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네의 일기 - 무삭제 완전판 문학사상 세계문학
안네 프랑크 지음, 홍경호 옮김 / 문학사상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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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 독일은 자신들이 군사적으로 점령한 영토 안에서 대중 사이에 소수자에 대한 혐오를 세뇌하고,시스템적인 제노사이드를 시행하여 문명사회의 휴머니티를 말살하려 든 악랄한 집단입니다. 네덜란드는 나폴레옹의 프랑스 제국이 득세할 때에도 약소한 국력 때문에 병탄당했고, 독일이 야욕을 드러내면 곧바로 희생양이 되는 등 아픈 역사를 지닌 나라입니다. 네덜란드 자체가 독일에게는 쉬운 먹잇감이었는데, 그 네덜란드 안에서도 소수자로 살아야 했던 유대인들이 1940년대 전반에 얼마나 힘든 일을 겪었을지는 짐작이 되고도 남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이 당시를 살았던 사춘기 소녀 안네 프랑크가 남긴 일기는 기적적으로 종전 후에도 전해져 일정 시간 경과 후에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었습니다. 이 책 p7에도 나오듯 당시 네덜란드 총리가 라디오 방송 연설에서, 나치 점령지 하의 시민들은 자신들의 고통을 기록으로 남겨달라는 호소를 했었습니다. 소녀 안네 프랑크는 이 연설을 듣고 기존의 개인적 기록을 더 정성들여 이어가고, 후세에 공개될 것을 대비해 등장인물 상당수의 실명을 숨기는 각색까지 했다는 거죠. 어린 소녀의 생각치고 정말 어른스럽고 사려깊다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일기는 그저 나치 독일의 만행을 고발한 역사적 기록일 뿐 아니라, 성장기 청소년의 다양한 고민과 갈등 등을 솔직하게 담은 수상록 문학으로서의 가치도 높습니다. 한국인들도 발췌역본으로 어렸을 때 한 번 정도는 읽어 봤음직한 고전 명작인데 지금 이 문학사상사본은 안네 프랑크 재단과 유일하게 정식 계약한 한국판이라고 합니다. 완전판은 이른바 A본(本)이며, 1990년대에 출판되었습니다. 

사람이 극한 상황에 처하면 평소에 나오지 않던 모습이 나오기도 합니다. 이 책 p78을 보면 안네 프랑크가 판 단 아주머니(가명. 본명은 판 펠스)에 대해 심각하게 불평하는 대목이 있습니다. 이 아주머니가 안네의 부친에게, 말과 헹동으로 지나치게 친밀한 모습을 보였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모친은 판 단 씨에게 그렇게 선을 넘는 듯한 경솔함을 드러내지 않았는데 말입니다. 수십 년이 지난 지금, 우리 독자 입장에서야 사태의 진상이 무엇이었을지 알 방법은 없습니다. 아니, 판 단 부인과 오토 프랑크 씨의 사정을 지금 눈 앞에서 보고 있다고 해도 말입니다. 다들 생존에의 위협이 워낙 긴급히 다가오니 서로가 서로에게 더 밀접하게 기대려고들 했었겠고, 판 단 부인처럼 저런 부적절하고 정숙지 못한 행동도 나오곤 했겠죠. 대개 딸은 어머니를 닮는다고, 엄마가 점잖은 분이면 딸도(사실은 아들도) 가치관이 건전합니다. 책 표지에 나온 안네의 사진만 봐도 애가 고등학생답지 않게 뭔가 근엄하고 진지한 표정입니다. 

어쨌든 이런 극한 상황에서 다들 이웃과 친하게 지낼 수밖에 없습니다. 판 단(van Daan) 씨가 늘어놓는 너스레, 넌센스 퀴즈는 현대 독자들이 읽어도 헛웃음이 나옵니다. 대체로 이 판 단 씨에 대한 평가는 (안네의 일기 독자들 사이에서) 좋지 못합니다. 그러나 비평적 시선을 더 입체화하면, 같은 문장이라고 해도 그로부터 여러 해석이 가능한 법이니 우리 독자들은 괜한 선입견을 갖기보다 자신만의 자유로운 관점에서 읽어 나가면 될 것 같습니다. 오토 프랑크 씨처럼 평범한 이름도 아니고, 이 양반은 왜 유대계 독일인이면서 성씨에 전치사 "판"이 붙었는지 의아할 수 있습니다. 먼 조상이 네덜란드에서 기원했기에 성씨에 판이 붙는 건 독일인들 사이에서 드물지는 않았는데 (유대계는 아니지만) 베토벤의 경우도 이와 비슷합니다. 독일어 von과는 달리, 귀족 출신이거나 한 건 아닙니다. 이름이 판 단인 것과, 이들이 네덜란드에 은신처를 마련하게 된 경위는 서로 아무 관계 없고 그저 우연입니다. 

