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근담 - 국내 최초의 완벽 주석서
홍자성 지음, 신동준 옮김 / 인간사랑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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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근담은 정말 종류도 다양합니다. 인간사랑에서 펴낸 이 완벽 주석본의 저자이신 신동준 선생의 설명처럼, 명대에 나온 원본, 이후 청대에 나온 건륭본, 그리고 중국 대륙(China proper)와 대만에서 나온 그 숱한 해제본 등 셀 수 없을 정도입니다만, 우리 한국에서 그간 다양한 저자들에 의해 나온 역본 역시 만만치 않게 수효가 많습니다. 지훈동탁("승무"의 시인)의 채근담, 더 시대를 앞서 만해 한용운의 채근담도 있습니다. 댓글 이벤트에서도 제가 그렇게 썼지만, 채근담은 그간 별 이유도 없이 <명심보감>, <소학>처럼 아동용 수신서 정도로만 인식되었을 뿐, 그 진가를 평가 받지 못 한 아쉬움이 컸는데요. 신동준 선생님은 발문에서, 공교롭게도 역시 <명심보감>, <소학>을 거론하고 계시지만(저는 미리 이 책을 볼 기회가 없었습니다. 제가 거주하는 곳은 서점이 많지 않아서요), 저와는 정반대의 맥락에서 교양인들은 이 세 서적을 필독서로 쳐 왔다는 점을 밝히고 계십니다. 일개 독자인 저는 다시 겸손한 마음으로 돌아가야 할 것 같습니다.


신동준 선생은 들어가는 글에서, 진계유의 <소창유기>, 왕영빈의 <원로야화>와 함께 혼자성의 이 책을 처세 3대 기서라고 하고 계십니다. 기 서라는 말은, 삼국지연의, 수호전, 서유기를 총칭할 때 흔히 쓰는 말이죠. 기서는 기이한 책이라고 하나, 좋은 의미로 쓰인다고 말씀하십니다. 참으로 타당합니다. 제가 조금만 덧붙이자면, '기이'라는 말은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중립적인 말입니다. 맥락에 따라 "기이하다."고 하면, "가괴(可怪)로 고!" 하는 말처럼 개탄하는 의미도 될 수 있습니다. 혹은 초자연적이라는 뜻도 품습니다. 영어에서도 대체로 비슷한 의미인데요, extraordinary는 상궤에서 벗어났다는 뜻도 되지만, 그래픽 노블이나 영화 제목에서처럼 "특별한"의 의미로 쓸 때도 있습니다. 이 extraordinary가, 한자의 奇異와 아주 흡사한 단어입니다.


그러나 "기이(奇異)"에서 기(奇) 자만 골라 뽑으면, 대체로 좋은 의미입니다. 우리가 요즘은 잘 안 쓰지만, "기남자(奇男子)"라고 하면, 젊고 잘생긴 남자라는 뜻입니다. 이 때에는, handsome과 같은 의미죠. 모리스 르블랑의 작품 <기암성>이라고 할 때의 기(奇) 자도, 절경(絶景)이라는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프랑스어 원제목은 L'Aiguille creuse라고 해서, 그저 "빈 바늘"이라는 뜻뿐입니다만).



 


이 채근담 역시, <고문진보>나 그 외의 많은 걸작 고전처럼, 진집과 후집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이 인간사랑판의 가장 놀라운 장점 중 하나는, 바로 사자(四字)제(題)의 편집을 취하고 있는 것입니다. 중국인들은 본디 4글자로 된 형식과 라임을 좋아하는 데다, 우리 역시 한문 고전을 접할 때는 이에 익숙해진 터라, 신동준 선생의 이런 태도처럼 4글자 제목이 위에 붙어 있으면 기억하기도 좋고, 의미가 압축적으로 정리, 연상되어서 더할 나위 없이 편합니다.


