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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애니메이션 속 주인공이 나일지도 몰라 - 지친 나에게 권하는 애니메이션 속 명언
이서희 지음 / 리텍콘텐츠 / 2024년 7월
평점 :
명작 애니메이션을 보면 의외로, 사람 인생을 바꿔 놓을 만큼 멋지고 울림 깊은 대사가 있습니다. 명대사뿐 아니라 대중가요 가사도, 마음이 센치해질 때 들으면 "이거 완전 내 얘기네" 싶은 게 있죠. 애니도 극에 몰입하면 비슷한 느낌이 들 때가 있는데, 이서희 작가님은 그런 개인적 순간들을 모아 이렇게 멋진 책을 만들어 내신 것 같습니다. 책에는 모두 12편의 작품들이 실렸는데 두 편만 미국 작품이고 다른 열 편은 모두 일본산입니다(웬만한 한국인들은 다 아는 유명한 작들). 이 출판사에서 나온 책들이 대부분 그렇지만 원문장이 함께 제시되기 때문에 외국어 공부를 겸할 수 있다는 게 좋고, 건전한 자기계발 목적으로 독해가 가능하다는 점도 유익합니다. 명대사는 모두 147개가 뽑혔고, 챕터 말미에 독자가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노트가 한 페이지 마련되었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p46을 보면 029번 문장, 惱む時間に一つでも多くしてみて。가 있습니다(일본식 한자는 예스 같은 인터넷 서점 보드에서 깨지는 경우가 많아서 저는 그냥 한국식으로 적겠습니다). 이 문장의 뜻은 "고민하는 시간에 하나라도 더해 봐."인데, 잘은 모르겠습니다만 이게 도라에몽의 재촉에 지쳐 잠시 이슬이를 만나러 온 진구가 듣는 충고인 것 같습니다. 일본이나 한국이나 사회적 분위기, 개인 정서가 닮은 데가 많아 이런 대사가 (교훈뿐 아니라 말투까지) 공감이 잘 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나이키의 유명한 카피 Just do it!이라든가 바비 맥퍼린의 "Don't worry be happy"가 생각나기도 하는데, 고민하며 불안에 영혼을 잡아먹히기보다 뭐라도 행동으로 옮겨서 현황을 타개하라는 조언이 마음에 와 닿습니다.
p87에 나오는 062번 문장(중의 하나)은 あなたの名前は?인데 이게 대사이기도 하고 작품 제목이기도 합니다. 정확히 말하면, 제목에서는 물음표 아닌 마침표로 끝나는 문장이라 뉘앙스가 다릅니다. 왜 당신의 이름을 물어 보는 걸까요? 알면서도 묻는 질문이라면 더 뜻이 깊습니다. 한국 김춘수 시인의 <꽃>을 보면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비로소 내게 다가와 꽃이 되었다는 너무나도 유명한 구절이 있습니다. 이름은 그만큼이나 존재의 본질을 다시 구성할 만큼 중요한 매개입니다. 저자는 이 작이 시각적으로도 아름답지만 그 담은 주제나 분위기 면에서도 세계 애니메이션 역사에 남을 명작이라고 평가합니다.
p100에는 070번 문장, もう終わりだ。美しくなかつたら生きる意味がない。이 나옵니다. 제가 이 작품(<하울의 움직이는...>)에서 가장 좋아하는 대사이기도 합니다. 무굴 제국의 창립자 바부르가 델리를 함락하고서도 아쉬운 듯 말하길 "이곳 사람들은 아름답지를 못하다."고 개탄했습니다. 고향 중앙아시아가 그리워서 한 말일 수도 있지만, 세상 천하를 다 얻어도 곁에 사랑하는 사람이 없고 내가 더 이상 내 마음에 안 든다면 다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하울이 더 이상 악마와 교류하지 않으리라는 확신이 있었기에 소피는 단호하게 행동으로 나아갈 수 있었겠습니다. 진정한 사랑은 애욕만 충족하는 관계가 아니라 이처럼 서로를 성장시키는 계기가 된다는 점을 저자는 강조합니다.
2022년 한국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던 <스즈메의 문단속>에서도 명대사들이 뽑혀 이 책 3-3, 9번째 챕터에 정리되었습니다. 이 책에서 거론되는 작품들 중에서는 가장 최근작입니다. p153의 102번 문장은 좀 긴데 제가 여기 잠시 옮겨 적어 봅니다. 命は儚いことを知っています。死はいつもそばにいあいあるうくことを知っています。여기서 儚은 덧없다는 뜻을 특히 일본어에서 갖습니다(한국 한자는 이런 의미로는 잘 안 씁니다). 저 글자의 인변을 마음심으로 바꿔도 (한국이나 중국에서는) 같습니다. 목숨이라는 게 덧없고 죽음이 항상 곁에 있음을 뻔히 알아도 우리는 생을 좋아하며, 우리 속담에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는 게 있을 정도죠.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며 살아야 생이 우리에게 부여한 육신의 고마움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p168에는 문장 111번이 있습니다. <겨울왕국>에서 그랜드 패비가 왕족들에게 안나의 상태를 설명하며 안심시키는 대사 중에 나오는 말입니다(The heart is not so easily changed. But the head can be pursuaded). 머리와 가슴 중 어느편이 진짜 우리에 가까운지는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생에 확신을 갖는 순간이라면 둘의 의견이 일치하는 때입니다. 우리부터가 남들에게 머리로나 가슴으로나 끌리고 동의가 되는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