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으로 보는 호크니
사이먼 엘리엇 지음, 장주미 옮김 / 마로니에북스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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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천재 예술가들이 예컨대 빈센트 반 고흐처럼 생전에 인정을 못 받고 가난하게 살다 죽는 건 아닐 것입니다. 미켈란젤로만 해도 시스티나의 천장화를 제작하며 눈에 물감이 들어가는 등 고생을 했지만 율리우스 2세가 커미션 피를 넉넉하게 쳐 줬었기에 물질적으로 그리 고단하게 살지는 않았습니다. p9를 보면 데이비드 호크니는 2018년 뉴욕 크리스티 분점(크리스티 본 센터는 런던 킹스트리트에 있죠)에서 그의 작품 <예술가의 초상(1972년 제작)>이 약 9천만 달러에 낙찰됨으로써 생존중 가장 고가의 작품을 판 예술가가 되었습니다. 

(*책좋사 카페의 소개를 통해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저 페이지의 그림에서 누군가의 손에 쥐인 팻말은 이른바 옥션 패들이라는 건데, 48번이라는 번호는 중복되지 않게 장내 입찰자들에게 임의로 지급되는 것 중 하나로서 딱히 의미는 없습니다. 이런 패들(paddle)은 대략 길이가 30cm 정도입니다. 우리는 예술가의 저런 가치있는 작품을 만들어내는 재능도 부럽지만, 사실은 동시대인들의 기호에 정확히 부합하는 작품을 만들어내는 감각과, 그 감각이 벌어다 주는 "돈"이 더 부럽다는 게 더 솔직할지 모릅니다. 저는 작년(2024) 5월 김성희 관장님이 직접 본인을 만나고 저술한 <내가 만난 데미안 허스트>를 읽고 리뷰를 썼는데, 그 책의 주인공 허스트도 영국 사람이며 젊었을 때 배고팠던 무명 시절을 보냈고 나중에 성공하여 엄청난 돈을 번 예술가입니다. 단 이 책의 주인공 데이비드 호크니가 훨씬 나이가 많고 허스트(이 양반도 노년에 접어들었지만)에 대면 거의 아버지뻘입니다. 

고대 이집트 미술 중 남은 것들은 대개 평평한 표현 양식이 일관되었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3차원이며 (비록 망막은 2차원 캔버스이나) 보고 느끼는 바도 3차원입니다. 그러니 예술가는 일단 2차원 평면에 대상을 담으면서도 대상에 대해 최대한 입체감을 살리려 애쓰는데, 고대 이집트인들은 기이하게도 가뜩이나 협소한 2차원에 대상을 더 구겨 넣었던 셈입니다. p34를 보면, 데이비드 호크니가 학생이었던 1960년대에 이미 추상주의는 미술계를 제패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독한 천재 호크니는 "내가 관심있던 건 언제나 재현이었다"며 자기 소신을 굽히지 않습니다. 이처럼 진짜 천재는 시대 정신을 충분히 수용하되 자신의 참뜻은 타협하지 않는데, 그 균형 지점을 살피는 재미가 관객에게는 특권입니다. 

데이비드 호크니는 로열 아트 컬리지를 다닐 때 자신이 게이라고 커밍아웃했습니다. 지금이야 서유럽에서 동성결혼까지 허용되는 세상이지만 이 영감님이 젊었을 때는 주위의 따가운 시선 때문에 고생깨나 했지 싶습니다. 그런데 이분을 더 괴롭힌 건 파트너, 연인 등이 바람을 피우거나, 거꾸로 너무 성적인 방향으로만 집착하는 경우였던 것으로도 보입니다. p61에 나오는 밥 얼스 같은 사람이 대표적입니다. 저는 밥 얼스도 밥 얼스지만, 이 데이비드 호크니 역시 참 많은 연인들을 만나고 다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 이런 분들은 한 상대에 정착을 하기 힘들어할까요? 그렇게나 자주 "첫눈에 반했다"고 하면서 말입니다.

피터 술레진저를 만나고부터 호크니는 마음의 안정을 찾습니다. 그런데 슐레진저의 부모는 당장 그들더러 정신과 의사를 만날 것을 권하는데, 저는 이 대목에서 (죄송하지만) 웃음이 나왔습니다. p71에 그려진 psychiatrist가 마치 지그문트 프로이트 같은 외양이기 때문입니다. 비엔나에서 활동한 유대인 프로이트는 호크니가 1살 때 나치의 탄압을 피해 런던에 이주하여 1년 후 거기서 죽긴 했으나 두 사람이 만났을 가능성은 없습니다. 어떤 정신과의사의 생김새 그 스테레오타입까지도 프로이트라고 암시하는 듯해서 작가 사이먼 엘리엇의 유머감각이 느껴졌습니다. 맨 앞에 언급했던 <예술가의 초상>에서 풀장 위에 서 있던 인물의 모델이 바로 슐레진저입니다. 1972년에는 그들이 이미 결별했었지만 말입니다. 두 사람 사이 나이 차는 열 살이며 슐레진저는 당시 미성년자였다는 게 충격입니다. 

예술가의 창작 과정은 결코 즉흥적이거나 가벼운 감각의 자극으로 출발하지 않습니다. p141을 보면 그의 대표작 <피어블로섬 하이웨이>가 어떻게 제작되었는지에 대한 설명이 나오는데 그가 직접 교차점에서 800징의 사진을 찍었다고 합니다. 대상이 어떻게 보이는지의 문제가, 상황, 빛의 과다, 각도, 사람의 심리에 따라 얼마든지 판이하게 해석될 수 있음을 그는 작품 결과뿐 아니라 과정을 통해서도 대중에게 보여 준 것입니다. 1985년 말 그는 미국 레이건 대통령의 초청을 받아 백악관을 방문하는데 대통령에 영국 찰스 왕세자의 배우자를 다이에나 비(妃)가 아니라 데이비드라고 부르는 통에 그가 매우 재미있어했다고 p143에 나옵니다. 레이건은 재임 중 자신의 장관들 이름도 헷갈리곤 했습니다. 

예술가의 삶은 한편으로 화려한 듯해도 근본적으로 그의 세계를 주변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기에 그 본질적인 고독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호크니의 작품과 복잡다단한 생을 작가 사이먼 엘리엇이 그의 작풍, 스타일에 따라 잘 그려내었으며 어려울 수도 있었던 주제를 최대한 쉽게 풀어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예쁘고 멋진 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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