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의 천재들 - 물리학의 한계에 도전하는 바다 생물의 놀라운 생존 기술
빌 프랑수아 지음, 발랑틴 플레시 그림, 이충호 옮김 / 해나무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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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을 비롯하여 모든 동물들은 그 생명의 아득한 기원이 바다입니다. 현대 과학이 이처럼이나 발달했는데도 아직 바다에 사는 그 많은 생명체들이 어떤 방식으로 생존하는지, 어떤 진화 과정을 거쳐 여기에 이르렀는지 인류는 아직 잘 알지 못합니다. 아니 과연 어떠어떠한 종(種)들이 바다에 사는지 그 목록조차 정확히 갖지 못한 채입니다. "나는 해변에서 예쁜 조개를 줍는 어린이에 불과하며 미지의 세계는 저 거대한 바다처럼 그대로 남아 있다." 400년 전 뉴턴의 말인데 저 상황이 아직 근본적으로 변한 건 아닙니다. 우린는 여전히 많은 것에 대해 잘 알지 못합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젊은 연구인인 저자 빌 프랑수아 박사는 그 전공이 생물물리학인데, 이 해양생물들이 물리적 환경의 가혹한 한계를 아슬아슬하게 극복하여, 경탄이 절로 나오는 방식으로 살아남아 우아하게 대(代)를 이어가는 모습에 매혹되었습니다. 빌 프랑수아 박사도 프랑스 최고 명문인 고등사범 출신인 천재인데, 그는 오히려 이 해양생물들이야말로 예술에 가까운 방식으로 자연이 정해 둔 온갖 장애를 뚫고 끈질기게 생존을 지속하는 "천재"라며 최상의 찬사를 바칩니다. 

우리가 중학교, 고등학교 때 배운 교과서를 보면 특히 생명과학 파트에 많은 일러스트와 도판이 실립니다. 교과 내용을 정확히 이해하려면 이런 시각 자료가 필요해서인 이유도 있지만, 그런 그림과 사진을 보기만 해도 그 기기묘묘한 생김새에 빠져들어가듯 몰입하게 됩니다. 그저 이상하고 기발해서가 아니라, 수십만 수백만 년 세월을 치열하게 살아남은 비결이 그 모양 안에 응축되었겠다는 데 생각이 미치면 자연스럽게 겸허한 마음이 들기도 하기 때문이죠. 히트 상품도, 빼어난 성능을 가진 것은 그 유니크한 디자인부터가 자신의 성능을 입증하는 중입니다. 이 책은, 전문저널 에디터이자 이 분야에 특화된 일러스트레이터인 발랑틴 플래시가 자신의 작품을 통해 독자들의 이해를 돕습니다. 

우리들은 오랫동안 교과서나 과학 도서에서, 무호흡 잠수 분야의 챔피언으로서 향유고래가 꼽힌다는 걸 상식으로 알아 왔죠. 그런데 이 책 p63을 보면 민부리고래가, 수심 2992m까지 내려가서 137분 가까이 잠수한 기록으로 이 분야 최고자리를 꿰어찼다고 나옵니다. 2992m면 백두산이 거꾸로 박힌 것보다도 더 깊습니다. 137분은커녕 13초만 숨을 못 쉬어도 사람은 죽기 직전까지 갑니다. 다음 페이지에는 이 민부리고래(우리와 같은 포유류이기도 하죠)의 귀여운 컬러 일러스트가 나오는데, 정말 귀엽게 생기기도 했습니다. 과학 지식에 정통한 일러스트레이터의 작품은, 많은 경우 그 핵심을 사진보다도 더 효과적으로 독자에게 전달합니다. 또 이 부분 프랑수아 박사의 문장도 일류 수필마냥 화려하고 흥이 넘칩니다. 

