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축의 시대 - 인플레이션 쇼크와 금리의 역습
김광석 지음 / 21세기북스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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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축이란, 허리띠를 졸라매고 씀씀이를 줄이는 걸 대체로 가리킵니다. 아마도, 경제적 곤경에 빠져서 쓸 것을 애초에 못 쓰고 가난에 시달리는 건 긴축이라 부르지 않을 듯합니다. 그보다는, 아낄 수 있을 때 자발적으로 아끼는 게 긴축의 뜻에 가깝겠으며, 선거로 지도자를 뽑는 민주국가의 정부에서 긴축 정책이란 쉽게 쓸 수 없는 옵션입니다. 국민들 중 어느 누구라도, 종전보다 많은 이자를 내고 종전보다 줄어든 혜택에 만족하라면 좋아할 이가 없겠기 때문입니다. 역사상 유명한 긴축이라면, 1970년대 후반 연준의장 폴 볼커가 취한 살인적인 고금리 긴축이었겠습니다. 이때 그가 큰 마음먹고 긴축을 하지 않았다면 미국은 1980년대 내내 스태그플레이션에 시달렸겠으며 이후 바로 초강대국의 지위를 잃었을지 모릅니다. 짧게 굵게 고생하려는 각오가 없다면, 이후 내내 불황에 시달리며 회복의 기회를 도통 못 잡을 수도 있습니다.


어떤 이는 공급망 붕괴 때문에 이 모든 위기가 닥쳐왔다고 하는데 아마 트럼프 재임 기간 반중 정책의 폐해를 꼬집는 의도이지 싶습니다. 그러나 많은 이들은 1) 코로나 위기 당시 지나치게 많이 풀린 지원금 2)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한 불확실성 증가, 자원 가격 폭등에서 원인을 찾습니다. 지금 이 책은 풍부한 도표, 컬러 편집, 최신의 글로벌 사정 반영 등으로 우리 독자들이 지금 위기가 어떻게 비롯했으며 앞으로 어떻게 사태가 전개될지 잘 이해시키고 있습니다. 저자님 특유의 진단과 해결책 제시 부분도 매우 흥미롭습니다. 


코로나 위기나 우크라이나 사태 이전부터 세계는 어떤 근원적인 변동을 맞고 있었습니다. 책에서는 이를 "대전환의 시대"라 요약하며 그 방향성 셋을 꼽습니다(p49). 첫째는 디지털 대전환, 둘째는 에너지 대전환, 셋째는 긴축 시대로의 대전환입니다. 그러니 저자는 현재 각국 정부가 겁내는 어떤 스태그플레이션 같은 게 닥치기 이전부터 이미 긴축을 내다보았다는 뜻입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2012년 그리스 위기 당시 미국을 위시한 서유럽 경제 강국들이 모여 대규모 양적 완화를 실시한 적 있기 때문입니다. 생산력이 크게 나아진 바 없는데 돈만 공연히 많이 풀렸으니, 이 완화는 이제 거꾸로 몸을 틀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꼬인 줄을 허공에 띄워 놓으면 알아서 반대방향으로 주르륵 풀리듯 말입니다. 


1990년대 지구를 지배했던 시대정신은 "세계화"였습니다. 각 나라는 각기 잘하는 산업에 전념하여 가장 싼 가격으로 물품과 서비스를 생산하고, 이에 장애가 되는 각종 규제를 걷어내는 게 최우선 과제였으며 모든 기업은 이른바 "오프쇼어링", 해외에 있는 더 싼 생산 기지를 찾아 본국을 떠났습니다. 지금은 이른바 리쇼어링의 시대입니다(p56에 표를 통해 중국으로부터의 기업 철수 사례가 정리됩니다). 해외에 나가 보니 본국과는 다른 문화, 다른 규제가 장벽으로 우뚝 서 있고, 임금이 싸 좋은 줄만 알았더니 노동의 질이 떨어지고, 개도국 정부는 은근히 자국 기업과 외국 기업을 차별하며 알짜 기술과 정보만 빼가려 혈안입니다. 저자는 이를 두고 "세계화의 종식"으로 규정합니다(p53). 그 종식의 포성은 바로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라고 표현합니다. 이제 선진국은 공장 증설을 해도 자국에 하려 들고, 그 결과 부품이나 소재의 병목 현상이 일어나도 제때 원활히 공급이 늘지 않습니다. 가격이 오르면 공급이 늘어난다는 경제학의 철칙이 통하지 않는 시대입니다. 


탈세계화가 이처럼 진척되면 기존 더 저렴한 부품이나 소재를 개도국으로부터 사 쓰는 게 어려워지고, 대신 더 비싼 자국 것을 사야 합니다. 이러니 인플레가 더 가속화하거나 빈발하게 되는데 저자는 책 p66에서 반도체의 예를 듭니다. 반도체는 산업 전반에 걸쳐 안 쓰이는 데가 없으니 반도체의 사례가 모든 분야를 대유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략했는데 왜 우리 나라 경제가 타격을 입을까요? 이제는 이런 의문을 가지는 사람이 거의 없고 당연하게들 여깁니다. 2012년 그리스 사태 때 거의 모든 직장인들이 주식 시장의 붕괴를 보며 그리스를 욕했습니다. 지금은 입을 모아 러시아를 비난합니다. 지구 반대편의 사정은 더이상 지구 반대편의 사정이 아니라 목전에 떨어진 발등의 불입니다. 이렇게 다른 나라에 큰 리스크를 지고 경제를 꾸려 나가는 걸 선진국들은 더 이상 용인하지 않으려는 겁니다. 자국 노동자들에게 더 많은 일거리도 줄 겸 이제는 장벽을 치는 편이 낫다고 여기는 거죠. 물가 상승은 필연입니다. 불과 30년 만에 지구 도는 방향이 반대로 바뀌었습니다. WTO 같은 건 뉴스에도 잘 안 나오는 요즘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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