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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티풀 크리처스 - 그린브라이어의 연인, 판타스틱 픽션 블루 BLUE 3-1 ㅣ 판타스틱 픽션 블루 Blue 3
캐미 가르시아.마거릿 스톨 지음, 김승욱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1년 1월
평점 :
언제부터인가 늙지도 않고, 죽지도 않는 뱀파이어들의 이야기가, 영원히 그 싱싱한 젊음을 유지하고만 싶을 틴에이저들을 겨냥한
판타지물의 주제로 애용되기 시작했다. 철없는 젊은이들은 저희들의 청춘이 마냥 영원할 것이라고만 착각하지만, 동시에 그들의 본능적
영악함은 그 터질 듯한 꽃봉오리의 선도가 어느 한 순간 낙화의 처연함을 맛볼 것이라는 점도 잘 안다. 잔인하고 철두철미한 시장의
계산은 이들의 환상과 집착을 정조준함이 당연했고, 여기에 <나이의 초월과 망각>을 새 화두로 내세운 시대의 한 트렌드,
<어모털리티>의 의식 조작적 선동도 한 몫 한 바 있다.
여기에 기묘함(queerness)를
더하는 건 두 공동저자의 문화적 배경과 개인적 커리어다. 한 저자인 캐미 가르시아는, 작중 애마 트루도를 대변하듯 아직도 남부
고유의 자부심과 설욕 의식이 에고 한 구석을 떠나지 않은 정통 남부 출신이다. 공교롭게도 그는 생업의 대종을 10대 청소년을
상대하고 교육하는 일로 이어가는 중이기도 하다. 어찌 보면 기막힌 부조화를 이루고 있는 듯한 이 <남부>와
<틴에이저> 키워드 둘의 조합은, 끝없이 이어져 식상하다 싶은 에버그린 흡혈귀 스토리에 새로운 활력과 호기심 요소를
충전한다. 한편 다른 한 사람의 공저자인 마가렛 스톨은, 역시 영화와 소설 분야 모두에서 그 뱀파이어 피처의 열기와 활력이 식지
않고 있는 영국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교육 받은 하이브리드성의 교육 배경을 지닌 신인 작가다. 그녀의 교육 자산 역시 정통 영문학의 영역에 한 발을 걸치고 있는가 하면, 다른 한 발은 첨단의 성장 산업인 비디오 게임 제작에 들여 놓은, 고전과 모던의 혼성 크리에이티브를 요하는 이력을 완성해 나가는 중이다.
예
전, 수학자 겸 철학자인 레이먼드 스멀리언은 그의 저서 <이 책의 제목은 무엇인가>에서, 책 말미에 괴델의 불완전성
정리를 퍼즐 형식으로 간단하게 소개하며, "그 여인이 아이를 낳지 못할 경우, 세계가 멸망하는 그런 여인은 과연 존재하는가?"
라는 명제의 진위를 논리학적으로 검증한 적이 있었다. 그에 대한 해답은 우리의 상식을 크게 벗어나게도,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1998년 프랑스의 영화 감독 뤽 베송은 역시, 그녀(과연 성별상 '그녀'의 카테고리였을까?)가 그 미션에 실패할 경우, 지구는
물론 전 우주가 파국의 운명을 맞을 수 있는, 궁극의 에너지원 '제 5원소'를 체화한 어느 소녀의 어드벤처를 영상으로 옮긴 바
있다. 삼라만상은 정해진 섭리에 의해 탄생하고(만약 그 시작이라는 게 존재한다면), 운행을 그 고유의 항상성 원리에 의해 지속하며, 주어진 엔트로피의 탄성이
교란 한계점을 맞이하면 소멸하게 된다. 허나, 그 코스모스에 갇힌 피조물(크리처)들은, 이 분명하고도 불가역한 페이트에 맞서
절망적이고도 영웅적인 저항을 지속하는데, 그것 또한 소립자들의 입자 가속기 속 격렬한 운동이나 마찬가지로 물리계의 법칙 준수 양태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세상은 분명 파국을 향해 질주한다. 그러나 그 파국은 가능한 범위에서 최대한 그 결말을 회피하려
든다. 여기에 개입하여 운명의 분수령을 변환하려 드는 건 아직은 약하고 미성숙하게만 보이는 제 5 원소의 잔다르크적 출정(出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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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18일 제법 그 면면이 흥미로운 진용까지 갖춰 화려한 스크린으로까지 옮겨져 우리에게 전면적으로 다시 선뵈는 이 이색적인
판타지물은, 이러한 오랜 문학적-신화적-종교적 전통의 외피와 얼개 위에다, 미국 고유의 흑역사적 상처까지 접합하여 기묘한 템포와
색채로 전개해 나가는 <뜻하지 않은 여정의 시작>이다. 리나(Lena)와 이선(Ethan)은 과연 이 은하계적 변곡점의 중력 교차의 난제에 대해 어떤 식으로 타개, 탈출, 최종적 조율
작업을 행할 것인지? 한 개인의 성숙과 통과의례가 전 공동체의 운명을 좌우한다는 기막힌 미시와 거시의 상호 얽힘은 알고 보면
소설 속에서의 허구만은 아니다. <체인지메이커>라고 했던가. 결국 보잘것없어 보이는 개인의 실천과 인연이 씨줄, 날줄로
얽혀, 거대한 흐름의 근본 흐름을 바꾸는 건 우리 인류가 익히 접해 왔던 우주의 섭리에 가깝다. 청소년 판타지에서 오랜 진리와
교조를 확인하는 뜻밖의 소득은 깨어 있는 독자에게 언제라도 가능한 일이며, 하물며 수업시대를 견실한 인문학적 소양으로 수놓고
담금질한 능력 있는 저자들의 손을 통해서라면 당연 기대함직한 멋진 체험이다. 소설과 영화는 알고 보면 상호 대체 관계가 아닌,
입체적 인식의 개안을 돕는 다용도 키트를 구성하는 쌍둥이 형제이니, 이 변덕스러우나 설레는 기후의 4월에 우리를 저 흥겨운
놀이동산으로 신나게 띄워줄 청룡열차라 안심하고 의지해도 좋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