보통 억압적인 부친, 성격이 괴팍한 모친 밑에서 자라 저 페터 판 단 군이 괜히 위축되고 소심한 성격이 되었다고들 생각합니다. 그러나 p135에서도 알 수 있듯 필요할 때는 바로 행동이 나오는 아이였으며, 안네를 향한 행동에서도 딱히 이상한 점은 발견되지 않습니다. 단, p60 같은 데 보면 저 헤르만 판 단 씨가 아들인 페터를 때리는 장면이 있는데 이는 당시 독일 가정의 훈육 관습을 감안하면 아주 이례적이거나 하진 않습니다(물론 그 시절이라고 아빠가 아들을 다 때리진 않았겠고, 폭력은 어떤 경우에도 정당화할 수 없습니다). 다음 페이지에 나오는 "베프(Bep)"는 물론 p79 같은 곳에 나오는, 전에 오토 프랑크 씨 회사에 다니던 직원이며 베스트프렌드라는 뜻이 아닙니다^^ 저하고 같이 책을 읽은 누가 그런 질문을 해서 여기 적어 둡니다. p410에서 베르튀스라는 여자와 약혼하는데 안네는 남자가 아깝다고 생각합니다. 

안네는 어린데도 애가 아주 유머러스한 데가 있습니다. p146 같은 데를 보면 판 단 부인한테 아름답다고 평하지만 그게 반어법이라고 곧 밝힙니다. 이런 사람들은 자신만의 생각을 남에게 강요하는 게 취미인지, 오토 프랑크 씨에게 어이없는 플러팅도 했던 게 다 이런 유치하고 바보스러운 심리의 발로입니다. 그런데도 딴에 아들을 위한다고 음식을 남겨 두는데 이때 "귀여운 아들"이라고 칭한 건 관찰자 안네의 감정이입이겠습니다. 아이들은 현란한 공중전에 쉽게 매료되곤 하는데 1987년 영화 <태양의 제국>에도 이런 장면이 있죠. 그 공중전이 (보는 사람에게도) 얼마나 위험하고 그 전투의 당사자들이 생사를 건 절체절명의 상황에 처했는지도 모르고 말입니다. p251 같은 데를 보면 배를 타고 은신처를 탈출하는 문제(네덜란드는 잘 알려진 대로 저지대이니까요)와 조리도구인 국자를 젓는 동작을 연결시키는데 저런 위태로운 상황에서도 농담이 나오는 걸 보면 안타까우면서도 흐뭇합니다. 위기에 웃는 사람이 일류라고도 하지 않습니까. 

p348을 보면 당장 우리가 잡혀가는 판에 라디오 따위가 다 무슨 소용이냐면서 오토 씨가 딸 안네의 일기를 태워 버리자는 (누군가의) 말을 듣는 장면이 있고, 안네가 강력 반발하자 부친이 일단 묵살하는 대목에서 역시 과거에 큰 사업체를 운영했던 양반답게 판단이 신중하고 언행이 묵직함을 알 수 있죠. p370 같은 데를 보면 이런 상황에서도 공부를 열심히 하는데 저 앞에서도 페터가 영어 문제를 안네한테 자세히 물어 보는 장면이 나왔죠. 유대인 가정 특유의 기풍이라는 게 있기도 하고 말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가스실로 기어이 끌려가 비참하게 처형당하고 수용소의 열악한 시설 때문에 병에 걸려 죽거나 하는 게 참으로 비극적입니다. 휴... 다시는 인류사에 이 비슷한 일이 반복되어서는 안 되겠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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