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나 마켓코드 - 하나의 나라, 천개의 시장
박영만 지음 / 미래의창 / 2013년 10월
평점 :
품절


중 국에 진출하시려는 분들이나, 혹은 이미 쓴 잔을 마시고 돌아온 분들 중 일부와 이야기를 하면 이전과는 분위기가 사뭇 다름을 알 수 있습니다(이전에는 누구나 호기와 장미빛 전망에 들떠 있었죠. 중국 이야기만 하는 걸로도 엔돌핀이 솟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었습니다). 이제는 호시절이 끝났다는 분들, 과연 10년 전에도 좋은 기회가 있기는 했었느냐는 근본적 회의,.. 이분들의 공통점은 현재 자신들이 전개하려는 사업 전망이 밝지 못하거나(스스로도 확신이 부족), 현지의 사정에 적응 못하고 실패했다는 사실이죠. 우리가 흔히 반면교사라는 성어를 씁니다만, 학습이나 연구에 투자하는 시간과 역량이 제한되어 있는 마당에, 무작정 여러 사람들의 말을 다 듣고 소화할 수는 없습니다. 제한된 시간적, 지적 자원을 잘 활용하려면, 성공한 사람, 확실한 정보에만 집중해야 합니다.


이 책은 그런 의미에서, 제한된 분량에 꼭 필요한 정보만 담은 유익한 책입니다. 저자는 롯데그룹의 유통 부문을 맡아 중국 현지에서 신화적인 성공을 이뤄 낸 분으로, 현재는 KOTRA 등 민간 차원에서 중국 현지 유통망 공략에 최대한 공적 지원을 할 수 있는 분야에는 거의 다 손을 뻗고 있는 분입니다.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영업인답게 구체적인 방법론에 능통하고, 전통적인 인문, 역사적 코드에까지 인식의 지평을 넓혀 시장 흐름의 장기적이고 근본적인 인과 관계까지 시원한 해명을 해 주고 있습니다. 책의 포맷으로 일반 독자에게 소개되는 건 이 책이 처음이라 대중들은 낯설어할 수 있지만, 업계에서는 이 분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없죠. 특강 형식으로 접한 것 외에 책으로 정리된 정보가 있었으면 좋겠다 싶었는데, 마침 미래의창 출판사에서 이 책이 나와 반가웠습니다.


저자는 우선 마케팅과 영업의 근본을 지적합니다. "시장에 대해서 잘 알고 상품을 팔려 들어야 한다."


시 장의 규모 면에서 중국은 여타의 지역과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누구나 군침을 흘릴 만합니다. 그런데, 저자가 책의 여러 곳에서 강조하는 것처럼, 화남과 화북의 풍토는 확연히 다릅니다. 사람들의 기질이 마치 다른 민족들의 그것처럼 차이가 나니, 이를 단일 시장의 경우처럼 접근하다가는 큰 낭패를 본다는 거죠. 그래서 "같은 나라지만 한 나라라고 보기 어렵고, 한 나라라고 해도 시장의 층위와 속성은 여러 갈래"라는 명제가 자연스럽게 나옵니다. 단일 품목 하나로 벼락부자가 되겠거니 하는 어설픈 기대는 바로 사업을 망치는 지름길이 되는 거죠. 


그런데, 이 사실은 오히려 기회가 될 수도 있습니다. 특정 지역, 특정 시기에 별 재미를 보지 못했던 아이템이라도, 시 간이 지나거나 공략 지역을 바꾸면 의외의 대박이 날 수도 있다는 겁니다. 또, 아무리 히트를 쳤던 상품이라고 해도 트렌드가 바뀌면 결국 시장에서 자리를 내 주게 되는데, 이때 광활한 대륙의 다른 한 켠으로 시선을 돌리면 ware의 재활용도 역시 가능하다는 거죠. 한류 열풍에 관해서라면, 특정 드라마나 가요가 북경권에서는 인기가 시들해지더라도, 강남이나 내륙에서는 순차적으로 인기몰이를 하는 경우를 흔히 본다는 게 이를 입증합니다. 결국 영리하게 시장의 속성을 파악하고, 기회다 싶을 때 타이밍을 놓치지 않으면 성공이 요원한 것만은 아니라는 점을 지적합니다.


