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대혁명 1
막스 갈로 지음, 박상준 옮김 / 민음사 / 2013년 6월
평점 :
품절


막스 갈로의 필치로 접하는 프랑스 대혁명의 상세한 역사는 실로 흥미롭습니다. 


그는 프랑스 전체로부터 사랑 받는 산문가이자 역사가입니다. 우리 나라 독자들도 <나폴레옹> 5부작을 읽고 그의 이름을 익히 들어 아시는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대체로 그는 모국인 프랑스의 역사를 주된 서술의 제재로 취하되, 유럽 각국의 다른 역사에도 날카롭고 종합적인 시선을 주어 특유의 운문적이고 간결한 필치로 장엄한 묘사를 펼칩니다.


이 책은 상 하 두 권으로 되어 있지만, 다 읽어 내는 데에는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앞서도 말했지만 그의 문장은 대체로 한 문단에 긴 문장 여럿을 배치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말하자면, 페이지에 여백이 많이 남는 편이라고 할까요. 압축적이고 시적인 하나의 문장이, 문단 전체를 차지하는 모습을 흔히 봅니다. 이는 우리가, 소설 <나폴레옹>을 읽을 때에도 많이 느꼈던 점입니다. 빼어난 역사가들 중에는 팩트 사항을 길게 자세히 적는 이도 있고, 짧고 압축적이지만 단어 하나에서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하는 심오한 문장을 즐겨 쓰는 이들도 있습니다. 막스 갈로는 후자에 가까운데요. 다만 쓰는 단어들이 비교적 평이해서 읽는 이에게 큰 부담을 주지 않습니다.


프랑스 대혁명의 역사는 보통 바스티유 감옥 습격 사건부터 시작, 브뤼메르의 쿠데타가 마무리되는 통령 정부의 출범에서 끝납니다. 부르봉 왕조가 붕괴된 후, 프랑스에는 국민의회, 입법의회, 국민공회, 총재정부, 통령정부가 차례로 들어섭니다. 국가라고 하면 그저 왕, 신으로부터 권리를 부여 받았다는 왕이 다스리는 정체, 국체가 유일한 줄로만 알았던 당시 사람들은, 불과 10년도 안 되는 기간 동안에 저처럼 그 이름도 다채로운 정부가 여럿 들어섰다는 사실부터가 놀라웠을 텝니다. 한국에서는 군사 독재자가 무력으로 찬탈한 정권을 두고 "제 5공화국"이라는 이름이 붙여지기도 했지만, "국(國)"의 모습이 "왕국","왕정"이 아닌 다른 것이 될 수도 있다는 건 그 자체가 긍지요 환희입니다. 하물며 "공화국"이 1, 2도 아닌 제 5까지 갔다는 건, 자유와 주체, 민주주의를 영혼으로부터 떨칠 수 없는 프랑스인들에게는 무한한 자부심을 환기하는 단어입니다. 독재자는 한국 뿐 아니라 저 멀리 프랑스의 인민들에게까지 폐를 끼치고 있는 셈이죠.


막스 갈로는 이 제 1권에서, 국민공회의 출범 바로 직전, 루이 16세의 처형까지를 다루고 있습니다. 국민 공회와 공포 정치, 그리고 나폴레옹의 전면 대두는 다음 권의 주제입니다.


막스 갈로의 저작이 보이는 가장 큰 미덕은, 어느 한 쪽에 치우지지 않은 균형 잡힌 필치로 다양한 역사를 응시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보통 역사학자들은, 자신만의 개성과 지성을 과시하기 위해서라도, 여태 그 누구도 제기하지 않은 관점과 틀을 짜 내어 역사를 프레이밍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데, 막스 갈로는 언제나 그의 책에서 표준적이고 무난하면서도, 학계에서 저간에 성취한 여러 업적과 다양한 관점을 자신의 한 권에 녹여 내듯 안정적인 관점과 패러다임으로 역사를 씁니다. 보통 역사라고 하면 건조한 논증과 인용으로 페이지가 가득 메워지는 경향도 있습니다만, 막스 갈로는 소설에서 보는 듯한 평면적 내러티브로 담담하게 이야기를 이끌어 나갑니다.


