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박또박 동시 따라쓰기 - 예쁜 마음 바른 글씨
이미선 엮음, 권은재 그림 / 미래주니어 / 2025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리는 누구나 어려서 국어 교과서에서 동시(童詩)를 암송하고, 음악 시간에 동요를 부르며 성장했습니다. 물론 허세를 부리며 구태여 성인 가요를 따라하려 애쓴 애들도 있었지만, 마음 속으로는 내용과 형식이 모두 건전한, 듣기만 해도 마음이 깨끗해지는 듯한 동시, 동요를 읊조리며 벅차오르는 감동, 혹은 어릴 때에만 느낄 수 있는 환희 등을 체험했을 것입니다.

(*책좋사 카페의 소개를 통해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어린이들은 아직 바른 자세를 몸에 배게 하며 손에 연필을 똑바로 쥐고 또박또박 글씨를 쓰는 수련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기왕이면 그 텍스트가 티없이 맑은 동시라서, 그 순수한 마음에 정의와 용기와 수오지심이 가득 차서 어른이 되어도 나쁜 길로 빠지지 않고, 불의를 단호히 배척하는 영혼으로 자라났으면 좋겠습니다.

윤동주 시인은 딱히 동시를 지은 분이 아닌데, 워낙에 그 마음에 티끌 하나가 자리하지 않던 거룩한 마음씀을 지녔던 시인이라서인지 그의 작품을 동시로 읽으면 동시처럼도 읽힙니다. 저는 어렸을 때 국어 교과서에 윤동주 시인의 작품 <새로운 길>이 아직도 입에서 맴도는데, "내를 건너서 숲으로/고개를 넘어서 마을로/어제도 가고 오늘도 갈/나의 길 새로운 길..." 이렇게 이어지는 작품입니다. 이 시가 분류상 동시에 속하는지는 제가 잘 모르겠습니다만 읽어서 마음이 한없이 정화되는 듯한 그 느낌만은 분명합니다.

이 책 p34에는 시인의 작품 <눈>이 실렸는데 역시 비슷한 느낌이 드네요. 왼쪽 페이지에 작품이 제시되고, 오른쪽 페이지에 이를 따라쓸 수 있게 빈 노트 줄이 인쇄되었습니다. 우리는 다들 초등학교 때 시화전(詩畵殿)이라는 걸 자체적으로 열어, 시도 지어 보고 자작시를 도화지에 그림과 함께 그려 솜씨를 뽐낼 기회를 가졌더랬는데 요즘 애들은 어떤지 모르겠습니다. 이 책은 시의 배경에 예쁘고 담백한 그림이 실려, 마치 초등학교 시화전을 보는 듯한 느낌입니다.

p66에는 김소월 시인의 <부엉새>가 나옵니다. 간밤에 부엉새가 그리 울고 가더니 그 설움이 하늘을 덮어서인지 오늘은 내내 하늘이 흐려 해를 못 보고 날이 저문다는, 아이다운 감정을 짧고 강렬하게 표현한 작품입니다. 부엉새에 오히려 강렬히 공감하고, 어떻게 하면 내가 저 새의 마음을 풀어 주어 같이 맑은 하늘을 볼 수 있을까 하는 속내가 아니겠습니까. 부엉새는 밤이 자신의 시간이니, 낮에도 그 시간이 내처 이어지지 않게 하려면 부엉새를 빨리 달래야 한다, 시인의 티없는 동심의 흐름은 이랬으리라 짐작합니다. 페이지 하단에는 어린 독자들이 읽어 보고 한번 생각해 볼 점을 짧게 노트한 문장이 있습니다.

<감자꽃>으로 유명한 권태응 시인은 마치 현대에 활동한 분 같지만 사실은 윤동주 시인과 생몰 연도가 거의 같습니다. 일제의 탄압으로 요절했다고 볼 수 있는 윤동주 시인과 사망연도까지 비슷하다는 건 권 시인 역시 요절했다는 뜻입니다. p86에는 그의 시 <앵두>가 실렸는데 역시 권 시인 특유의 청랑한 이미지, 아이들에 대한 사랑이 담뿍 표현되었습니다. 살짝 주황에 가까운 앵두의 터질 듯한 싱그러움이 드러나는 그림도 아름답습니다. p94에 권 시인의 다른 작품 <한동네사람>이 실렸는데 그의 끈끈한 공동체의식, 이웃에 대한 소박한 신뢰가 드러납니다.

p110에는 정지용 시인의 <할아버지>가 실렸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처음 보는 작품인데, 평생을 자연과 벗하며 농사를 지어 온 그 마음을 하늘도 알았는지, 할아버지가 도롱이를 입고 들에 나서자 오래지 않아 비가 내리더라는 내용입니다. 인간의 선한 마음씀과 간절함이 온 우주에 닿으면 사실 어떤 기적도 이뤄질 수 있습니다. 어른들도 책장을 넘기며 초심을 찾을 수 있는 예쁜 책이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