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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MPION - 빈티지 챔피온의 모든 것
태그 & 스레드 지음, 강원식 옮김 / 벤치워머스 / 2024년 12월
평점 :
챔피온(Champion)이라고 하면 아마 그 특유의 아치형 로고를, 살면서 한 번도 못 봤다고 할 한국인은 아마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오 저 사람이 저걸 입네?라며 눈길을 세심히 준 적은 아마 없다는 말이 솔직할 듯합니다. 글쎄 교포들이 막 입는 추리닝 정도의 이미지가 평균이 아닐까 싶지만, 미국의 독립 출판사인 T&T가 이렇게 그 브랜드 역사에 대해 정성껏 빚어낸 책을 보며 이제는 그렇게 예사로운 시선으로 스쳐지나갈 브랜드가 (적어도 제게는) 아닐 것 같다고 생각되었습니다. 이 브랜드가 이렇게나 오래된 것이라는 사실 자체가 새로웠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애슬레저라는 장르가 과연 어디에서 어디까지를 가리키는지야 논쟁의 여지가 있지만, 이 챔피온(이 브랜드에 한해, 한국어로 쓸 때에는 "온"이라고 쓰는 게 정석입니다)이 미국에서 애슬레저의 대표격이라는 평가에는 많은 이들이 이의가 없을 듯합니다. p5에는 디자이너 토드 스나이더 본인이 직접 쓴 머리말이 있는데 물론 토드 스나이더 자체가 하나의 브랜드이며 이 챔피온과 협업한 건 아주 오래되진 않았습니다. 당시에 이 양반이 챔피온하고 손잡는다는 뉴스가 나올 때 이런저런 말들이 많았죠. 어찌보면 그 오래된 브랜드가 초일류 디자이너를 끌어들여 무슨 새로운 일을 벌인다는 자체가, 이 브랜드의 오랜 행로가 이제 전환점을 맞이한다는 하나의 신호였으니 말입니다.
아무튼 "스트리트 패션이나 애슬레저 같은 트렌드는 왔다갈지도 모르지만 목적을 가지고 디자인되어 공들여 만든 옷은 착용자에게 자신보다 더 큰 무언가의 일부가 된다는 느낌을 갖게 한다"는 저 토드 스나이더의 말은 참으로 명언입니다. 저는 저 말의 전단이 끝났을 때 뭔가 다른 결론, 즉 "챔피온 같은 빈티지의 챔피언(보통명사)은 영원할 것이다" 같은, 흔한 찬사가 나올 줄 알았는데 전혀 뜻밖의 보편적 진리가 쿵!하고 등장해서 의외였네요. 이 말은 비단 챔피온뿐 아니라 대중이 샵에 들어가 자신이 입을 옷을 고를 때 갖는 가장 근원적인 심리를 예리하게 짚었다는 점에서 위대합니다. 하긴, 같은 말도 토드 스나이더가 하니까 더 멋있게 들리는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아무래도 챔피온 하면 그 특유의 후드티가 대번에 떠오르지 않겠습니까. p60을 펼치면 흰색(이렇게밖에 표현 못 해서 죄송합니다) 사이드라인 후드티/크루넥이 소개되는데, 미국인이나 교포가 착용할 때는(그걸 보고는) 정말 아무 느낌이 없었는데, 이렇게 아카이빙북을 통해 컬러 화보로 감상하니 또 완전히 다르게 다가오는 느낌입니다. 그 내력도 페이지 중하단에 나오는데 1960년대 후반부터 주로 스포츠팀 유니폼으로 널리 알려졌다는 게 압축적인 설명입니다. 그래서인지 전면에 PENNSTATE SKI TEAM이라든가 하는 로고가 찍혀 있네요. 이 부류는 바로 앞페이지부터 나오는 PDSL(p58을 보면 이게 스타일명이라고 합니다. pragmatic design solution limited의 약자)의 일종인데, p60에는 리버스위브(이것도 챔피온이 최초로 만들고 적용했습니다)와 익스팬션 거싯(gusset)에 대한 설명이 있는데 이걸 읽고 나니 거싯이 옷에 왜 붙었는지에 대해 근본적으로 생각을 다시하게 됩니다.
p136을 보면 챔피온은 1930년대 초부터 학교용 맞춤 체육 교복(이 책의 번역어이며 우리 느낌으로는 그냥 체육복이라고 이해하면 되겠네요)을 공급했다고 나오는데 이에는 19920년대 말부터 미국 전역을 엄습했던 대공황의 궁핍이라는 시대상도 함께 고려해야 하겠습니다. 챔피온은 영업 초창기부터 정체성 자체가 이쪽이었다고 생각하면 되겠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1970년대 들어 경제 불황(이른바 스태그플레이션)으로 인해 학생들의 체육복 착용 규정을 완화(예산 부족 때문)함에 따라 체육 교복 착용이 사라지고 말았다는 설명이 나옵니다. 같은 경제 불황인데도 챔피온의 부상(浮上)과 퇴장을 모두 초래했다는 사실이 아이러니인데, 이건 행정과 제도, 정치 풍조의 변천을 고려하면 모순이 사실 아닙니다. p137에 나오는 Xaverian(재버리언), Central Falls는 모두 고등학교 이름들입니다. 팬츠들도 보면 무슨 팬티처럼 짧은데 저때는 프로권투 트렁크, NBA 하의도 모두 저렇게 짧았죠. 한국은 무조건 미국 따라가기 때문에 역시 운동복이 다들 저랬습니다.
아카이빙 북의 개념을 잡아주는 멋진 화보집, 역사책, 자료집이었습니다. 위험 부담에도 불구하고 이런 책을 만들어준 T&T, 그리고 번역자 강원식 대표와 푸른숲출판사에 경의를 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