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품격 한국어 : 사자성어·상용속담
전광진 지음 / 속뜻사전교육출판사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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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를 보다 자연스럽고 품위 있게 구사하려면 아무래도 속담이나 (중국 고전 등에서 유래한) 사자성어를 많이 알아야 하겠습니다. 사자성어는 비록 그 출전이 중국 저서라고 해도, 우리 조상들이 일찍부터 일상과 문헌에서 우리 것으로 받아들여 한국인의 언어 생활 깊숙이 자리잡았기 때문입니다. 속담은 그 전하고자 하는 바를 우스개와 해학 안에 함축적으로 잘 녹여 내어, 의사 소통을 부드럽게 하며 발화자의 의도를 증폭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따라서 사자성어와 속담을 잘 쓰면 확실히 대화의 품격이 높아진다고 하겠습니다. 

이 책은 한국인이 읽어도 좋지만, 한국어를 더 멋들어지게 말하거나 작문하고 싶은 외국인들에게 유용하게 잘 쓰일 것 같습니다. 책 뒤표지에는 three in one이라는 문구가 있는데, 이 책 한 권 안에 한국어, 영어, 그리고 한자가 두루 포함되었다는 뜻입니다. 속담과 사자성어가 영어로 풀어졌기 때문에, 그동안 수박 겉핥기식으로 이런 표현을 알았던 외국인들은 비로소 그 정확한 유래와 깊은 뜻을 깨우칠 것입니다. 또 한국인들이라고 해서 언제나 이런 표현들의 속뜻까지 이해한다고는 못하므로, 이 책을 읽고 그간 놓쳤던 의미를 깊이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더불어 영어 공부도 적절히 진행할 수 있겠습니다. 

p64를 보면 난신적자(亂臣賊子)라는 말이 나옵니다. 예전 KBS 사극 <무인시대>에 보면 자주 나오던 표현인데, "나라를 어지럽히는 신하와 어버이를 해치는 자"가 책에서 풀어주는 정확한 뜻입니다. 여기서 "자"를 놈 자(者)로 잘못 쓰기도 하지만 이 책에서 말하듯 아들 자(子)가 맞습니다. 여기서 적(賊)은 물론 도적 적 자이지만, "해치다, 해롭게 하다(harm)"라는 뜻으로 풀어야 한다고 합니다. 자전을 찾아 보면 과연 그런 뜻이 나옵니다. "a wicked subject or a bad son" 이것이 책에서 영어로 풀어 주는 구절입니다. 

p109를 보면 束手無策이 나오는데, 손이 묶여 있어 어찌할 방책이 없다는 뜻으로 풀이됩니다. hands, tied, there is no way to solve anything 등으로 네 글자 하나하나에 대응시킵니다. 외국인 입장에서 이처럼 정확하게, 글자 하나하나의 뜻을 알 기회는 드물 듯합니다. 예를 들어, 라틴어 고사성어나 관용구의 경우 무슨 뜻인지 정도는 사전을 찾으면 나옵니다. 그러나 각 단어가 문법적으로 정확히 무슨 격(格. case)인지, 그 문법적 격과 활용(conjugation)이 어떤 뜻인지까지 풀어 주는 사전은 거의 없습니다. 이 책은 외국인 입장에서, 대단히 알쏭달쏭할 수 있는 관용구의 정확한 속뜻을 배울 수 있다는 점이 특장점(特長點)입니다. 

p351에는 계명구도(鷄鳴狗盜)가 나옵니다. 하찮은 재주처럼 보여도 결정적인 순간에 그 어떤 재사현학의 능력보다 더 요긴히 쓰일 수 있다는 뜻입니다. 이 사자성어의 경우 왜 하필이면 닭이나 개의 재주가 예시되었는지 그 배경을 모르는 이들에게는 생경할 텐데,  책에서는 특별히 사마천의 <사기> 등에 나오는 맹상군의 고사를 인용합니다. 이 배경고사가 곁들여졌기 때문에, 몰랐던 독자는 무릎을 치며 납득할 수 있죠. 사실 닭울음소리도 다른 닭들이 따라울게 할 만큼 완성도를 높이려면 대단히 어렵고, 몰래 잠입하여 물건을 훔치는 건 본래부터가 전시에 요긴하게 쓰이는 고급 기술인력입니다. 우연히 그런 상황에 처하여 효과가 난 게 아니라 맹상군이 예견하여 양성했다고 봐야 하며, 지도자란 본래 남들이 못 보는 국면을 통찰해야 합니다. 

이 책에서 특히 높이 평가할 부분이, p173 이하에 앞에서 다뤘던 모든 사자성어에 대해 가나다순으로 색인을 붙였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이 권중 색인을 보고, 어느 페이지에 무슨 성어가 나왔는지 바로 찾아찾서 다시 그 내용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또 사자성어는 큼직하게 정자체 한자가 각각 정사각형꼴 안에 제시되었기 때문에, 독자들은 그 위에 트레이싱으로 따라 써 보면서 바른 글씨를 익힐 수도 있습니다. 

책의 후반부는 속담 편입니다. 서로 뜻이 비슷한 속담은 아예 표제에서부터 같이 다뤄, 대화나 작문 중에 요긴하게 쓰고 싶은 학습자들이 호환하여 쓸 수 있게 돕습니다. p221의 "벽에도 귀가 있다" 같은 속담은 공교롭게도 영어에도 거의 같은 뜻의 관용구가 있습니다. 책에는 이 말을 영어에서 널리 쓰는 대로 "Even walls have ears." 라고 풀고, 그 해설도 영어로 다시 달았습니다. 제가 잠깐 해석해 보자면, "이 비유적 표현은, 누구라도 경솔하게 말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며, 아무도 듣지 않는 것 같아도 말이란 쉽게 퍼져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가 되겠습니다. 한국어 학습자들은 이걸 다시 공부하면서 영어 공부를 부수적으로 행할 수도 있겠네요. 

또 이 책에서 놀라운 점은, 편집자께서 사자성어들을 같은 글자가 포함된 것끼리 한데 모아 놓아, 첫말이 같은 것, 끝말이 같은 것, 첫자와 끝자가 같은 것 등 세 유형으로 분류하여 암기의 편의를 도모했다는 점입니다. 공통된 한자는 같은 색상으로 강조하여 눈에 더 빠르게 들어옵니다. 혹 이 사자성어들을 다 아는 학습자라고 해도, 이런 식으로 모아서는 공부해 본 이들이 거의 없을 것입니다. 매우 새로운 시도라고 생각합니다. 

책의 후반부에는 50개의 성어를 주제로 삼아, 일정 길이의 이야기를 풀컬러 만화로 표현하여 더 쉽고 재미있게 배울 수 있게끔 배려했습니다. 이러니 외국인이나 심지어 나이 어린 학습자라고 해도 더 오래 머리에 남는 공부가 가능하겠습니다. 저자 전광진 교수님은 이미 "우리말 속뜻 사전" 등을 통해 품격 있는 한국어 구사를 돕는 좋은 책을 많이 펴냈고 저도 개인적으로 몇 권 소장 중입니다. 이 책은 분량이 보다 슬림하면서도 알짜 정보를 담아 멋진 언어생활로 독자를 기분 좋게 이끕니다.

*리뷰어스 클럽의 소개를 통해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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