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시조 이문열 중단편전집 2
이문열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1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금시조에서 "시(翅)"는 날개라는 뜻입니다. 받침인 支가 발음을, 깃털 羽가 뜻을 나타내는 형성자입니다. 국어사전을 찾아 보면 이것이 불교에서 말하는 "팔부중(八部衆)"의 하나라고 나오는데, 그럼 팔부중에는 무엇이 있는지 찾아 보면 여덟 개 중에 "금시조"가 또 없습니다.  같은 사전 안에서 설명이 완결되지 않는다는 건 사전의 품질을 의심케 하는 거죠. 물론 요즘은 사전보다 강력한 구글이 있어서 찾아 보면 나옵니다. 국어사전에도 팔부중 중 가루라를 들어 놓았는데 이 가루라가 금시조입니다. 금시조는 음역이 아니라 뜻으로 풀어 놓은 이름이라 하겠습니다. 


이 장편은 이문열 작가의 동인문학상 수상작이며 읽어 보면 과연 장중하고 심오한 메시지를 담은 이야기가 맞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시대 분위기에는 좀 맞지 않는 듯한, 다소 정형적인 구조와 전개가 아닐까 하는 생각 떨칠 수 없습니다. 물론 이런 종류의 교훈과 미학적 효과는 올타임 리퀘스트에 속하며 시대를 초월한 보편적 메시지라는 건 뭐 틀림없습니다. 


잘 알려진 대로 스승 석담은 예술이 도, 학, 삶과 유리된 채 존재할 수가 없다는 입장이며, 제자(주인공)은 구태여 그럴 필요가 없고 예술은 어떤 입장이나 철학과는 따로 떨어져 그 자체의 존재 영역이 있다는 쪽입니다. 영어로 말하면 art for art's sake라고 하겠죠. 그런데 훨씬 앞선 시기, 예를 들어 일제 강점기 김동인의 단편들에 나오는 피상적이고 설익은 입장보다는 훨씬 깊이가 있습니다. 소설이라면 적어도 이 정도의 깊이 있는 사색 그 결과를 담아야 그게 독자에게 어떤 감화가 가능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다만 이 정도 담론은 현대 독자에게는 이미 상식이 되었으므로 길게 재인용 같은 건 하지 않겠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이 장편을 읽으면서, 과연 예술의 가치는 누가 알아보며 누가 값을 매기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누가 5년 동안 한국을 이끌어갈 대통령이 되는지는 평등하게 주어진 한 표에 따라 돈이 있건 없건 유식하건 멍청하건 간에 모두가 모여서 결정합니다. 주식의 가격은? 개미의 시시한 돈도 모이고 모이면 그 볼륨을 무시 못 합니다. 그러나 예술 작품을 "보통 선거"로 평가하면, 뒤샹의 <분수>는 단돈 이만원에 그 모든 가치가 결정되고 말 것입니다. 예술은 첫째 백아 곁에 종자기가 있었듯이 고독한 예술혼을 해례(?)할 수 있는 영혼의 교통자들이 있어야 그 가치가 비로소 밖으로 드러납니다. 둘째 그것에 고가를 매기고 손에 넣으려는 부자들이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해서 결정된 미적 감각이라는 게 과연 한 시대를 대표하는 정직한 결과라고 할 수 있을까요? 아니면 그저 돈 많은 호사가들의 변덕에 의해 좌우될 뿐일까요? 답은 알 수 없습니다. 부정적이라는 게 결코 아니고, 말 그대로 알 수 없다는 겁니다. 


이 작품은 KBS에서 극화된 적이 있는데 석담 역에 신구씨, 고죽 역에 고 김흥기씨가 나와 볼만한 연기를 펼쳤습니다. 그러나 신구씨 특유의 사람 갈구는 연기는 이게 배역이 배역이다 보니 설득력이 있지만 김흥기씨 연기는 사실 저 인물이 뭘 말하고자 하는 건지 감이 잘 잡히지 않았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고 김흥기씨를 최고의 연기자로 평가하는데, 극이 저렇게 된 건 제 생각에 각본이 나빠서입니다. 원작은 예술의 본질에 대한 시각의 차이로 스승과 제자가 대립하는 건데, 드라마는 그게 아니라 두 인물의 신분 차이라든가 개인적 애증 관계에 초점을 맞춥니다. 뭐 그렇게 해도 하나의 (재)해석은 되는 건데, 문제는 원작 소설의 진행에서는 또 벗어날 수 없다 보니 드라마가 처음에 꺼낸 단서와는 전혀 무관하게 이야기가 흘러가는 거죠. 드라마만 보고 실망한 사람은 원작 소설을 읽어 보고 원작에 대한 정확한 평가를 할 필요도 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