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성 2 고양이 시리즈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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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도 마치 드라마 배경 음악처럼(diagesis라고 할까, 등장 인물, 동물들도 다 들을 수 있지만) 많은 명곡들이 언급되기 때문에 독자는 어느 정도 작가가 의도한 무드를 상상해 가며 읽어갈 수 있습니다. 1권 후반에는 인간들이 자축 무도회(너무 일렀던)를 열며 배경음악으로 이글스의 <호텔 캘리포니아>를 트는 장면이 있었는데 이 2권에서는 p16에서 레드 제플린 천국으로 가는 계단(스테어웨이 투 헤븐), p79에서 바흐의 토카타와 푸가 같은 게 언급됩니다. p305를 보면 베르베르가 이 작품을 쓰며 들었던 모든 음악의 제목들이 정리됩니다. 


특히 이 2권, 나아가 <행성>이라는 작품 전체의 주제는 "소통"입니다. 더 자세히 이야기하면 스포일러라서 최대한 자제하겠습니다만 종(種)의 힘은 얼마나 개체 간에 활발하고 효과적으로 소통이 이뤄지냐에도 크게 의존합니다. 베르베르는 이 작품에서 오로지 이 주제 하나를 향해 그 많은 이야기들을 다 몰아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1권 p38에서 바스테트는 울음소리에 그저 메시지만 담아서는 안 되고 강한 자신감까지 함께 넣어야 한다는 엄마의 교훈을 또 이야기하는데, 소통에는 이처럼 감정, 상대를 충분히 설득하고 나아가 도동화까지 시킬 수 있는 감정이 들어가야 하죠. 


바스테트의 엄마는 뭔가 교훈적이고 도덕적인 교훈보다는 실용적이고 씁쓸하기까지 한 가르침을 생전에 열심히 그 딸에게 전수했나 봅니다. p161에는 난관 앞에서 딱히 방법이 없다 싶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또 그 특유의 시니커함을 담아 딸에게 일러 준 교훈이 등장하는데 독자는 피식 웃게 됩니다. 바스테트는 1권에서도 나온 대로 솔직한 자신의 내면이 따로 있고, 여왕으로 떠받들리던 시절에 쓴 "가면"이 하나 따로 있어서 때로는 끝도 없이 심각해지는 게 웃음 포인트입니다. 이 2권 앞부분에서 약물 흡입을 통해 괴로운 현실을 잊고자 하는 인간들의 어리석은 모습을 다시 비웃는 바스테트가 정작 본인도 어쩔 수 없는 한계를 드러내는 게 우습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주인공은 다분히 성장형이기에 독자는 끝까지 공감을 보낼 수 있습니다...


안젤로는 이 2권에서도 여전히 폴을 비롯한 쥐들을 싫어하는데 p36에 또 특유의 혐오 표현(?)이 나옵니다. p181에서는 아예 "쥐들은 다 죽여야 한다"고까지 합니다. 1권에서 안젤로는 폴에 대해 엄청난 불신을 드러냈지만 그런 그의 태도는.... (스포일러라 생략) 엄마에 대한 집착은 여전해서 p77 같은 데서 "엄마는 최고!"라며 호들갑을 떨고 1권 말미에서도 그랬지만 엄마에게 어떤 특수 임무만 부여되면 꼭 따라나서려고 오버합니다.

 

아무튼 인류 역사상 이중 간첩의 시초를 OOOO으로 잡는 베르베르의 희한한 견해에는 다소 놀라게 됩니다. 1권 후반부에 보면 베르베르는 제2제정을 이끈 나폴레옹 3세에 대해 산업화의 영웅 정도로 인식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나폴레옹 3세는 외교적 협잡이나 포퓰리즘 잔재주의 전문가였을 뿐 국가를 장기적으로 어떻게 이끌어야하는지에 대한 비전이 전무했죠. "지도자의 덕목인 비전"에 대해서는 이 2권 중반쯤에 바스테트가 티무르를 농락하는 장면에서 잠시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그는 자주는 아니지만 작품 중에서 은근 자신의 정치관을 노출하기도 하는데 p142에서 마오쩌둥을 비판하는 대목이 그것입니다. 1권 말미에도 개혁가 자오쯔양을 대신한살인자 리펑이라며 한 마디 하는 문장이 있었습니다. 


1권에서 적의 신체 일부를 섭취함으로써 그의 덕목을 내 것으로 만드는 원시적 행태가 여러번 나왔는데 이 2권에서는 상징적 의미에서 p52에 "(알카포네의) 뇌를 (티무르가) 먹었다"는 표현이 있습니다. 1권에서 바스테트와 에스메랄다가 두 왕을 죽이러 왔을 때 티무르가 적극적으로 알 카포네를 돕지 않는 장면이 이미 있었죠. 역시 한 집단에 두 지도자는 공존하기 힘듭니다. 제가 1권 리뷰에서 "OOOO가 너무 일찍 퇴장한다"고 약간 불만을 드러냈었는데 베르베르가 그렇게 한 데에는 역시 이유가 있었습니다(스포일러라서 더 이상 자세히 쓰지 않습니다). 이 2권에서도 빌런인 알 카포네가 좀 허망하게 일찍 퇴장하는 셈인데, 어쩐지 1권에서 베르베르는 그리 큰 애착을 갖고 이 캐릭터를 다루지 않았더랬죠. 그럴 줄 알았습니다. 


