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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쾌한 소통의 기술 - 적을 내 편으로 만드는
조너선 헤링 지음, 서종기 옮김 / 북허브 / 2013년 4월
평점 :
요즘은 소통의 시대입니다. 아무리 빼어난 능력과 기술의 보유자라고 해도, 그 컨텐츠를 소통시키지 못하는 사람은 성공할 수가 없습니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도 있지만, 이 구슬을 설사 금색 찬란한 줄에 꿰어 장신구로 가꿔 낸다 해도 이를 장롱 속에 감춰 둔 채라면 아무 가치도 발하지 못합니다. 소통은 묵혀진 가치를 비로소 유툥, 교환의 상품으로 만드는 마지막 손길입니다.
그런데, 그 소통의 기술로 남을 내 편으로 포섭하는 것은 물론, 심지어 오랜 적까지 감복시켜 나의 우군으로 끌어들일 수 있다면? 이는 손자가 그의 병법서에서 말한, "싸우지 않고 전쟁에서 이기는 상지상책"이라고 평가할 만도 합니다.
적을 내 편으로 만든다, 어찌 보면 막연한 말입니다. 과연 어느 정도까지 적대하던 상대라야, 능숙한 소통으로 내 편을 만들 수 있을까요? 조너선 헤링은 그 비결을 다음과 같이 공개합니다.
첫째, 소통은 그 자체가 목적은 아니라고 이야기합니다. 이는 얼핏 듣기에 상당히 역설적입니다. 하지만 그 표현의 진의는 다음 문장을 읽어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레이건은 커뮤니케이션의 대가라는 평을 들었고, 국민들 사이에서는 테플론 대통령이라는 칭송과 함께 높은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정작 자신은 장관들의 이름도 채 기억하지 못하는 업무 소외자였다."
이 진단은, 우리가 흔히 고민하는 커뮤니케이션의 문제로 모든 것을 환원할 수는 없다는 걸 암시하고 있습니다. 능력은 있으나 타인과의 소통 능력이 떨어져서 결국 무능력자 취급을 받는 것도 억울한 일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반대로 능력이 떨어지는 사람이 소통에만 능숙한 것도 결국엔 문제를 야기하게 마련이라는 거죠. 궁극적으로는 제 포스트에서 바른 실력을 발휘하는 것이 정도라는 설명입니다.
다음으로, 논쟁에서 이기는 방법에 대한 유용한 원칙을 자세히 풀어 주고 있습니다. 그 중 제 눈에 띈 건 입증 책임의 원리입니다.
입 증 책임은, burden of proof라고 하죠. 법학 전공자들은 학부 시절에 한두 번 들어 보았을 용어입니다. 내가 A라는 주장을 했을 때, 그 A라는 주장이 참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일은, 내가 아닌 상대방에게 떠맡겨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어떤 주장이 타당하다는 것은 그 주장을 처음으로 제기한 사람이 일단 진다는 거죠. 주장만 하고, 그것이 왜 옳으냐는 의문에 대해 묵묵부답이라면, 그건 주장하지 않은 것과 같은 결과라는 뜻입니다.
실제로 직장이나 일상에서(치열한 논쟁은 어쩌다 시비가 붙은 사람과 벌어질 수도 있죠) 말다툼이 곧잘 일어납니다만, 우리 나라의 경우 먼저 크게 소리만 지르고 뒷감당은 하지도 않은 채 그저 자기 말만 우기는 사람이 그냥 이기는 걸로 되는 일이 있습니다. 토론의 규칙이 사회의 컨센서스로 자리잡은 외국이라면 생각도 못할 일이죠. 그래서 그네들은 법적 소송을 벌여도 추태나 꼼수가 난무하는 일이 없고, 대체로 결과에 잘 승복하는지도 모릅니다. 한국인들은 그저 주관적으로 억울함이 크다고 느껴서,. 큰 소리로 우기면 다라고 생각하는 탓에, 이런 제대로된 규칙에 따른 논쟁이 이루어지지 못하는 일이 잦습니다.
이 책에서는 토론에 이기는 비책을 가르쳐 주고 있다기보다, 토론에 이기는 정석을 교과서적으로 차분히 확인해 주고 있습니다. 상당 부분은 논리학 교과서에 나오는 원칙과 세부 지침을 일상에 적용해서 알기 쉽게 풀어주는 형식입니다. 하지만 이 책들의 소중한 교훈이 실제에서 힘을 발휘하기 전에, 먼저 우리의 교육 환경이 크게 바뀌어서 정당한 승자가 승리를 거두는 풍토가 선행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아직도 한국은 룰이 부재한 편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