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로 읽는다 지정학 전쟁사 지식 도감 지도로 읽는다
조지무쇼 지음, 안정미 옮김 / 이다미디어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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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세계는 정치와 경제를 떠받치는 근본 질서가 흔들리는 전환기를 맞았습니다. 한국은 세계의 변방에 위치한 작은 나라이므로, 강대국 간의 역학관계가 앞으로 어떻게 변동하느냐를 면밀히 주시해야만 합니다. 최고의 도감 책을 펴내는 이다미디어에서 여태 출간한 대부분의 도감류는, 사실 어떻게든 지정학과 긴밀한 관계를 갖는 내용이었습니다. 독자는 만약 모종의 지정학적 통찰을 얻고 싶었다면, 기존에 출간되었던 이다미디어의 도감 몇 권만 읽어 봐도 상당한 배움이 가능했을 듯합니다. 지도가 미려하고, 사실 독자들이 간과하기도 하지만 텍스트도 참 좋습니다. 관점이 중립적이고 냉철합니다.

하지만 관세전쟁으로 대표되는 중, 미 양국 간의 경제적 대립이 고조되고, 이를 넘어 중동이나 남아시아 바다에서 드디어 군사적 격돌이 임박했다는 진단이 대두하는 작금에는, 이제 지정학과 전쟁의 문제를 집중적으로 고찰할 필요가 절실합니다. 소설 <삼국연의>도 지도와 함께 읽어야 전술 전략의 탁월함이 적실하게 간파되듯, 지정학의 탐구에는 목적에 맞게 제작된 지도가 반드시 따라 줘야만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기간(旣刊) 이다미디어의 대부분 도감류는 지정학 도서로 독해해도 무방했다는 게 제 생각이며, 이제 이렇게 신간이 지정학과 전쟁 주제에 포커싱해 나오기까지 했으니 대단히 시의적절하다고 생각됩니다. 지도와 함께 보는 지정학 도서가 바로 지금 이 시점에 출간되어야만 했고 그 신간이 역시나 이다미디어 책입니다. 

그제(2025. 9) 갑자기 미국 국채 가격이 폭락해서(=채권 금리가 폭등해서) 시장이 들썩였습니다. 트럼프의 관세 부과 조치(예고)에 격분한 일본에서 더 이상 미국 패권에 협조적으로 나오지 않고 투매에 나섰다는 분석이 나왔으며, 트럼프도 이에 놀라 관세 부과를 유예하겠다며 한 발 물러섰습니다. 중국은 이미 트럼프 1기 때부터 팔아 왔기 때문에 남은 보유 물량이 많지 않습니다. 일본은 이미 작년에도 갑자기 미 증시에 깔아 둔 자금을 갑자기 회수하여(이른바 엔 캐리 트레이드) 미 증시 폭락을 일으켰었는데, 이처럼 경제라는 건 배후에 깔린 하이 폴리틱스, 지정학 구도를 모르면 그 깊은 흐름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일본의 유명한 전문가 집단인 ぞうじむしょ(造事務所)는 일관되고 객관적인 프레임으로 쉽게 세계 독자와 소통하는 이들이지만,  일본만의 시야도 저술 중에 은근히 드러냅니다. 트럼프가 주도하는 신 질서에 대한 일본 측의 의구심이 책에도 행간에 표시되며, 앞으로 일본과도 개별적으로 협조해야 할 한국 입장에서 참고해야 할 바가 많습니다.

제1장은 해양국가와 대륙국가 간의 대립상을 다룹니다. 영미의 국제정치학, 특히 현실주의 학파라면 수백 년 간의 외교사를 오로지 이 그레이트 프레임에 의해서 통찰합니다. 유럽 역사(전쟁사)도 섬(브리튼)과 대륙 사이의 싸움이며, 나폴레옹 1세의 부침(浮沈) 뒤에는 그 바톤을 제정 러시아가 이어받아 이른바 그레이트 게임을 펼칩니다. 이 구도가 동아시아에서도 그대로 이어지는데 미-영-일이 한 축을 이루고 중국이 대척점에 서서 한판 붙은 게 청일전쟁이요, 그 후속편이 러일전쟁이었습니다. 한국전도 중-소-북이 한 팀을 이루고 (불과 그 얼마전까지 교전국이었던) 일본과 미국이 한 편이 되어 피터지게 싸운 한판이었습니다.

