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인의 비상구
강난경 외 지음 / 한글 / 200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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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난경 작가는 기독교 관련으로도 여러 작품을 쓴 분입니다. 이 책에는 그의 단편 아홉 작품이 수록되었습니다.


책프 25기 17주차에 "막상 찾고 보니, 마냥 반길 수만은 없었던 이산가족" 이야기를 다룬 <하늘만큼 먼 나라>를 리뷰했었습니다. 이 책에 실린 아홉 단편 중 "순금 촛대"도 이산가족에 살짝 얽힌 이야기입니다. 


주인공인 치과의사는 범죄자인 친동생이 출옥한 날 자기 집으로 데려오면서 부인과 크게 싸웁니다. 


"훈장질이나 하던 당신 집안..." "그래요, 잘난 당신 집안은 의사 가문이었다고 치죠. 그런데 돌팔이 의사도 의사인가요?" "아니 뭐야?" 이처럼, 흔한 부부싸움도 두 당사자가 아니라 출신 집안을 들먹이는 순간 크게 번지고 맙니다. 


자리를 잡지 못하는 친동생도 그렇고(당일로 바로 내보냅니다), 자신의 마음을 알아 주지 않는 아내의 불화도 불화이고 해서 주인공은 며칠 간 반 가출 상태를 유지합니다. 이 마을에는 떠돌이인 언어 장애 처녀가 한 명 있는데, 삯바느질을 포함해서 이런저런 허드렛일로 먹고삽니다. 주인공은 나이가 상당히 많지만 이 처녀와 우연히 마음이 맞게 되고, 기어이 같이 밤을 보냅니다. 지금 같으면, 아니 당시 기준으로도 사회적 지탄을 받을 일입니다. 


동생은 막노동을 포함해 호구책을 찾지만 전과자를 누가 써 주지도 않는데, 이상하게도 그 장애인 처녀에게 눈길이 자주 갑니다. 동생이 친하게 지내는 친구들은 아주 질이 나쁜 부류라서 이들 중에 못된 마음을 품는 놈도 있지만 동생이 그녀에게 품는 마음은 100% 순수한 것입니다. 웃기는 건, 그 형이 품은 이기적인 욕정은 저 밑바닥 불량배 친구들의 그것과 하등 다를 바가 없다는 점입니다. 주인공은 겉으로야 번듯한 사회적 지위와 재력을 지녔지만 그 한심한 내면은 바닥을 치는 수준이며, 오히려 전과자인 동생이 적어도 저 여자를 향헤서는 깨끗한 순정으로 임한다는 게 아이러니입니다. 


문제는, 처녀가 배고 낳은 아이는 주인공인 형의 핏줄이며, 동생은 이런 사정도 모르고 여인과 아이를 돌본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타고난 나쁜 천성과 습관을 완전히 버리지는 못해서 이 부부는 (남편 탓에) 여전히 가난하게 삽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여인이 그 형을 잊지 못해, 남편인 동생을 버리고 방황하다 길에서 죽었다는 점입니다. 그 진짜 이유를 남편인 동생은 알 수 없으나 형은 혹 진상이 드러나 자신의 사회적 평판이 모두 무너질 것을 두려워합니다. 지극히 이기적이고 속물적이며 심지어 범죄적이기까지 합니다. 죽은 아내를 모욕한 불량배 친구와 술을 먹고 시비가 붙은 끝에 동생은 살인을 저지르게 되고 다시 감옥에 들어가지만 사태의 진상에 대해서는 전혀 모릅니다. 알면 정말 무슨 일이 벌어졌을지 모를 판입니다. 


조카, 아니 자신의 소생이 맡겨진 고아원에 매번 거액을 후원하는 주인공에 대해선 칭찬이 자자합니다. 그러나 진정 사회적으로 지탄을 받고 감옥에 가야 했을 사람은 동생이 아닌 저 형이었습니다. 


이 작품은 1987년 KBS에서 극화되었는데, 이산가족 상봉 프로그램을 제작 방영한 곳이 이 방송국이었건만 극중에는 "이산가족" 언급이 전혀 없다는 게 특이합니다. 형 역에 김기섭씨, 동생 역에 장기용씨, 질 나쁜 동생 친구 역에 <태조 왕건>에서 파달 장군 역(이 역도 무식하기 짝이 없는 캐릭터)을 맡았던 개성파 연기자 기정수씨, 그리고 말 못하는 거지 처녀 역에 몇 주 전 타계한 강수연씨가 나옵니다. 제작 방영이 1987년이므로 그 전년도에 베니스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탔으며 따라서 이미 월드스타가 된 상황에서 이 역을 맡았습니다. 어찌보면 임권택의 <씨받이>에서 그 타이틀 롤과도 (운명에 휘둘리는 비운의 여성이라는 점에서) 성격이 닮았다고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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