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바이 근혜노믹스 - 정승일의 단도직입 경제민주화론
정승일 지음, 공은비 엮음 / 북돋움 / 2013년 12월
평점 :
절판


책을 펼치기 전부터 큰 기대를 가졌습니다. 현 정부도 나름 애는 쓰고 있겠지만, 또 국제 여건이 그리 좋지 못하다는 점에서 한계는 있겠지만, 많은 이들이 경제 현황에 대해 크고 작은 불만을 가지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대담자가 청년 세대를 어느 정도 대표할 수 있는 입장이고, 주된 논자인 정승일 박사가 이 분야에 대해 깊은 연구를 했다고 하니, 현실경제 운용의 모순과 미비점에 대해 어떤 냉철한 지적을 해 주고 있을지 관심을 처음부터 모을 자격이 있다고 하겠습니다.

 

제1장은 "경제민주화가 밥 먹여 주나요?"라는 제목입니다. 사실 이 명제는 단순한 논리만으로 지지가 가능합니다. 이른바 트리클 다운 효과라든가, "파이를 키워서.. "의 논리는 많은 경제체제에서 큰 효과를 보기 힘든, 현실 설명력이 부족한 걸로 드러나기도 했습니다. 그러므로, 분배가 효과적으로 이뤄지기만 한다면 "경제민주화"는 "밥을 실제로 먹여 주는" 대안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문제는 1) 재벌중심 구조의 효율성이 어느 정도까지나 다른 대안에 의해 대체될 수 있는 것이며, 2) 공평하고도 생산성을 해치지 않는 분배의 구체적 실천론이 무엇이 있겠는가에 있습니다. 이 부분은 정 박사로부터 이야기를 들어 봐야 합니다.

 

정박사는 아주 중요한 지적을 하고 있습니다. 그가 비판하는 건 이 대목에서 보수세력이 아니라, 진보세력의 무용한 대안 제시입니다. 무슨 말인고 하니, 재벌을 해체해서 단지 부의 소유 형태를 바꾸는 건, "산업자본주의"에서 "금융자본주의"로의 변신 외에 아무 결과도 가져 오지 못한다는 거죠. 정박사는 냉철하게 "그건 재벌가에게 그리 손해보는 선택도 아니"라고 하고 있습니다.

 

또하나의 재미있는 주장은, 재벌 체제는 비주류가 아닌, "주류경제학"에서 싫어하는 요인이라는 거죠. 시장 경제는 각 경제 주체들이, 전적으로 시장의 룰과 가격이라는 독립 변수에 의해 작동할 때만, 최상의 효율로 이상적인 결과를 빚어냅니다. 재벌 체제는 완전 경쟁이라는 영원한 로망에 장애가 될 뿐이라는 겁니다. 물론 정박사의 관점은, 이런 이유에서 재벌 해체를 말하는 게 아니죠. 그가 주장하는 바는, "민주공화국"의 원리를 정치 아닌 경제분야에까지 확장하여, 기업의 소유와 국가주권의 보유 형태를 단일화하자는 주장입니다. 공산주의에의 혼동을 막기 위해, 그는 헌법에 명시되어 있는 "민주공화국" 조항을 근거하여 주장을 펴고 있습니다.

 

2장에서 그는 다소 독특한 주장을 폅니다. 그의 논지를 밀고 나가면 경제는 결국 국가 주도의 방식이 되는 겁니다. 그런데, 이는 지금 이 책에서 주된 비판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박 대통령의 부친인, 박정희 대통령식의 개발 독재와 크게 다를 바 없다는 의문이 제기되죠. 질문자인 공은비씨도 그런 질문을 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정 박사는 2차대전후 폐허가 된 프랑스를 재건한 드골주의자들의 선례를 보고 배워서, 건전하고 진보적인 국가 주도형 모델을 상정할 수 있다는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이어서 그는, 군부독재가 끝나고 김영삼 정부에서 박세일 사단이 들어섬으로 해서, 지금과 같은 자유주의 기조가 자리를 잡았다는 분석입니다. 그가 보기에 지난 파시스트 정권의 국가 드라이브 기조는 그나마 효율성이라도 있었지만, 지금의 우파가 지지하는 자유주의는 이도저도 아닌 최악이라는 이야기입니다.

 

본질적으로 그는, 자본주의는 필연적으로 독재와 친한 운명이며, 주류 경제학자들이 주장하는 완전 경쟁, 자유주의는 허구에 가깝다는 걸 지적합니다. 이런 논리를 밀고 나가면, 흔히 진보진영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재벌 해체를 하면, 그나마 책임 소재도 불분명해지고 숨어 있는 경제실력자들이 막후에서 조종을 하는 식으로 체제의 모순이 더욱 심해진다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해답은 무엇인가? 현 경제력 집중을 어느 정도 용인하되, 그 의사결정 과정과 평가 장치를 완전히 투명하게 운영하여, 철저히 민주적 통제 아래 두자는 것입니다. 정 박사가 강하게 영향 받고 있는 제도는 독일의 여러 시스템인데, 그 중에서도 공동의사결정제(Mitbestimmung)가 대표적입니다. 종업원이 회사의 정책 결정에 직접 참여하는 제도는, 이를 경제 제 분야에 확장 응용할 여지가 아주 크다는 게 정 박사의 주장입니다. 경제민주화란 이런 수준까지 레벨 업 되어야 그걸 진정한 민주화라고 부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정 박사는, 이 책에서 박근혜 정부의 시책을 비판하고 있다기보다, 오히려 아젠다를 잘못 잡고 있는 진보진영을 호되게 질타하고 있습니다. 이미 시체나 마찬가지인 자유주의 노선에는 아무 기대할 것이 없으나, 효과적인 대안을 내놓고 비전을 구체화하는 의무를 방기하는 진보진영의 불투철한 의식이 더 문제라는 쪽으로도 해석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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