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대혁명 2
막스 갈로 지음, 박상준 옮김 / 민음사 / 2013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제 2권은 프랑스 국민 공회의 출범으로부터 시작합니다.


국민의회와 입법 의회 시기까지만 해도, 왕정과의 연결 고리가 완전히 부정되거나 끊어진 건 아니었습니다. 아직도 프랑스에는 왕정이 부여할 수 있는 사회 안정, 질서, 권위에 대한 향수, 향수를 넘어선 현실적 요구가 엄연히 존재했기에, 루이 왕정은 곧바로 붕괴 소멸되기보다 일종의 상징으로서 존속할 가능성이 더 많았습니다. 프랑스 대혁명보다 무려 100년을 앞서 크롬웰의 공화정을 겪기도 한 영국은, 이미 그런 식으로 역사의 성장통을 다소 타협적인 방법으로 넘기고 있기도 했습니다. 아무리 개성과 자부심, 그리고 섬나라에 대한 우월 의식이 강한 프랑스인들이라고는 하나, 수백 년 간 모셔 오던 왕가를 하루 아침에, 백정이 가축 도살하듯 폐기하기엔 물리적인 문제마저 따르는 형편이었습니다. 국가의 위신, 문명국의 체면 유지에도 부담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는, 루이 일가의 결정적인 패착인 바렌 사건으로 인해 일거에 물거품이 됩니다.


우리로서는 이해가 안 되지만, 왕실 혈통을 이어 받은 이들의 자부심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이로부터 50년 후, 프로이센의 왕은 연방 의회가 그에게 부여하려 했던 "독일인의 황제" 호칭을 결연한 어조로 부인한 바 있습니다. "짐은 돼지의 왕관 따위는 갖지 않겠노라!" 카페-부르봉의 오랜 연원을 지닌 역사의 왕좌를, 귀족도 아닌 제 3신분의 폭도들과 공유해야 한다는 생각은, 루이와, 합스부르크의 자랑스러운 후손 마리 두 사람 모두에게, 감내할 수 없는 치욕이었을 겁니다. 생명과 재산도 문제지만, 그런 식으로 치욕스럽게 왕위를 유지해서 무엇하겠습니까? 외국의 무력이라도 빌려 정당한 권위를 수복하려는 생각밖에 없었을 테고, 신이 준 왕위 자체보다 자신의 신민에게 보다 충실한 직분을 요구했던, 그리고 이제 막 민족으로서의 정체성을 의식 속에 싹틔우고 있었던 프랑스인들은 이 사건을 통해, 결정적인 배신감을 느꼈을 겁니다.


"왕이 곧 국가의 반역자다!"" 2대 전으로만 거슬러 올라가도 "짐이 곧 국가"라고 한 왕까지 있었는데요. 이제 불과 백 년도 안 되어서 세상이 이만큼이나 바뀐 것입니다. 딱히 루이 - 마리 부부가 어리석고 타락한 위인이라서기보다, 시대의 대세란 아무도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었던 이유가 컸습니다.


아무튼 왕을 단두대에서 죽인 후, 프랑스는 퇴로를 차단한 채 공화정을 향한 걸음을 힘차게 내딛습니다. 1800년 전 로마에 공화정이 있었다고는 하나, 그것은 귀족의 과두정에 가까웠습니다. 이제 프랑스는 이만큼이나 거대해진 국가를, 국민의 총의를 모아 운영해 나가야 하는 초유의 운명을 맞이했습니다. 믿을 건 인간의 선의와 이성, 그리고 성숙한 국민의식 뿐이었는데, 그나마 그간의 야만적인 격동 속에서 많이 흐려지고 탁해진 상태입니다.


혼란을 이용한 악덕이 횡행하고, 파벌 싸움이 끊일 날이 없자, 로베스피에르라는 법률가 출신의 독재자가 드디어 전권을 잡고 공포 정치를 시행합니다. 설득과 토론이 그 가치를 상실하자, 남은 것은 무력을 통한 공포의 지배 말고는 없습니다. 레인 오브 테러라고 하는 유명한 말이, 바로 로베스피에르의 국민 공회 정부로부터 비롯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무고하게 희생된 사람은 셀 수 없을 정도입니다. 마치 현대사에서 문화 혁명의 광기와도 비슷했습니다. 아무리 대의가 옳아도, 그를 실행하는 방법이 옳지 못 할 때, 어떤 참혹한 일이 벌어지는지를 똑똑히 보여 주는 비극이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로베스피에르 역시 사방에 적을 만든 업보로, 기요탱의 도끼 날 아래 스러지고 맙니다.




"혁명은 피를 먹고 자란다." 그러나 모두의 피가 빨린 후에 사람은 없고 혁명만 남아 무슨 보람이 있겠습니까? 게다가 프랑스로부터의 혁명 수출을 두려워한 외국 군주국들의 동맹이 형성되어, 프랑스는 내부로부터의 분열에 외침의 위협까지 겪게 됩니다. 자체 분파 싸움으로 존속이 위태로워진 상황에서, 외국의 군사 공격까지 받으면 나라가 어떻게 될까요. 그러나 이번에도 국가를 구한 건 민중의 힘이었습니다. 강해진 국민군은 비록 지휘관이 무능하여 지리멸렬일 것 같았지만, 위기 의식으로 한층 고조된 국민군의 사기는 이를 극복해 내었습니다. 괴테도 회고하듯 "그때 그곳에서 세계의 역사가 바뀐" 발미의 전투는, 프랑스가 나폴레옹을 맞이할 시간적 여유를 줍니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 혁명의 지도자들은 협의 하에, 실권자가 합의체 형식으로 국가 대사를 처리하는 총재정부를 도입합니다. 마치 고대 로마가 공화정의 난맥상 끝에 트로이카 체제를 도입한 것과 비슷합니다. 하지만, 말만 많았지 되는 일이 없었고, 총재정부의 무능을 풍자하는 문학적 장르가 따로 생길 만큼, 이 정부는 국민의 기대를 정면으로 저버렸습니다. 테르미도르의 반동으로 애써 추스린 공화정이 결정적인 위기를 맞자, 포도탄의 능란한 발포로 순식간에 상황을 제압한 나폴레옹은 드디어 시대의 총아로 부상합니다, 그에게는 혁명의 숭고한 대의와 아울러, 무질서를 질서로 변모시킬 기하하적, 공학적 수완이 있었던 겁니다. 막스 갈로의 장엄한 서사는 여기서 막을 내립니다. 이의 후편은 이 책을 프리퀄로 만든 <나폴레옹>에서 더 읽어 보셔야겠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