프랑스는 이미 19세기 중반부터 동아시아의 무술(유도 등)을 연구하고 적극적으로 수련하던 유행이 있었는데(무술뿐 아니라 회화, 자기 등 다양한 문화적 영향을 수용했었습니다), 저자는 p116에서 지느러미발도요의 생태를 설명하며, 이 새가 어떻게, 작은 먹잇감이 들어 있는 물방울을 분당 100개 넘게 삼킬 수 있는지를 아주 쉽게 독자에게 가르칩니다. 이 새가 물방울을 다루는 솜씨를 보고 마치 합기도의 고수가 선뵈는 현란한 기술에다 비유하는 문장도 인상적입니다. 합기도는 20세기 중반이 지나서야 성립한 무술인데 저자 취미가 참 독특하시다는 생각도 들었네요. 여기서 이 새가 물방울을 (아주 빠르고 빈번하게) 삼키는 게 왜 예술이냐면, 물방울에는 기본적으로 표면장력이라는 게 작용하기 때문에, 빨대 구조가 아닌 부리로써는 이걸 빨아들이기가 매우 어렵기 때문입니다. 이런 대목에서 저자의 "물리학" 소양이 발휘되는 것입니다. 

해저에는 열수(熱水)분출공(噴出孔)이라는 게 있습니다. 물 아래 지각의 구멍으로 열기가 새어나오면 그 압력에 의해 인근의 데워진 물이 주변으로 확산되는 것인데, 여기에 온갖 종류의 동물들이 모여 각각의 색깔과 움직임을 뽐내며 수중 쇼를 벌이는 걸, 1977년 과학자들이 갈라파고스 심해에서 발견했던 것입니다. 햇볕이 수심 2500m 가까운 곳에 들 리가 없는데 어떻게 생물들이 이렇게나 군집할 수 있을까요? 지각에서 메탄 등 독성물질(p149)가 삐져나오고, 이걸 양분으로 삼는 세균이 번식하며, 그 세균을 먹이사슬의 가장 바닥층으로 삼아 생물 피라미드가 형성되는 것입니다. 

모든 심해생물이 이런 식으로만 사는 건 아닙니다. 과학자들의 관심사는, 빛(지상의 식물은 광합성이 모든 생명 작용의 기초를 이루죠)이 없는데 어떻게 생명체가 그 첫발이라도 뗄 수가 있냐는 의문을 해결하는 데 있습니다. 어디에선가는 생물이 자체 발광(發光)을 하는 경우가 있기도 해야 하는데, p181 이하에 녹틸루카 신틸란스(noctiluca scintilans)의 예가 나옵니다. noctiluca가 "밤에 빛나는 것"이란 뜻이며, scintilans는 불꽃처럼 반짝인다는 뜻의 라틴어 현재분사입니다. (영어나 불어가 아닌) 라틴어식으로 읽으면 스킨틸라스가 되겠죠. 자체 발광을 위해서는 자신을 스쳐지나가는 물의 흐름도 생물이 일일이 이용한다고 나옵니다. 

눈은 생물의 진화 과정에 있어 매우 중요한 기능을 수행했습니다. 바다이구아나는 두 눈을 분명 감았는데도 빛을 감지하고 냉큼 다른 곳으로 움직이는데, 이건 이마에 세번째 눈이 (우리가 잘 볼 수 없지만) 달려 있어서라고 합니다. 어떤 생물이라도 빛을 잘 감지해야 살아남을 수 있으며 인간이 자연광 대부분을 (아마도) 가장 정확히 인식하게끔 진화한 눈을 달고 있는 게 우연이 아니죠. 하지만 진화 과정에서 취사선택이 있었고, 다른 동물들에게 저렇게 두정안(頭頂眼) 같은 독특한 기관이 아직도 남아 있다는 게 과학자들에게는 많은 시사점을 줍니다. 

저자의 전공은 생물물리학입니다. 이 분야가 저자를 특히 매혹한 건, 생물이라는 게 물리 법칙에 정면으로 저항하면서 살아온 매우 독특한 존재라서입니다. 생물물리학이란 어떤 의미에서 형용모순(contradictio in adjecto)인 것입니다. 대체 빛이 없는데 어떻게 동물이건 식물이건 기초적인 활동이나마 할 수가 있겠습니까. 입의 구조가 먹이를 먹을 수 없게끔 방해하는데도 무슨 수로 그 난관을 뚫고 나가겠습니까. 열악한 상황에서 오히려 더 놀라운 기적을 만들어 나가는 해양생물의 세계는 그 자체로 경이(驚異)의 바다입니다. 

최고의 번역가 이충호 선생, 최고의 과학서적 출판사인 해나무의 정성어린 번역서라서 더 편하게 즐겁게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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