시 장의 속성은 그 나라의 문화와 관습을 확실히 파악하는 게 선행 작업입니다. 프라이팬의 예를 저자는 들고 있는데요. 우리가 흔히 가정에서 쓰는 팬을, "한국 특별전" 컨셉으로 현지에서 대거 전시해 두었더니, 중국인들 대부분은 고개를 젓더라는 거에요. "우리가 즐기는 요리는 이렇게 깊이가 얕은 기구로는 조리가 안 된다." "기껏해야 달걀 프라이를 해 먹을 이런 제한된 조리기는 그저 사치품일 뿐이다." 재미있는 건 중국 상인들 역시 마찬가지더라는 건데요. 영화에서나 볼 크고 깊은 프라이팬을 들고 와서 위와 비슷한 특별전에 내놓으니, 한국의 일반 소비자가 눈을 줄 리 없죠. 시장의 코드가 근본적으로 차이가 나는 까닭인데, 귀국할 때까지 중국 상인들은 도통 이해를 못 하더랍니다. "왜 이런, 더 나은 상품에 관심을 안 기울이느냐?" 이런 우를 우리도 범해선 안 된다는 게 저자의 지적입니다.


그렇게 불통하는 구석뿐이냐면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불통보다는 공감의 여지가 더 많은 게 한국과 중국입니다. 특히 밀보다 쌀을 주식으로 하고, 기쁠 때 노래를 부르고 슬플 때 술을 마시는 성향의 화남인들이 우리와 코드가 많이 통한다고 합니다(화북인들은 정반대라네요. 밀이 주식이고 슬플 때 노래, 기쁠 때 술을 즐긴답니다). 화남 화북을 통틀어 중국인과 우리가 근본적으로 통하는 대목이 있습니다. 바로 반일감정입니다. 남경 대학살이 있었던 그 날이 오면, 우리가 현충일에 그러듯 현지에선 특정 시각에 싸이렌이 울린다고 합니다. 9.18 로 잘 알려진 만주사변일에는, 다시는 영토 피탈의 국치를 겪지 말자는 다짐과 결의가 중국 전역을 휩쌉니다. 이러니 일본 기업이, 현지에서 변변한 영업의 엄두를 내겠냐는 거죠. 가장 강력한 경쟁자가 이런 핸디캡을 안고 출발하는데, 한국 기업은 오히려 같은 피해자로서 일정 정서를 공유하기까지 하니, 이게 기회가 아니면 뭐겠냐는 주장입니다.


여 기저기서 성장의 한계를 논하는데, 과연 시진핑 체제의 신리더십으로 돌입하여 차이나 3.0을 논하는 현 시점에서 엄연한 타국인일 뿐인 우리에게 기회가 남아 있는지의 질문도 던지고 있습니다. 저자의 자답은, 아주 분명한 어조로 "긍정"입니다. 그 단서는 우리가 입버릇처럼 떠올리는 "중국은 시스템이 아직 멀었어."에 있습니다. 저 자는 바꾸어서 생각해 보자는 겁니다. "만약 시스템이 성숙해서 아무 불편이 느껴지지 않는 선진사회라면, 과연 우리가 치고들어갈 틈이 있겠냐."는 거죠. 짜증을 낼 게 아니라 고마움을 느껴야 옳다는 뜻입니다. 다음으로, 중국은 여전히 일부 공급상(수입 오퍼상)들이 수입을 전담하는 체제입니다. 그러니 상하이나 베이징 같은, 소비 수준과 구매력이 높은 도시에서 공급이 원활할 리가 없습니다. 홍콩의 명품샵, 우리 서울의 남대문 시장 같은 데서 "날을 잡아" 시장을 싹슬이하는 큰손의 행태는 다 여기서 기인합니다. 저자의 단언으로는, "아직 20%의 시장은 여전히 미개척으로 남아 있다."입니다. 어떤 중국 지도자는 그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한국 1인당 국민 소득이 몇 만 불로, 중국보다 여전히 부유한 국가라고는 하나, 우리 중국의 그 수준 이상 소득자만 꼽아도 한국의 전 인구보다 아마 많을 것이다." 엄청난 이야기죠. Size does matter라는 말이 새삼 실감납니다.


마 지막으로 잊지 말아야 할 조언은, 중국은 여전히, 명목상으로뿐 아니라 실질적으로 사회주의 국가이므로, 정부가 결정하는 정책이 시장의 근본 흐름을 좌우하는 나라라는 겁니다. 수요 진작을 위해 구제품을 신제품으로 교환할 시 정부가 보조금을 지급하고, 세계 제일의 검색 서비스를 자랑하는 구글이 결국 현지 정부 정책에 적응하지 못해 쫓겨간 나라가 중국이죠. 4P 외에 또다른 P, 바로 정치(politics)가 있음을 사업가들은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게 저자의 충언입니다. 소설처럼 술술 읽히고, 재미도 있고, 실전에 써먹을 실용적인 팁으로 가득하다는 게 이 책의 최고 장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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