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같은 방 둘이서 2
서윤후.최다정 지음 / 열린책들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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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 덩그러니 남겨 두고 떠나온 방 중에는 문을 잘 닫고 오지 않은 방도 있는 것 같았다(p10)." 여기서 방이라 함은, 자주 이사를 다녔던 한문학자인 저자분이 몸담았던 물리적 공간을 뜻하는 게 일차적이겠습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면, 물리적 거주를 옮긴다는 건 정서적 안정의 거점 역시도 동요되는 사건입니다. 아무리 이사를 마쳐도 내 정신 극히 일부는 그곳에 머물러 다소의 미련을 남깁니다. 문을 열고 나온 듯하다는 건, 나의 흔적이 곳곳에 묻은 그 방을 혹시 언젠가는 다시 찾을 여지가 있다는 뜻으로도 읽힙니다. "살아온 시절의 우리를 닮은 방에서 우리는 제일 안전한 사람이 될 수 있다." 공저자인 시인과 함께 방에 대해 나지막히 들려 주는 이야기들이 독자의 마음을 따듯이 덥힙니다.

(*책좋사의 소개로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의자는 가구 중에 가장 보행 수가 많다.(p38)"  의자도 종류가 다양하기 때문에 이 문장이 아니면 지금 어떤 의자를 두고 이르시는지 잘 모를 수 있었겠네요. 특히 바로 뒤에서 다리마다 테니스공을 끼웠다고 하셔서 아 그럼 그럼 상황이겠구나 짐작되었습니다. 주인의 기분에 따라 배치된 장소를 옮겨가며 언제는 햇볕을 가득 받기도 하겠고, 언제는 다소 어두운 구석에 놓이겠지만, 사람의 감정을 오롯이 받아내며 독서나 사색 활동을 지지해 주던 의자. "내 편이 되어 나를 돕고... 모든 일을 마치고 안으로 집어넣어지며" 개운한 성취감까지 낳아 주는 의자. 이런 문장을 읽고 나면 방에 놓인 흔한 의자도 달리 보이는 듯합니다.

"열지 못하는 유리창은 투명한 벽이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p54)." 어렸을 때에는 왜 기차나 비행기의 창은 열 수 없게 한 건지 궁금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크게 봐선 안전이지만 후자의 경우는 정책적 선택의 여지가 없고 물리적 한계 때문이니 이야말로 "벽(壁)"의 전형적 예입니다. 저자가 제주에 갈 때마다 방문하는 어느 술집은 정말로 통유리창이 열리지 않으니 창(窓)이 아니라 벽이겠는데, 그 역시도 상업적 고려뿐 아니라 방문자의 묘한 상상력을 자극하는 사장님의 창의(創意)입니다. 벽이 없으면 바로 밖으로 훨훨 날아오르려는(사실, 날개 없는 사람은 연직으로 떨어져 처박힐 뿐이지만) 인간의 만용에다 목줄을 채워 두는 배려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생각이 깊으니 장사가 잘 될 밖에요.   

p66에 인용된 진은영 시인은 세월호를 12년째 노래하고 기리며 환기하는 분이기도 합니다. 저자는 이 책에서 특히 진 시인의 <가족>에 대해 특별한 느낌을 표현합니다. 어렸을 때는 교과서에 나온 작품들을 선생님들이 외우게 시키기도 하는데, 저자는 진 시인의 저 작품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외운 적 없이 외우게 되었다." 공감이 깊으면 그렇게 되기도 하(겠)는데,  독자인 저한테는 윤동주의 <새로운 길>이 그랬습니다. 그런데 그 작품은 외형률이 어느 정도 드러나서 입으로 읊다 보면 그리될 수도 있는데, 진 시인의 저 작품은 순전히 메시지와 심상이라서, 비록 길이가 짧다곤 하지만 쉽지 않겠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사실 방은 방이고 사람은 사람입니다. 아무리 애착이 한때 생겨도 이미 떠나온 방에 대해 그렇게 깊은 애착이 남지는 않습니다. 그런데도 방 이야기로 이렇게 한 권 분량의 책까지 쓰신 걸 보면 살짝 짐작은 되었는데, 아니나다를까 p83에 "세상에서 가장 약한 것에 가깝고, 잘 우는" 분이라고 자기 소개가 나옵니다. 기대고 싶고 의지하고 싶은 마음이 깊어야 방에 대해 이렇게 많은 이야기가 나오겠죠. 또 책을 찬찬히 읽어 보면 알 수 있지만 젊었을 적 넉넉지 못한 경제적 형편의 투영도 "집"이 아니라 "방"을 향하는 거죠. 저자는 또 여성치고 키가 큰 편(p151)이시라 누우면 딱 차는 작은 방에 대한 기억이 남다를 수 있습니다. 臥遊(와유)라는 조선시대 문인들의 용어도 언급됩니다.

저자는 지금 무우헌(p169)이라는 연구실에 주로 거합니다. 연구실도 실(室)인 만큼 일종의 방입니다. 과연 사람은 지금 어떤 크기, 어떤 구조, 어떤 입지의 방에 머무냐에 따라 역량과 의기와 기상과 감정, 또는 걱정 유무가 결정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방도 사람을 근본적으로 프레임할 수 없고, 오히려 방의 의미와 성격을 만드는 건 그에 머물렀던 사람의 그릇과 영혼일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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