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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알아야 할 동물복지의 모든 것 - 돼지도 장난감이 필요해
박하재홍 지음, 김성라 그림 / 슬로비 / 2013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처음에 제목만 보고 어린이 동화인 줄 알았는데요, 내용은 아주 심각한 주장과 사실을 담고 있었습니다. 심각하고 중요한 깨달음을 요구하는 내용이지만, 내러티브는 쉽고 재미있게, 공감을 유발하는 식이라서 금세 읽어낼 수 있었네요.

제목의 "돼지도 장난감이 필요해"는 무슨 뜻일까요? 말 그대로입니다. 돼지는, 우리 생각과는 달리 대단히 지능이 높고(여기까진 그럴 수도 있겠다 싶으시죠?), 깔끔하며(고개가 갸웃거려질 수 있습니다), 탐욕스럽지 않고, 지루한 걸 못 참는 부지런한 동물이라는 게 저자의 주장입니다. 소나 다른 가축들은 훈련을 통해 행동 양식이 나아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돼지는, 반복된 행동을 통해 기본적인 학습이 가능하다고 하네요(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제3인류>에 보면, 가이아의 말로 원숭이와 돼지가 교접하여 탄생한 게 인간이라고 하는 대목이 있죠. 돼지를 동원한 건 그 지능을 따오기 위해서랍니다). 게다가, 배설을 언제나 거주 환경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정해 놓고 행한다는 점에서 깔끔합니다. 그럼 왜, "돼지우리"란 말이 더러운 거처의 대명사가 되었는가? 우리는 여기서 이 책의 취지에 한 발 접근할 필요가 있습니다. 자연스러운 본능에 맡겨 두면 얼마든지 깨끗하고 "모범적으로" 살 돼지가, 인간이 인위적으로 마련한 가혹한 환경에 갇혀 살다 보니 그처럼 열악한 환경으로 스스로를 학대하다시피 바뀌게 되었다는 거죠. 문제는 인간이지 돼지가 아니었던 겁니다! 단조롭고 지루한 걸 가장 싫어하는 동물이 돼지이며, 우리 인간을 위해 육질을 공급하는 고마운 존재이기도 한 만큼, 이 동물에게 장난감 공급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1부에서는 이 돼지 외에 닭과 소가 나오는데, 특히 도축되는 과정에서 말할 수 없이 잔인한 일이 벌어짐을 개탄하고 있습니다. 흔 히 우리가 전근대를 야만적이라고 범주적으로 비난하지만, 소위 "백정"들은 동물을 도살하면서 가장 인도적인 배려를 베푸는 일에 인색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결국 물질만능의 사회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가축의 대접과 운명이 더 나빠진 건 말할 것도 없고, 이를 가혹하게 다루는 데에 주저함이 없어진 인간마저도 그 도덕성의 퇴화를 겪었다는 점이 심각하죠. 우리가 동물을 학대하는 일은, 동물 학대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 인간 자신이, 생명을 경시하고 영혼을 타락시켜, 우리 자신을 전보다 더 못한 존재로 추락시키는 거죠. 동물을 위하는 건 동물만을 위하는 게 아니라, 우리 인간을 위하는 길이기도 합니다. 돼 지 등의 가축에 항생제를 먹이면 성장이 무척 빠르고 뚜렷하다는 이유에서, 세계적으로도 유례 없이 항생제 주입을 많이 하는 게 우리나라라는데요. 문제는 이 항생제가 그것을 먹는 우리들의 몸에도 축적된다는 겁니다. 아무리 병원 안 가고 주사 안 맞고 약품을 남오용하지 않아도, 돼지고기를 무분별하게 섭취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우리 몸은 심각하게 망가지고 있었네요! 이제 삼겹살 요리 애호 습관에 대해 다시 생각해 봐야 할 때가 온 것 같습니다. 이 책을 읽고 개인적으로 기로에 선 습관들이 무척 많았습니다.

2부는 더 볼만합니다. 시베리아 호랑이 크레인을 아십니까? 이 호랑이는 어려서 장애로 태어났는데, 송곳니가 뻐드렁니라 턱이 잘 다물어지질 않았습니다. 만약 자연에서 이런 개체가 태어나면, 그 동물은 온전한 맹수 성체, 포식자로 자라지 못하고 도태할 가능성이 많다는군요. 좀 충격적인 것은, 이런 불구의 자식이 나오자 그 어미 호랑이가 아기를 버리고 돌보질 않더라는 겁니다. 우리가 모정이다, 혈육의 정이다 하는 문제는 자연의 본성으로만 알았는데, 그것도 DNA가 온전히 전파될 정상아의 생육에만 해당되는 문제고, 이런 장애개체의 경우는 해당이 없나 봅니다. 무정한 어미 호랑이 때문에 결국 아이의 보호 양육은 사육사들이 전담할 수밖에 없었는데요. 어려선 개성 있는 외모로 동물원을 찾은 손님들에게 인기가 좋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다 크고 보니, 그 장애의 훙한 모습이 영 두드러져 입장객들의 항의가 잇따랐다고 하네요. 결국 이 아이는 동물원에서 내쫓겨, 민간 업자에게 팔리게 되었는데 그 이후의 사연은 더 기구합니다. 궁금하신 분은 책을 직접 읽어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저도 생각하면 할수록 신기한 녀석이 바로 개입니다. 개처럼 인간에 의존하고 순종적인 동물은 없죠. 어떤 이가 늑대 어린 것을 어려서부터 무리와 격리시키고 가정에서 길러 봤는데, 개처럼 뛰어난 학습 능력을 보이지는 못하더라는 겁니다. 오랜 시간 (거의 몇 천 년 단위죠)에 걸쳐 본성 자체가 바뀔 만큼 길들여져 온 터라, 아예 유전 정보 자체가 바뀌어 버린 거죠. 게다가 개는 한 마디로 개라 통칭할 뿐, 얼마나 크기와 모양이 다양합니까? 이 역시 교배와 개량 작업이 빚은 마법이죠. 그런데 그런 개라고 해서, 인간이 그 처분을 맘대로 할 수 있는 장난감으로 여기면 그건 아주 곤란한 이야깁니다. 그래서 뜻있는 분들은 "애완견, 애완동물"이라는 말을 쓰지 않고, "반려견, 반려동물"이라는 용어를 쓴다는 거죠, 정말 지당한 일입니다. 생명에 대한 깊이 있는 고려와 고찰을 통해, 과연 자칭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의 본성과 실체는 무엇인지, 다소 엄숙한 마음으로 돌아보게 해 주는 책이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