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서북입니다. 엽서북이라는 포맷은 저 개인적으로는 처음 접해 봅니다. 형식은, 플라스틱 케이스에 엽서 100장이 들었고, 그 중 열 장은 홀로그램을 입힌 것입니다. 말이 엽서지 이런 고급품을 누가 우표 한 장 붙여서 엽서로 소비하겠습니까(제 생각일 뿐이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자신의 안부를 그렇게 전하는 분도 계실 겁니다). 포카(=포토카드)로 여겨도 될 굿즈입니다. 예쁩니다. 또 내용물뿐 아니라 풀컬러 컨셉 케이스가 전체 가치의 절반 정도라고도 생각이 듭니다.
마블은 현재 엑스맨 연작도 접고 어벤저스 크루들의 이야기에 전사적 역량을 집중하는 모양새입니다. 원래 마블은 라이벌 DC의 캐릭터들에 비해 영상물에서는 좀 밀리는 추세였습니다. DC의 대표 주자인 슈퍼맨 프랜차이즈가 워낙 인기가 좋았으며, 원더우먼 시리즈도 린다 카터의 압도적인 비주얼 덕에 세계의 시청자들을 사로잡았습니다. 21세기 들어 마블의 엑스맨이 인기를 끌고, 2008년에 (로다주까지 회생시킨) 아이언맨이 빅히트를 쳤으며, 크리스토퍼 놀란의 배트맨 비긴즈가 약간은 애매한 평가를 받으면서 양사의 우월이 역전되기 시작했습니다.
독특하게도 아이언맨은 솔로 연작을 3편에서 접었는데, 스파이더맨은 앞에 두 번이나 영화판으로 대형기획이 나왔었는데도 세계관을 다 갈아엎어 21세기 후에만 세번째로 리부트를 하고 지금까지도 계속 나옵니다. 스파이더맨에 다른 캐릭터들까지 끼워넣어 어벤저스 일부가 이리로 이사를 온 느낌입니다. 세번째로 리부트한 스파이더맨은 피터 파커의 원맨쇼 진행이 아니라, PC 가치를 대변하는 다양한 친구들을 주변에 배치하여 복합적인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이런 스파이더맨이, 영화판 아니라 애니메이션 버전에서는 더 과감한 혁신을 꾀했습니다. 피터 파커뿐 아니라 모든 인종, 모든 성별, 모든 연령대, 심지어 모든 생명체들에까지 스파이더맨의 문호를 개방했습니다. 이제 흑인, 여성, 어린이, 강아지까지 스파이더 수트를 입고 특유의 초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데, 시대나 공간도 다양하게 바뀌기까지 합니다.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란 그냥 비유적으로 자주 쓰이는 관용구인데, 이 기획에서는 문자 그대로의 의미입니다. 이 우주 저 우주를 (자유로운 상상력으로) 마음대로 넘나드니 그게 바로 멀티버스(multiverse)이며 스파이더맨 고유의 개방성 때문에 이게 더 확실하게 구현되었다고 하겠네요. 개방성, 포용, 톨레랑스, 그 다음에 올 말은 자유와 평화입니다.
스파이더맨 수트는 다른 초능력 히어로 코스튬과는 달리 얼굴이 안 보입니다. 샘 레이미 스파이더맨 2편을 보면 닥 악(Doc Oc)과 갖은 사투 끝에 옷은 다 찢어지고 얼굴이 드러난 스파이더맨을 보고 대중들이 깜짝 놀라("뭐야, 어린애잖아?") 우리가 그를 지켜줘야 한다며 분기탱천하여 빌런과 맞서는 감동적인 장면이 있습니다. 이 점, 즉 얼굴이 평소에 안 드러난다는 점에서 스파이더맨은 외형으로 사람, 혹은 생명체를 차별하지 않는 평등의 가치, 그리고 참여의 미덕이 구현되는 캐릭터이기도 합니다. 엽서북을 보면, 아티스트가 작품의 이런 메시지, 교훈을 깊이 이해하고 난 후, 선 하나 배색 하나 캐릭터의 동작 하나까지, 상징적 의미를 충분히 고려하여 형상화한 장면들이 가득합니다. 스파이더맨(들)의 우주(들), 아름답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