책에서는 투르푸아티에 전투(해양의 이슬람, 대륙의 프랑크 제국), 가우가멜라 전투(해양의 알렉산드로스 대왕과 대륙의 아케메네스 페르시아) 등이 다뤄집니다. 이 관점이 항상 해양세력의 승리로 마무리하는 건 아니어서 이른바 레그니차 전투는 대륙 세력인 몽고 제국이 유럽 연합을 박살낸 대사건이었습니다. 이 1장에서 좀 특이한 건 진시황의 중국 통일이 다뤄진다는 건데, 딱히 대륙과 해양 사이의 갈등이 개입하지는 않는다는 이유에서입니다. 아마도, 일본 입장에서 영원한 아치에너미인 통일 중국이 처음으로 그 원형을 갖춘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겠습니다. 대표적인 해양-대륙 충돌 사례인 러일 전쟁은 제3장에 나오는데 이는 제국주의의 선발-후발 대립으로 더 정확히 고찰된다고 보는 이 책의 태도 때문입니다. 특히 이 책은 제국주의 대립의 경우 사실상 그 배후에 경제 팩터가 강력히 작용한다고 보아서인데 국제 학계에서 보편적으로 수용하는 프레임이기 때문에 책 전체에 더 신뢰감을 보낼 수 있는 근거이기도 합니다.

제2장 기독교와 이슬람의 대립은 제목 그대로 종교간 대립이 지정학 충돌에 그대로 대입된 사건입니다. 특히 엘리자베스 여왕이 영도한 잉글랜드와 펠리페 2세의 에스파냐 제국 간의 대결, 도버 해협 등에서 일어난 아르마다 해전이 이 책에서 소설처럼 재미있게 서술됩니다. 책에는 특히 네덜란드(이후 호국경 크롬웰 시대에는 불구대천의 원수가 되는)의 협력이 요긴히 이뤄져 스페인(식민 본국)의 군사 작전이 방해된 점도 기술됩니다. 역사, 특히 전쟁에는 이처럼 각종 요행과 변수가 다양하게 개입하여 거대한 흐름이 형성되는 것입니다. 불과 얼마 전 레판토 해전의 승리로 오스만의 콧대를 꺾은 스페인의 패배라서 이 사건의 여파가 더욱 충격적임은 이 책에서 아주 실감나게 설명합니다. 그 태반은 예쁜 지도의 힘 덕분입니다.

프랑스는 1930년대 내내 정정이 불안하여, 패전국 독일보다 경제력, 인구, 심지어 군사력마저 우위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마지노선만 믿고 방심한 상태로 지내다가 만슈타인, 구데리안 등 야전 사령관들의 놀라운 전술에 예측도 할 수 없었던 역습을 당해 단시간 안에 패배했습니다. 히틀러는 신이 나서 파리로 이동하여 프랑스인들에게 굴욕을 안겼고, 나치의 괴뢰 노릇을 하던 비시 정부는 (p217의 도판에 나오듯) 근엄한 얼굴의 페탱 원수가 새겨진 깃발 아래 전체주의의 주구로 굴려졌습니다. p212에는 이 당시 유럽의 정세가 어떤 구조로 놓였는지 저자들의 탁월한 솜씨로 간략화한 표가 나와 독자의 이해를 돕습니다.

세계는 지금 2차 대전 종전 후 80여년 만에 근본적으로 재편될 전환점에 놓여 있습니다. 지정학의 정확한 인식이 전쟁을 예방하고, 혹 발생할지 모르는 미래의 전쟁에서 어떠한 포지셔닝이 우리의 생존을 담보해 줄지, 이 책이 분명한 가이드 역할을 해 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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