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의 거의 모든 것
대니얼 코나한 & 댄 스미스 지음, 박수철 옮김, 김대중 감수 / 원앤원북스 / 2013년 11월
평점 :
절판


이 런 책이라면 별 10개도 아깝지 않습니다. 처음에 큰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마치 아이들용 비주얼 백과사전인 미국의 DK 시리즈처럼, 총천연색 도판에다, 구겨질까 겁이 나서 함부로 넘기질 못할 만큼 질 좋은 용지에 인쇄된, 최고의 책이라고 불러 주고 싶네요. 요즘 책은 확실히, 내용도 내용이지만 이처럼 편집에 정성을 들여야 특히 어린 독자들이 접근하기가 좋습니다. "돈"의 생리와 특성을 몰라도 사는 데 지장 없을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재테크의 원리는 처음 접하는 나이가 어리면 어릴수록 더 좋은 것입니다. 딱딱하고 복잡한 수식(數式)만 잔뜩 나열하면 아이들이 그저 버거워할 뿐이죠. 명료하고 요령 있는 설명과 풍부한 도판이 곁들여져야, 까다로운 주제가 쉬이 다가올 수 있습니다.


그 럼 이 책이, 어린 독자들을 상대로만 삼은 기획인가. 그렇지는 전혀 않습니다. 과연 이 책을 펼쳐 보고, 학부 때 해당 분야를 전공한 이라고 해도, 한 항목도 막힘 없이 이 책의 내용을 설명할 수 있는 이가 몇이나 될까요? 어른이 보아도 "아 그런 내용이었군, 그런 사실이 있었군, 그런 논리로 돌아가는 거였어,'라며 무릎을 치거나 고개를 긁적일 이들이 많이 있을 겁니다. 내용과 주제가 제법 깊이 있는 편인데도, 영리한 아이들에게 책을 쥐어 주고 읽혀도 부담이 없을 만큼, 깔끔하게 편집이 되어 있다는 말입니다.


이 책은 주로, 우리가 원하든 그렇지 않든 몸을 담고 의지하는 거대한 체제인 "자본주의"에서, 혈액처럼 그 운용에 필수요소로 작용하는 "돈"에 연관된 모든 개념, 제도, 현황에 대해, 백과사전처럼 항목을 설정해 놓고 친절한 해설을 해 주고 있습니다. 요즘 흔히 보는 재테크에 대한 개념도 있지만, 그런 팁 위주의 명제 정리(이런 건 자본주의의 작동원리에 대해 피상적인 이해만 가져올 뿐입니다)보다, 경제 제도 전반에 관한 근본 운영 개념과 원리를, 키워드 부연 방식으로 설명해 주면서, 왜 흔한 재테크 기본 명제들에서 그런 결론이 나올 수밖에 없는지의 이유를 체계적으로 가르칩니다. 꼭 학습용도로만 쓸 게 아니라, 모르는 내용이 있으면 이 책의 색인이나 차례에서 해당 항목을 찾아 읽어 봐도 됩니다. 그냥 읽어 내려가도 좋은 읽을거리이고, 필요할 때마다 참조식으로 사용해도 무방한 구성입니다.


경 제는 박물관에 전시된 고색 창연한 화석이 아니죠. 현재 살아 숨쉬는 맥박으로 모두를 추동하고, 구속하며, 승자에게 짜릿한 전리품을 안기는 시스템입니다. 따라서 바로 지금의 현황을 잘 반영하는 통계와 실증의 뒷받침이 없으면 그 지식은 반은 죽고 쓸모 없는 공연한 치창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 책은 고전적인 개념 설명도 빼어나지만, 최신의 통계를 반영해서 우리가 발을 디디고 호흡하는 세계의 실상이, 숫자와 그래프로는 어떻게 대변되는지를 잘 보여 주고 있습니다. 이 책을 어린 독자에게 읽힌다면, 경제뿐 아니라 통계의 개념, 분석에도 친근해질 것 같고, 나아가 인문지리적 지식에도 익숙하게 두뇌가 훈련되지 않을까 기대가 되네요.


항목 설정도 기존의 책에서 보던 방식과 크게 다릅니다. "극빈곤층", "심리", "중년기", "아동기", "사이버 범죄" 심지어 "사기" ... 이런 항목이 주제어라면 그게 경제서적이라는 느낌이 오실까요? 이 책은 버젓이, 마치 사회학 서적의 외피를 쓰기라도 한듯 이런 주제어를 깔아 두고 서술을 해 나갑니다. 읽어 보면 결국 돈 이야기이고, 실물 경제에서 이런 변수들이 어떻게 의미 있는 경제적 파장을 낳는지 납득을 시켜 주고 있습니다. 돈과 관련 안 된 사회 현상이 더 이상 뭐가 남아 있겠습니까? 그런 점에서 이런 시도는 대단히 참신하고, 죽은 지식이 아닌 살아서 모든 현상에 고루 적용되는 학문의 모습을 일깨워 줍니다. 그런가 하면 "다국적 기업" "신용 창출" ,"은행" 같은 전통적 경제학 키워드를 두고도,실용적이고 최신의 지식이 반영된 설명이 이어집니다. 특히 2008년 전세계를 강타한 리먼 쇼크, 아직도 여진이 남아 있는 그리스 등 남유럽의 경제 위기, 이런 가장 최근의 사정까지 다 업데이트된 내용이라서, 돈이 그저 만능이고 규칙에 따라야 상책이라는 기계적 체념의식을 불러일으키지 않습니다. "세계화, 신자유주의"라는 토픽으로는 분명 비관적인 분석이 뒤따를 것 같은데, 이 책은 보수와 진보 사이에서 절묘하게 균형점을 찾아 나간다는 게 특이합니다.


p168 이하의 통화공급량, 그리고 이어지는 인플레, 디플레이션 파트를 보십시오. 적 절한 일러스트와 그래프가 곁들여지기도 했지만, 저는 일반용 대중서에서 이처럼 명확하고 유창하게 이어지는 설명을 본 적이 없습니다. 그렇게 기술적인 설명만 있냐 하면, 바로 앞에는 "경제학의 거장들" 항목을 통해 칼 마르크스를 포함한 이론의 거장들을 소개하여, 이 책에 인문적 품격까지를 더하고 있네요. 이렇게 공을 들인 경제입문서를 저는 처음 보는 것 같아요. 윤리은행이라고 들어 보셨나요? 은행의 운영 기법을 비영리 사회재단이 받아들인 새로운 법인 패턴입니다. "돈"과 사회봉사가 어느 접점에서 연결되는지, 색다른 각도에서 보여주는 예입니다. 얼마 전 우리도 특별법 제정을 두고 이슈가 되었던 "이슬람식 은행"에 대한 설명도 나와 있습니다. 만약 이 책으로 경제 기본 개념을 처음 접하는 아이들이라면 이런 최신의 균형 잡힌 지식 포트폴리오가 첫 경험으로 연한 머리에 자리잡힐 것을 생각하니 부럽기도 하네요. 어른들이라고 해도 새로운 지식은 허세나 거품 없이 이런 좋은 책의 도움을 받아서 정리하면 그걸로 충분하겠죠. 정말 너무 멋진 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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