1장 "일시만고"를 보면, 寧受日時之寂寞 부분이 흥미롭습니다. 본디 고전의 주해에서는 실질어, 명사어구를 중심으로 풀어 놓는 것이 관행이고, 또 주희니 좌구명이니 하는 분들은 본디 중국인이니만치 허사나 기능어의 해석을 베풀 필요를 못 느꼈습니다. 이런 책에서는 그래서 문법사의 설명을 하지 않는 게 보통입니다. 저 맨 앞의 寧자는, 안녕이라고 할 때의 그 "영"인데요. 여기서는 차라리 寗으로 새기는 게 타당합니다. 같은 음이긴 하나 뜻이 판이하게 다른 것을, 동음동자라고 해서 일종의 가차로, 허신은 그의 <설문해자>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이 <채근담>에서도 이런 예는 무수히 많은데, 바로 뒤의 2장 "박로소광"에서 (p41:3) "기계"라는 글자에서 보듯, 여기서는 그저 奇計의 의미일 뿐입니다. 신동준 선생도 이 점 분명히 밝히고 계시죠.


제 5장 "역이지언"을 보면, 이상하게도 해석에서 便把此生 어구가, 한문 원문에는 나와 있으나 한국어 해석에서, 그리고 주석에서도 빠져 있습니다. 좀 이해가 되지 않는 대목인데요. 이 어구는,

즉, 제 목숨을 집어 들어...

라는 뜻입니다.

便은 卽입니다. "곧. 다시 말하면"으로 해석하고요.  把는 "파악"이라고할 때의 그 "파"입니다. 집다, 장악하다의 뜻입니다. "제 목숨, 제 일신을 집어 들어 짐새의 독에 빠뜨린다."이렇게 full로 새겨야 문학적 박진감이 와 닿습니다.


제 2부의 내용은 "방원"입니다. "방원方圓"이란 무엇인가. 方이란 글자는 방정方正의 방입니다. 바 르고 모가 났다는 뜻이죠. 반듯반듯한 건 구부러진 것보다 보기는 좋고, 본성상 우월합니다. 하지만 우리 말 속담에 "모난 돌이 정 맞는다."고, 너무 반듯한 것은 꺾이기 쉽고, 공격의 표적이 되기 쉽습니다. 사람이 타고난 재주를 연마해서, 반듯반듯한 모서리를 더욱 곧게 하고, 날카로운 지혜는 더욱 날카롭게 해서, 세상에 공리적으로 기여를 하거나, 자신의 이상을 성취하면 좋겠으나, 세상 사람들이란 그런 독주를 곱게 보지 않습니다. 아무 이익이 되지 않아도, 잘나가는 사람 딴지를 걸고 싶은 게 속마음이자 대세입니다. 세상의 풍토가 본디 이와 같다면, 군자는 그 처세를 어떻게 가져야 할까요? 여기서 두 번째 글자의 소용이 등장합니다. 圓滿입니다. 둥글둥글 사는 미덕이 필요하다는 거죠.


飛蛾投燈 : 날아다니는 부나방이 등불에 뛰어드는 것을 말합니다.

羝羊觸蕃 : 멋모르는 숫양이 울타리를 뿔로 들이받다가, 꼼짝도 못 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신동준 선생은 이 두 구절을, 自繩自縛과 같다고 풀고 있습니다. 재주가 뛰어난 것만 믿고 함부로 날뛰다가, 돌이킬 수 없는 함정에 빠져 신세를 망치는 걸 빗댄 말입니다. 채근담은 이처럼 정연한 편제를 갖추고 있어서, 한 가지 제목에 유사한 내용이 점층적으로 심화되는 모습입니다. 한 구절 한 구절을 읽어 가며, 처세의 깊은 교훈을 새길 수 있습니다. 특히, 젊은이들이 그 혈기방장함을 삭일 때 유용할 것이라 짐작합니다.


45장은 維摩屠劊라고 제목이 붙어 있습니다. 維摩는 재가의 처사로서, 부처님의 제자보다 더 깊은 도를 깨친 수행자라고 합니다. 이런 재가 불자를 처사라고 하는데, 유마는 최초의 처사가 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유마와, 백정인 도회는 서로 본성이 다르지 않고, 마음 속에 다 같은 부처님을 지니고 있다는 뜻입니다. 이 시기 중국에 불교가 얼마나 깊이 뿌리를 내렸는지 알 수 있고요. 또 <채근담>이 유교 일변도의 가르침이 아닌, 오픈된 자세로 동양 정신의 진수를 다 담은 텍스트임도 짐작게 합니다.



해동의 금강(金剛)은 갈수록 기화요초가 눈을 시리게 한다고 송강은 오백 년 전 그의 가사에서 술회한 바 있습니다만, 이 신동준 선생의 채근담이야말로 갈수록 장관입니다.

