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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몰랐던 별의별 천문학 이야기 - 별에 빠지다
김상철 지음 / 광문각출판미디어 / 2025년 1월
평점 :
영화 <닥터 지바고>를 보면 로드 스타이거가 분한 상인 캐릭터가 다음과 같은 말을 합니다. "이 세상에는 나 코마로프스키 같은 자가 있고, 유리 지바고 자네 같은 인간이 있지." 저자 김상철 선생님은 이 책의 앞날개에서 이런 말씀을 꺼냅니다. "세상에는 은하수를 맨눈으로 본 사람이 있고, 은하수를 한 번도 보지 뭇한 사람이 있다고 나는 믿는다." 저도 후자에 속하는 인간인데, 제 친구 중 하나는 방학 때 시골에 다녀와서 하는 말이 "하늘에 별이 그렇게 많은 줄 몰랐다"고 하더군요. 쏟아질 듯한 별이 촘촘히 박힌 하늘을 보고 자란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이 이후 성장과정에서 어떤 차이를 보이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영화에서 코마로프스키는 일생을 물욕, 성욕에 집착하며 남한테 피해만 끼치다가 죽었고, 의사 지바고는 진정한 사랑을 위해 죽은 편에 가깝습니다. 자라나는 아이들은 커서 과연 어느 편의 어른이 되길 원할까요.
(*북유럽 카페의 소개로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p10을 보면 "천문학은 선진국에서 주로 연구하는 학문이다."라는 문장이 있습니다. 연구를 하려면 엄청난 돈이 들고, 어렵기로는 극악의 난도를 자랑하며, 당장 국민 생활에 도움을 주는 바는 또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득한 과거 점성술의 단계에 머물 때도 천문학(의 초기 형태)은 왕의 지근거리에서 당대 최고의 브레인이나 총신이 봉직하는 영역이었고, 중근세 이후로는 티코브라헤나 케플러, 혹은 아이작 뉴턴 등 세계가 배출한 가장 우수한 학자들이 업적을 이뤘습니다. 우리는 보통 중3때부터 달의 모습 변화, 천구(가상의 모델), 황도, 세차 운동 등을 과학 시간에 배우는데, 전교 1등이라고 해도 이 내용을 완벽하게 이해하는 애가 드물 것입니다. 그런데 아이들에게 걸맞은 방식으로 차근차근 지식을 섭취시키는 어른들의 노력이 필요하며, 김상철 선생님은 중학교 참고서보다 더 컬러풀한 편집을 가진 이 책 속에서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그 어려운 원리를 하나하나 풀어 주고 있습니다.
p64를 보면 미국 땅인 하와이에 지은 스바루 망원경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별(나아가, 물리계와 우주를 관통하는 최후의 원리)을 연구하려면 지금이 무슨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시대도 아니고, 아무리 머리가 좋은 사람이라 해도 혼자서 추론과 상상만으로 이론을 만들 수 없습니다. 셜록 홈즈도 범인이 누구며 사건의 진상이 무엇인지 묻는 왓슨에게 "벽돌이 있어야 집을 지을 게 아닌가!"라며 화를 내기도 했습니다. 데이터가 있어야 과학 법칙이 발견되는 법이며 이는 케플러나 호이겐스, 뉴턴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일본은 일찍이 기초과학의 중요성을 깨닫고 1960년대부터 동양 최대의 천문대를 만들었으며, 당장의 성과에 연연하지 않고 꾸준히 근본 이치를 탐구하려 들었습니다. 한국 정부도 맹성이 필요하다 하겠습니다.
GMT라고 하면 예전에는 그리니치 민 타임이라고 해서 세계 표준0시를 가리키는 뜻으로 많이 썼고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책 p83을 보면, 특히 현대 천문학계에서는 이 약어를 거대 마젤란 망원경(Giant Magellan Telescope)이란 뜻으로 쓰는데, 이 책에 나오는 25m는 합성유효구경입니다. 총기류도 그렇고 대개 구경이라고 하면 원통 입구의 지름을 가리키지만 이런 거대 천체 망원경의 경우 물리적 사이즈가 아니라 광학적 합성을 통해 환산한 가상의 지름입니다. p87을 보면 이 정도 규격만 되어도 한 나라의 재력으로 감당하기 힘들고 여러 정부가 힘을 합해야 한다고 말씀하시지만, 지도자들이 더 전향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GMT 등 대형망원경이 아무곳에나 설치될 수는 없고 p113에 나오듯 여러 입지조건이 충족되어야 합니다. 하늘이 맑아야 한다, 공기의 흐름이 안정적이어야 한다 등의 조건이 맞아야 별이 잘 관측되니 말입니다. 또 주변의 빛 공해가 적고 습도가 낮아 건조한 편이 좋다고도 책에 나옵니다. 어려서부터 우리는 모든 것을 빨아들인다는 블랙홀의 존재에 대해 마냥 신기해했는데, p113에는 안드레아 게즈라는 물리학자가 우리 은하 중심부에 자리한, 태양 질량의 400만배가 넘는 초거대 블랙홀의 존재를 밝혀내어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는 서술이 있습니다. 이 책은 마치 칠레 등 남반구 소재 국가를 현지 답사한 저자의 기행문처럼, 직접 찍은 사진과 개인적 소회를 기록한 분량도 상당한데 천문학자의 솔직하고 인간적인 면모가 보여서 흥미롭게 읽을 수 있습니다.
KAIST는 교육기관 역할을 겸하고, p205에 나오는 KIST(1966년 설립)은 순수 연구기관이죠. 한국은 그간 기민하고 영리한 추격자(follower) 역할을 아주 잘해냈습니다. 그러나 저자께서는 이제는 나라의 역량이 이만큼이나 성장한 만큼 선구자, 즉 first mover 역할로 메인 포지션이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한국이 미래를 이끄는 글로벌 중심에 서러면 반드시 필요할 노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