 술수가 아닌 정당한 행보라는 다소의 명분이 얻어지는 거겠죠.
많
은 사가들이 이야기하기를, "폐가입진"을 명분으로 내세우려면, 왜 우왕을 폐하고 창왕을 세웠는가, 처음에 없던 구실를 끄집어낸
것으로 보아 명백한 역심이 이미 그 시점에서 드러난 바다, 이런 주장이 있습니다. 아무래도 유교적 사상이 지배하던 시기, 성리학의
정착 여부를 떠나 나라님의 성을 신하가 바꾸고 그 자리를 대신 차지하는 일은 어느 시대 누구에게나 거부감을 불러일으키나 봅니다.
그런데, 이 소설의탁월한 점은, 조민수와 이성계가 이미 회군 당시에 "진짜 왕씨로 하여금 후사를 잇게 하자."는 합의를 군중에서
본 것으로 나옵니다. 이런 합의를 나중에 이색과 결탁한 조민수가 깬 것으로 나오죠. 작가의 생각에 따르면, 이성계는 이미 우왕의
출신 성분의 진정성에 대해 강한 의심을 가졌으며, 더군다나 우왕은 의심의 여지 없는 신돈의 태생으로(사적 근거는 아직 없습니다), 이인임이 전횡을 위한 방패막이로 내세워졌을 뿐인 존재라는 거죠.

정도전은 이 소설에서, "최도끼"라는 암살자의 마수로부터 이성계의 목숨을 한 차례 구하는 걸로 나옵니다. 그 디테일도 흥미롭습니다. 일단 간자(스파이)를
상대 진영에 심어 두고, 약한 단서 몇으로부터 암살의 구체적 계획 후보군을 짐작한 다음, 범위를 좁혀 나가며 거사 당일에
현장에서 손을 쓴다.. 마치 현대 국가의 경찰, 정보부에서 테러를 사전 진압하는 방식과 유사합니다. 아니면 명탐정의 행보라고 해도
좋습니다. 작가의 무리한 상상이 아니라, 탁상공론을 떠난 실무에 매우 능했던 정도전의 역량(사료에도 잘 드러난)에 비추어 보아 충분히 개연성을 갖춘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정도전은 이방원의 손에 의해 죽습니다. 아직 여리고 어린 티가 가시지 않은 소년 급제 시절에 처음 방원을 만난 정도전은, 적개심이나 반발감과는 아주 먼 친밀한 감정으로 그와 교유하게 됩니다. 소설에서 젊은 방원은 정도전에게 구체적인 경우마다 연장자, 선배로부터의 가르침을 청하고(이 소설 몇몇 대목에선 정도전을 "스승님"으로 칭하기까지 합니다), 대체로 그를 깍듯이 섬기지만, 우리가
잘 알듯 이후 개국될 신생국가에서의 구체적인 헌정 방향을 두고 생긴 대립의 골을 끝내 극복하지 못하고 갈라서고 맙니다. 작가로서
다소 내키지 않으셨는지 정도전의 파란 많은 생애 그 마지막 암살 장면은 이 소설에서 다뤄지지 않습니다.
이 책에서는 1342년생 설을 따르고 있지만, 학자에 따라 1338년생을 취하는 입장도 있습니다. 만약 후자라면 정도전은 정몽주와 동갑이 되고, "주군" 이성계와 큰 나이 차도 없습니다. 동
갑인데 왜 정몽주에 비해 언제나 승진이 늦었는가, 이에 대해서는 외조모 가계의 천출 이력이 언제나 그의 발목을 잡았다는 말로
설명이 가능하긴 합니다. 그의 강퍅한 성품도 이런 출신 성분 컴플렉스에서 비롯했다는 시각까지 끼워 넣으면 더 설명은
매끄럽습니다만, 소설의 입장은 그리 분명하지만은 않습니다.
정몽주는 과연 이후의 유교 중심적 사고 체계에서 언제나 고정된 이미지로 그려지듯 과연 순수한 충신이었는가? 이에 대해서는 역시 논란이 많습니다. 이
소설에서 잘 묘사되듯, 그는 처음부터 위화도 회군에 찬성하는 입장이었고, 심지어 우, 창 두 왕을 폐출하는 소위 폐가입진론에까지
적극 동조하다가, 다만 역성 혁명을 위한 최후의 단계에서 신진 사대부 세력과 틀어졌을 뿐입니다. 이것은 이 소설만의 입장이
아니라, 실제 사료를 냉정히 추적하면 거의 누구가 동의할 수 있는 내용이죠. 다만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그가 대단히
빼어난 유학자였을 뿐 아니라, 명 태조 주원장에게조차 어느 정도 인정을 받을 만큼 유능한 외교관이기도 했고, 명 사신 노릇을 수차
해내고 그 과정에 죽을 고비도 넘길 만큼 실무가로서의 강한 면모도 충분히 보였다는 점이죠.
소
설에서 하나 아쉬운 점은, 정도전 하면 떠오르는 하나의 테마인 "요동정벌론"이 다뤄질 무대를 마련하지 않은 채 종결을 짓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 복선이 아주 없는 것도 아니라서, 명 태조 주원장의 대단히 볼품 없는 풍채를 떠올리며(실제로 그가 사신길에
봤으니만치 가능한 일이죠), 우리 주군이 저 자리에
곅신다면 최소한 그 모양새로는 얼마나 더 잘 어울릴까를 상상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물론 이 장면이 어디까지나 고려의 보위, 신
왕국 창건을 염두에 둔 것일 뿐 저 먼 대륙의 천자 자리를 염두애 둔 것은 아니지만 말입니다. 이 소설의 가장 건강한 점은,
역성혁명이 성공할 수 있었던 건 어디까지나 농민, 백성의 요구를 정확히 알고, 토지 소유 제도의 모순을 혁파했으며, 시스템의
전면적 재정비를 시도하여 민중의 니즈를 충족했던 덕분이라는 점을 명확히 그려 주고 있다는 겁니다. 혁명은 불장난도 아니고, 현실을
모르는 돌팔이가 자기 합리화의 방편으로 둘러대는 백일몽도 아닙니다. 정도전의 위대한 점은 언제나 구체적인 현실에 출발점을 둔
채, 위대한 비전을 그려낸 데에 있고, 이 표현력 풍부한 소설(맛깔난 우리말을 잘 구사하고 있죠?)은 그 점을 독자에게 새삼 확인시켜 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