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버려졌다 다독다독 청소년문고
마리 오드 뮈라이유 지음, 이선한 옮김 / 큰북작은북 / 2013년 5월
평점 :
절판


제 목만 봤을 때는, 아프리카의 기아라든가 동남아시아 최빈국에서 비참한 처지에 빠져 있는 아이들의 이야기인 줄 알았어요. "그래, 그저 고마운 줄 알고 살아야지." 옷깃을 여미고 엄숙한 마음가짐으로 자세를 바로하고 책을 펼쳤더랬습니다. 물론, 코믹하고 가벼운 표지 그림이 더 먼저 눈에 들어온 터라 이런 생각이 전혀 방해 받지 않은 건 아니었죠. 하지만, 선입견과 시각적 감각의 힘 둘 중 어느 쪽이 더 힘센 편이냐고 누가 묻는다면, 제 경우는 전자라고 별 망설임없이 답하겠습니다.


선 입견은 그저 선입견일 뿐이었고, 이런 상황에서 더 믿어야 할 건 보다 근접한 영역에서 제공하는 정보라는 점 다시 새기게 되었습니다. 코믹한 표지 그림이 암시하는 건 정말로 코믹한 컨텐츠였죠. 이 깜찍하고 작은 표지와 형식에 담긴 스토리는, 합쳐서 다섯의 배다른-나이 편차도 상당한- 남매들의 이야기입니다. 그 중 셋은 아직 나이가 어린 데다 어머니가 같습니다만, 나머지 둘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 셋은 어느 날 갑자기 어머니를 잃습니다. 아버지는 일찌감치 그들을 버린 데다, 지금은 세상까지 등진 상태입니다. 사회 안전망이 잘 갖춰진 프랑스가 배경이니, 당국은 이 셋에 후견인 노릇을 해 줄 가까운 피붙이를 찾아 나섭니다. 아직 젊은 나이에 판사라는 중책을 맡은 여성은 수소문 끝에 두 후보자를 발견하는데, 그 둘이 바로 이 셋의 배다른 누나와 오빠입니다. 전자는 나이도 지긋한데다 재력도 충분하지만, 쌀쌀맞고 이기적인 여성이라 큰 기대를 갖기 힘듭니다. 후자는 빼어나게 잘생긴 청년(판사는 이 사실을 만난 후에야 알게 되죠- 아무리 판사라도 이성의 외모로부터 자연스럽게 받게 되는 호감을 거부하긴 힘든가 봅니다)이고 다정다감한 성격이지만,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무자력자인데다 성적 소수자이기까지 합니다.


특 이한 운명은 그들의 외적 환경뿐 아니라, 세 아이가 타고난 내적 자질과 외모에서까지 뚜렷한 궤도를 예정합니다. 아이 중 맏이는 영재소년입니다. 중학교 저학년인데도 고3 졸업 자격 시험(번역서에는 안 나오지만 우리가 아는 바카로레아겠죠?)을 준비하는데, 그나마 고득점이 기대되어 다니는 학교의 교장 선생님 이하 모든 직원의 관심의 초점입니다. 다만 그 생긴 모습이.... 미소년을 기대했던 판사를 거침없이 실망시키는 수준입니다(일는 독자도 몰랐는데, 판사의 그런 심경이 드러나는 대목에서 같이 비로소 눈치를 채게 되죠). 둘째는 여자아이인데, 공부를 꽤나 잘하지만 더 커서 오빠처럼 빼어난 모습을 보일지는 아직 모르겠습니다, 생긴 모습은 그저 키만 껑충 클 뿐, 보는 사람을 서운하게 하는 수준이죠. 막내는 완전 바비인형인가 봅니다. 보는 사람 모두를 홀딱 반하게 할 귀요미임이 강하게 암시됩니다.


이 쯤 되면 그저 즐겁기만 한, 미디어 소개대로 한 편의 시트콤인가 보다 생각하게 되겠죠?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우리나라 시트콤들은 그렇지 않습니다만, 외국의 경우 그 기본 상황은 상당히 심각한 비극이나 갈등을 포태하고 있는 예가 많죠. 일단 주인공들이 처한 상황 자체는 비극적입니다. 이 웃으래야 웃을 수 없는 상황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발휘하는 지혜가, 바로 웃음을 그 본질로 하는 우회적 돌파 방안입니다. 마치 얼마 전에 출간된 하지현 박사의 <에능력>에서 주장하는 바처럼, 사람의 힘으로 감당하기 힘든 일은, 웃음으로 돌아가듯 극복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는 듯 말이죠.


아 직 제 앞가림도 못할 어린 나이에 천애고아가 되었다는 사실 자체가, 본인은 물론 지켜 보는 주변인들도 똑바로 응시할 용기가 안 생기는 곤경 중 곤경입니다. 무려 후견인으로 지목된 20대 바르 역시 마찬가집니다. 그 나이에 아직 고정된 일자리도 없고, 나아질 전망도 보이지 않습니다. 힘든 이들이 모여 사는 배경이 된 동네 거주민들 역시 마찬가집니다. 그저 우울과 절망만이 짓누르는 무거운 분위기가 되어 마땅합니다. 제목에서 괜히 독자가 무거운 인상을 받은 게 아닙니다. 물리적, 객관적 요소만 추출하면 이보다 더 암울한 스토리가 없습니다.


인 간의 위대함은 절망을 웃음으로 극복할 수도 있다는 겁니다. 꼭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게 아니라, 그럴 수도 있다는 게 신통한 존재죠. 스티븐 스필버그의 <칼라 퍼플>을 보셨나요? 이 감독의 재능은, 도저히 눈뜨고 못 지켜 볼 비극에서도 한 줄기 여유를 찾고, 유쾌함으로 반전한 후 일말의 희망을 모색한다는 데 있습니다. 이 작품 역시 마찬가집니다. 빈곤과 차별, 폭력과 자기파괴가 교차하는 비극 중에서도 인간들은 웃음을 잃지 않습니다. 그 웃음 속에는 희망이 있고, 연대가 있습니다. 무거운 주제를 이처럼 경쾌한 이야기 속에 청소년들에게도 부담이 안 되게 잘 녹여낸 작가의 솜씨가 좋습니다. 저 같으면 10대 아이들에게 자신 있게 추천해 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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