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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어스 포커 (완역본) - 월스트리트 천재들의 투자 게임, 《빅 쇼트》 작가의 대표작!
마이클 루이스 지음, 장진영 옮김 / 이레미디어 / 2025년 1월
평점 :
브래드 피트 주연 <머니볼>이란 영화를, 야구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한 번쯤 관람했을 법합니다. 오클랜 드 애쓸레틱스의 빌리 빈 단장이 열악한 재정 여건 하에서 통계(이른바 세이버매트릭스)와 영리한 경영 전략만으로 놀라운 성과(꾸준히 중상위권 유지+유망주 발굴 잭팟)를 거둔 사실을 소재로 다뤘는데, 그 원작 논픽션을 쓴 사람이 마이클 루이스, 즉 이 책의 저자입니다. 이분은 또 브래드 피트 등이 나왔던(마고 로비, 코미디언 스티브 커렐, 배트맨 크리스천 베일[아역으로 <태양의 제국> 주연이었던]) <빅 쇼트>의 원작을 쓴 분이기도 한데, 사실은 1980년대 후반에 바로 이 히트작 <라이어스 포커>를 써서 젊어서부터 유명했던 작가입니다.
(*북유럽 카페의 소개를 통해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이제는 고전이 되어 버린 이 책을 이제 한국어 완역본으로 만나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1980년대 후반이라면 한국에서도 미국의 히트작들을 큰 시차 없이 만나볼 수 있었는데, 트럼프가 젊어서 맨해튼 기획 부동산으로 큰 돈 벌 때 쓴 책도 한국에 소개되었더랬습니다. 그런데 단기에 사람들 관심사에 편승하여 번역된 책들이 대부분 내용이 부실하고 오역이 많았죠. 더군다나 이 <라이어스 포커>는 포커판, 아니아니 주식판에서 벌어지는 기막힌 일들이 메인 테마였던 터라 현지의 사정에 밝은 분이라야 저자의 특이한 말투, 행간에 숨겨 은근히 암시하고자 하는 바를 정확히 캐치하여 우리말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이 책은 1980년대 프린스턴 학부를 졸업하고 살로먼 브라더스 채권영업부에 갓 입사하여 겪은 여러 일들을 소재로 삼았는데, 연수생 시절엔 뉴욕에 있었고 이 책의 대략 7장까지의 내용입니다. 제8장부터는 런던에서 영업을 위해 뛰던 기간입니다. 살로먼은 당시 잘나가던 금융기관이었지만 유달리 약탈적으로 직원들을 빡세게 굴리는 풍토로 악명 높았고, 꼭 그것 때문은 아니었지만 1990년대 내내 살벌하게 전개되던 금융업계의 전쟁 와중에 결국 시티뱅크 측에 인수되어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오바마가 대통령이던 2010년대 초반에 한국에 와서 기자들한테 질문 하라고 하자 한국 기자들이 무슨 이유에서인지 한 사람도 손을 안 들어서 나라망신이었다는 이야기가 지금도 거론됩니다. p105를 보면 연수생들이, 연단에 데일 호로비츠 이사가 올라 무엇이든 물어 보라고 했을 때 처음에는 아무도 손을 못 들었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아마도 20년 후 한국의 기자들도 그 비슷한 마음 아니었을까 저는 추측합니다. 저는 초등학교 2학년 때 평소와 달리 (꽤 업계에서 유명했던) 웅변학원 원장님이 특별히 직강하던 시간에 60명 클래스에서 지목당하자 아무 말도 못하고 얼어붙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런 초딩에게 그 무엇보다 웅변학원 수강이 절실했듯, 야심만만하고 큰돈은 당장 필요했던 젊은이에게는 살로먼스 같은 복마전, 아니아니 머니 머신에의 취업이 정말 필요했을 것입니다. 어느 대형 금융기관이라도 마찬가지지만 저성과자에게는 한없이 가혹했고, 반대로 머리 좋고 빠릿빠릿한 명문대 졸업 청년이 기대한 바 성과를 내면 누구보다 후한 성과급을 주던 곳이 바로 살로먼스였습니다.
이 마이클 루이스는 매우 재치있고 컬러풀한 문장, 생생한 현장 분위기가 살아나는 표현을 잘 쓰는 작가인데 특히나 이 책은 당대의 베스트셀러이기도 했지만 이제는 성공한 중견 작가, 저널리스트인 그가 초기에 어떤 모습이었는지 알 수 있는 자료이기도 해서 더 흥미롭습니다. 애니메이션, 영화 속의 캐릭터들이 레토릭 속에서 보조관념으로 잔뜩 등장하는데, p116에 나오는 댄 래더는 월터 크롱카이트의 대를 이었던 지상파 CBS 메인 뉴스 앵커입니다(본문 중 역주로도 설명이 있습니다). 뜻밖에도 존 케네스 갤브레잇의 이름도 나오는데 1980년대 운동권 대학생들이 비교적 존중해 가며 읽던 저서들을 쓴 미국 지식인이기도 합니다.
어느 직장이든 에이스가 있고 2진이 있습니다. 살로먼스에도 최상의 능력자들은 채권 팀에 갔고, 예를 들면 강사(이런 분들은 랍비라고 불렸다고 합니다. 영어 발음은 래바이)에게 날카로운 질문을 쏘고, 옵션(파생상품)에 대해 잘 모른다는 이에게 당신이 그래서 주식 팀에 있는 것이라고 쪽을 주던 프랭크 사이먼(이름값을 하네요) 같은 사람이 그 좋은 예입니다.
음... 마이클 루이스 같은 저자는 런던에서 채권 영업을 했습니다. 저자는 "원래 영업은 사람 상대하는 일에 달인이고, 트레이딩 부서는 금융에 통달해야 한다"는 말을 하지만, 또 "결국 영업 담당을 통제하고, 그들의 급여를 결정하는 것은 그들 트레이딩 맨들이었다"고 합니다. 유능한 사람이 그렇지 못한 사람 위에 서는 건 이런 금융기관 안에서 너무도 당연합니다. 재미있는 건, 밖에서 고달프게 영업을 뛰는 이들, 안에서 주로 머리를 써서 수십억 달러를 주무르는 이들 사이에서 일종의 절충점으로 가장 안락한 상태를 즐기던 이들이 바로 주식팀 아니었겠냐는 저자의 평가입니다.
젊은 나이에 고연봉자로서 많은 성취감을 맛보았으나, 왠지 뭔가 중요한 걸 잃은 것만 같다는 저자의 마지막 말이 무척 인상적입니다. 극도의 효율과 수익을 추구하는 자본주의 경제 최전선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매우 흥미롭게 읽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