프롤로그에서 약간의 예외가 있기는 합니다. 혹시 지난 시절, MBC TV에서 제작 방영한 <제 4공화국>이라는 드라마를 보신 적 있을까요? 이 드라마의 시작은, 충격적이게도 12.12 쿠데타 사건을 그 시작으로 삼습니다. 해당 시기의 정권은 박정희 대통령의 피격으로 이미 막을 내렸지만, 헌정사적으로는 전두환의 대두와 함께 공식적으로 그 종결을 맞습니다. 이야기를 하면서 그 결말을 대뜸 서두에 제시하는 방법은, 영화 <아마데우스> 등에도 보듯 서사의 시계열을 비트는 일종의 미학적 충격, 교훈적 의도에서의 종지부 도치 등의 효과를 노리고 시도되는 게 보통이죠. 이 책은 그런 맥락에서, 왕 루이의 최후를 프롤로그에 갑자기 배열하여, 읽는 독자로 하여금 혁명의 충격파를 급작스럽게 맛보게 하는 효과를 노립니다. 프랑스 혁명은 사실 그 전례를 찾기 힘든 드라마틱한 사건이었기에, 이런 인위적인 재배치가 그닥 필요 없기도 하지만, 막스 갈로는 자신의 책을 읽는 독자의 반응을 예상하기에 앞서, 저술자인 자신이 먼저 그 극적 흥분을 느끼고 있었기에 이런 (그로서는 대단히 드문) 파격을 구사한 것 아닌가 짐작합니다.


막스 갈로는 다양한 사료로부터 인용을 하되, 주로 인물들의 편지나 개인적 회고를 즐겨 인용하는 습관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를, 소설을 빼닮은 그의 글에 배치할 때 마치 대사처럼 활용하곤 합니다. 그의 이런 기법은 우선 인물의 생생한 육성을 들을 수 있고, 소설적 재구성에 있어 대사를 인위적으로 지어내는 부담을 덜 뿐 아니라 사실에 충실하게 극을 재현한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루이 15세는 이미 늙어 나라를 경영할 활력을 이미 잃고 있으며, 후계자는 그 자질이나 인성 면에서 믿음이 가지 않는 인물입니다. 왕실을 둘러싼 이런 불안한 분위기는, 오스트리아 대사가 본국에 보낸 서간을 통해서도 여실히 드러납니다. 대사의 생생한 표현을 그대로 끌어 오는 방식으로, 갈로는 후계자 루이의 인간됨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상퀼로트(바지조차 입지 못 한 자), 제 3신분(시예즈의 표현대로, 모든 것이어야 하나 아무것도 아닌 자)의 부당한 처지와 대우를 상세히 공초하고, 이런 정의의 입장으로부터 부패하고 무능한 왕정이 전복되었다는 식의 서술, 교훈적 서사, 선과 악을 가르는 공리적 관점은 역시 우리가 익히 봐 오던 것입니다. 최근에는 이런 전통적 관점에 대해, 혁명 세력의 과도한 자기 합리화가 부른 역사 왜곡이라는 반론이 만만치 않게 일어 왔습니다. 멀리는 츠바이크의 평전도 다소 그런 분위기였으며, 최근에는 안토니아 프레이저의 저술이, 시대의 거부할 수 없는 파고 앞에 부당한 누명을 쓰며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 간 왕가를 다소 동정적인 눈으로 바라보기도 했죠. 막스 갈로는 이런 다양한 시선의 교차 와중에, 절묘한 스탠스로 균형을 잡고 모든 파트의 입장을 퓨전으로 영사하고 있습니다. 이 책은 혁명 세력, 시대의 정의와 유리한 파고를 거침 없이 이용하는 전위의 움직임도 남김 없이 잡고 있으며, 동시에 (비록 무능했을망정)고상하고 품위 있는 왕족들이 야만적인 대중 앞에서 맞이해야 했던 최후를 가감 없이 서술하고 있습니다. 이 책 맨 앞에 보면, 루이 15세에게 칼을 휘두르다 가벼운 상처를 입힌 광인의, 사지 절단식 사형이 등장합니다. 그는 죽음의 순간 모발 모두가 갑자기 희어지는 초자연적 경험을 맞았다고 하는데요, 이 책 맨 뒤에 나오는 앙트와네트 왕비 역시, 그 시련과 모욕의 세월을 보내는 동안 머리가 백발이 되었다고 합니다, 혁명은 마치 설원에 낭자한 핏방울의 흔적처럼, 그렇게 사회와 인간에 깊은 상처를 남기고 성장을 꾀하는 잔인한 진화의 총아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누가 정의인가, 누가 죽어 마땅한 반동이었는가, 이런 질문은 장엄한 역사의 전개 앞에 무의미하게까지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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