티무르는 전작 <문명>에서부터 바스테트의 숙적이었고 p88부터 드디어 둘의 역사적인 담판이 벌어지는데 이 부분이 <행성>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습니다. 티무르도 천재이니만큼 둘의 티키타카가 정말 볼만합니다. 이 장면을 두고 베르베르는 헨리 8세와 프랑수아 1세의 역사적 대결에 (스스로) 비유하는데 p81에서 언급되는 토머스 울지는 영국인이므로 "울시"가 더 보편적인 발음이겠습니다("울지"는 프랑스식인가?). p85에는 시작부터 반말이라며 티무르의 무례한 화법을 비판하는 바스테트의 독백이 나오는데 1권 p68에는 존대법에 대해 심리적 거리가 더 중요한 변수라는 역자 주가 나옵니다. 프랑스어뿐 아니라 스페인어, 독일어도 다 마찬가지입니다. 


1권 p345에서는 에스메랄다와의 심리적 거리에 대해서도 바스테트가 한 마디 했었습니다. p94에는 "협상이 쉽게 이뤄지는 건 한쪽이 다른 쪽을 속이기 때문"이라는 시니컬한 교훈이 또 나오는데 이건 결말에 대한 일종의 복선입니다(역시 스포일러라서 더 이상은 생략). 1권 리뷰에서 바스테트의 모순적인 내면에 대해 비웃는 말을 적었었습니다만 2권까지 다 읽어 보니 이 역시 작가 베르베르의 의도가 다분히 개입한 솜씨였습니다. 자세한 건 이 리뷰 결말에 쓰겠습니다. 


p164에는 보스턴 다이내믹스라는 기업이 등장하는데 놀랍게도 현대차그룹이 인수했다고 합니다. 방산인데 쉽게 미국 정부가 이걸 허가했을지 잘 모르겠습니다^^ p180에는 드디어 인간들이 "맨해튼 프로젝트"를 발주하여 (맨해튼을 점령한) 쥐들을 전멸시키려 드는데(문자 그대로의 의미) 원래 이것이 2차 대전 당시 일본의 무조건 항복을 이끌어내려던 미국 과학자들과 정부의 기획이었던 역사적 사실을 생각하면 씁쓸해지는 대목이죠. 작품의 유머는 여기에 그치지 않아서 p109의 서류 문명, p115의 서산서해, p118의 비서종 등 말장난이 풍성히 이어집니다. 물론 번역의 묘미도 크게 기여하겠습니다. p120에는 티무르가 자유의 여신상 얼굴에 자기 얼굴을 새기려 드는 대목이 있는데 인간 문명이 폐허로 된 상징으로 "자유의 여신상"이 쓰이는 건 1960년대 찰턴 헤스턴 주연의 <혹성 탈출>의 그 유명한 마지막 장면을 연상케도 합니다. p151에서 또 아기돼지 3형제 동화가 언급됩니다. 


전에 1권을 읽으면서 인간들이 102개 부족 총회를 열 때 독자인 제가 내내 걱정되던 게 이 내용이 만약 티무르 측에 흘러들어가면 어떻게 하냐는 점이었습니다. 영리한 베르베르는 2권 p212에서 드디어 이 문제를 터뜨리고 마네요. 인간들의 치명적인 문제는 보안에의 무관심도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소통에 무능하다는 점임을 고양이 바스테트는 통렬히 지적합니다. "나는 이제 인간들의 문명이 와해한 이유를 알 것 같다. 그들은 서로 사랑하지 않는다(p67)." "일단 희생양을 하나 만든다. 그리고는 그에게 모든 죄를 뒤집어씌운다(p65)." "종(種)의 우월감이 생존 본능보다 앞서는 한심한 인간들(p73)" 같은 문장 속에서 바스테트는 인간의 어리석은행태를 신랄히 고발합니다. p209에는 "죽음에의 충동은 인간의 본성이며 외부의 적을 향해 파괴적 본능의 발휘가 실패하면 끝내는 자기 자신을 향해 총구를 겨눈다"는 말도 있습니다. p222에서 꼴통 그랜트 장군은 "또 소통?"이라며 문제를 더욱 악화시키는 발언을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행합니다. 답이 없습니다. 


1권에서 바스테트는 스스로를 "가면에서 못 빠져나온다"고 반성하거나 자신의 신화를 고집한다고 평가한 적있습니다. 이 2권 p218에서 또 그녀는 "자기 자신에게 거짓말"을 한다며 얼굴을 붉힙니다. 그러면서 그녀는 놀라운 인식에 도달하는데, 왜 인간을 그토록 좋아하냐는 티무르의 힐난에 대해 인간은 무지한 자신을 직시할 줄 안다고 결론을 내립니다(p264). 독자인 제가 1권 리뷰에서 주체파악 못하는 바스테트를 비난했었는데 p277에서 바스테트는 그녀의 연인(엥? 어떻게 된 거죠?ㅋ)으로부터 "넌 과대망상"이라며 핀잔을 듣습니다. OOOO는 저하고 의견이 일치했던 거죠.


p279에도 나오듯 고양이와 인간은 "완전한 소통"을 추구하고 중히 여긴다는 점에서 서로 닮았습니다(무척밝힌다는 점까지도). 그리고 이것이 쥐들로부터 세상을 구한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그 완전한 소통은 "사랑"의 동의어에 다름 아니겠고 말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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