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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에 기후 괴물이 산다 - 기후변화는 어떻게 몸, 마음, 그리고 뇌를 지배하는가
클레이튼 페이지 알던 지음, 김재경 옮김 / 추수밭(청림출판) / 2024년 11월
평점 :
제목이 섬뜩합니다. 기후 변화가 우리 삶에 크나큰 영향을 끼치며, 직업, 일상, 거주 등 모든 면에서 전과는 다른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는 건 알겠습니다. 그런데 저자는 그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이 기후변화라는 게 우리 개개인의 생각, 몸, 마음, 영혼까지 지배하며, 우리는 더 이상 전과 같은 그 사람으로 남지 못한다는 무서운 진단, 예언까지 독자들에게 전합니다. 내가 더 이상 내가 아니라는 자각만큼 두려운 체험도 없겠는데, 어떤 점에서 그러한지, 현실이 그렇게 진단된다면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겠는지 경각심을 갖고 찬찬히 읽어 봤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p92를 보면 기후변화가 다양한 직업군의 퍼포먼스에 끼치는 영향은 다양하고도 깊은데, 개개인은 일단 불면증 등 일상에서 가볍거나 무거운 질환을 겪을 가능성이 크다고 합니다. 거기까지는 새로운 내용이 아니므로 그러려니 합니다. 그런데 저자는, 야구 경기에서 심판이 오심할 확률, 투자자가 잘못된 결정을 내릴 확률, 정치인이 의회에서 발언할 때 그 표현의 복잡성에 이르기까지 이 기후변화라는 게 결과, 현상을 바꿔 놓을 가능성이 무척 커진다고까지 말합니다. 경제학자 앤서니 헤이스는 "기후 변화 앞에, 객관성이란 허상에 불과하다"고까지 단정짓습니다. 무섭습니다.
고 레이 브래드버리는 근래 한국에서도 새삼 주목도가 높아진 20세기 과학소설 작가입니다. 그의 단편소설 <불의 손길>에는 어느 보험설계사가 더워진 날씨 때문에 삐질삐질 고생하는 장면이 있고 이 구절이 p119에 일부 인용되는데, 사실 이 작품은 딱히 기후변화가 모티브는 아니었습니다만 현대의 독자는 얼마든지 그렇게 해석할 권리가 있습니다. 소설 속의 상황과 달리, 우리는 전지구적 기후 재앙을 맞아 어떤 식의 전보, 보상이라도 받아낼 인슈어런스 폴리시를 갖고 있지 못합니다. 책에서는 재미있게도 당송팔대가 중 한 명인 왕유의 작품 <고열행>도 인용되는데 물론 브래드베리의 작품보다 천 년 넘게 앞선 5언율시입니다. 화자는 끝에 이르러 열반의 경지를 노래하지만 우리는 오염된 환경에서 내세에의 기약도 없이 고통스럽게 죽어가야 할지도 모릅니다.
전에 없던 완전히 새로운 화합물인 BMAA라는 게 발견되어 시아노박테리아 대증식과 함께 이미 돌고래를 비롯하여 많은 동물들의 뇌를 벌집처럼(p154) 만들었다는 게 밝혀졌습니다. 인간의 치매가 요즘 부쩍 늘어난 게 물론 평균 수명이 예전보다 훨씬 길어진 이유도 있지만, 이런 기후변화 때문에 전과는 크게 달라진 생태계 구성과 어떤 밀접한 인과관계가 있을지도 모를 일이겠습니다. 이 책에 인용된 돌고래, 매너티, 원숭이 들이 마치 인간을 방불케할 만큼 비교적 정교한 두뇌 구조를 갖춘 종들이기에 그 연구 결과가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큽니다. p202에서는 마이크로바이옴과 엑스포좀을 병치시켜, 환경오염이 우리들 인간의 건강에 미치는 다른 차원의 영향을 논합니다.
앞의 브래드베리 작품에서 더위가 사람을 미치기 직전까지 몰고가는 끈적끈적한 묘사가 있었는데 p234를 보면 인지신경과학자 조티 미슈라 박사의 주도 하에, 극단적인 상황에서 평균적인 인간들에게 어떤 인지저하가 일어나는지, 또 기후 변화가 초래한 재난을 겪고 생긴 PTSD가 사람의 정신을 어떻게 황폐화하는지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있습니다. 과잉 경계 때문에 뇌의 기능 저하가 발생하며, 기억력이나 집중력 등이 현저히 떨어지는 중 당사자의 자존감, 자신감 등이 전과 같은 수준을 지킬 수 없음이 너무도 명확해집니다.
p300을 보면 기후변화는 많은 이들을, 삶의 터전을 잃은 떠돌이로 만듭니다. 이미 인도양이나 태평양 여러 니라들이 해수면 상승으로 국토 상당 부분을 잃어 집단 이주 대책 마련에 골몰하지만 이런 종류의 문제가 어떤 특별한 해결책이 있을 리 만무합니다. p320을 보면 저자는 언어심리학 연구 결과를 인용하여 환경의 변화가 우리의 언어세계에 어떤 음울한 영향을 항구적으로 남기는지에 대해 생생하게 설명합니다. 오늘 한국 수도권 일대의 폭설 때문에 출근길에 엄청난 불편을 겪은 분들이 많을 텐데, 11월에 좀처럼 겪어 보지 못한 이런 사태를 만나면서 벌써 우리는 다른 차원의 경각심을 가져야 마땅합니다. 기후변화 대처는 말이 아니라 행동을 요구하는 단계에 이미 접어들었고 벌써 늦었는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