옛말에 문일지십이라고 있습니다. 공자의 제자 안회, 안자를 일컬어 생긴 말이죠. 그런데 한때 기업체에 몸담으셨다가 본격 저술가로 변신한 이 신동준 선생의 책을 보면, 한 권을 읽고 열 권의 지식을 쌓는 느낌입니다.


본디 주석서란, 동양 고유의 전통입니다. 앞에서도 한 번 언급했지만, 이미 전국시대에 공자의 저서(라고 알려진) <춘추>를, 좌구명이 평석을 가해 내놓은 책이 이 경전의 결정판으로 이후 내내 애독됩니다. 서양의 annotation은 4,5세기에 들어 콘스탄티누스가 기독교를 공인한 이래, 성경 주석 작업에 일류 학자들이 종사하기 시작한 것이 고작 그 유래입니다. 법학 주석은 그보다도 한참 뒤죠. 다만 채근담의 경우, 경전의 지위까지는 아니었기 때문에, 그리고 출현한 시기 자체가 명대 정도밖에 되지 않으므로, 이 책 자체에 대한 주석 작업은 상대적으로 그리 활발한 편은 아니었습니다.


이 런 의미에서 신 선생의 이번 저술은 큰 의미가 있습니다. 그런데, 주석이 그저 뜻풀이나 고증적 해의에만 그쳤다면, 그것은 학문적으로는 의의가 크겠으나 같은 시대를 사는 우리 같은 일반 독자에게는 큰 도움이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런 점을 신 선생은 간파라도 하듯, 채근담의 자구 해석을 떠나 연관되는 주제에 얽힌 고사, 사화를 책 곳곳에 소개함으로써, 책의 단일 텍스트 이해를 넘어 삶의 진실, 처세의 궁극을 독자에게 일깨우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145p를 보십시오. 무명무위, 명예도 지위도 없는 것이 최대의 기쁨이다. 이 편을 보시면, 역대 최고의 명필 중 한 분으로 꼽히는 왕안석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태위 벼 슬을 지낸 치담이라는 이에게 재색을 겸비한 딸이 있었는데, 왕씨 가문과 혼인을 맺고 싶어 당주인 왕도에게 사람을 보내었답니다. 소임을 마치고 다녀온 이에게 어느 동자가 괜찮더냐고 물으니, 이 사람 왈 "왕씨의 자제들이 모두 훌륭했으나 유독 한 도령만은 오불관언이라는 듯 배를 드러내고 침상에 누워 있었습니다."

치담은 이 말을 듣고, '내가 원한 사윗감이 바로 그 녀석이다!"며 무릎을 쳤다고 합니다. 이 기이한 처신을 한 사내아이가 바로 왕안석이었구요.


서 성이라고는 하나, 그저 글씨만 잘 썼을 뿐 아무 업적을 공직이나 학문 분야에서 남긴 바 없었으면 그의 이름이 그토록 알려지지는 않았을 겁니다. 또, 그저 예쁘게 보이는 게 목적의 전부인 기술과는 달리, 그의 솜씨에는 닦은 인격이 드러나 있었기에 칭송을 받은 거겠구요. 치 담이라는 이의 안목, 감정안도 그렇습니다. 손님이 왔는데 그냥 배만 드러내고 누워 자고 있으면 상수일까요? 그건 무례함을 드러내는 행위에 지나지 않습니다. 왕도 집안의 가풍이 어떠한지는 나머지 형제들이 단정한 몸가짐으로 손님을 맞이했다는 일에서 알 수 있습니다. 태위가 보낸 사람이면, 그 사람은 전 집안 차원의 정성이 깃든 대접을 받아야 합니다. 그런 일은 예사 가문에서, 일 년에 한 번도 채 일어나기 힘든 일입니다. 그의 방문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아무리 철이 없어도 모를 리가 없습니다. 만 약 형제들 모두가, 손님이 오건 말건 배를 드러내고 낮잠이나 자고 있었으면, 이 집안은 혼사를 맺는 건 고사하고 이후 명문가의 사교에서 완전히 배제되는 수모를 겪었을 것입니다. 집안의 훌륭한 분위기는 나머지 형제들이 증명했고, 그 과실은 그러나 배포 좋은 안석이 얌체처럼 영리한 한 수를 두어 따 먹은 거겠죠. 물론 천박한 "쇼"가 아니었음은 이후 그의 행실이 증명했겠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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