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유일의 장편 소설입니다. 


변호사인 아버지 슬하에서 엄마 없이 자란 주인공은 어느날 각혈을 하고서 결핵 진단을 받습니다. 과거에는 결핵이 치명적인 질병으로 여겨졌으나 현재는 물론 그렇지 않고, 사실 이 소설이 창작되었을 무렵에도 과연 저런 병이었을까 하는 의심이 들긴 했습니다. 더군다나 변호사의 딸이라면 영양 섭취에 어려움을 겪지는 않았을 텐데 말입니다. 


여튼 주인공은 멀리 떨어진 어느 요양소에 가게 되는데, 여기서 운명의 남성을 만납니다. 남자도 건강이 좋지 않아 이곳까지 욌는데, 여기서 둘은 서로 처지가 비슷한 것 말고도 정신적으로 닮은 점이 매우 많다는 걸 알게 됩니다. 남자는 얼마 지나지 않아 지병으로 목숨을 잃지만 대신 주인공에게 자신의 씨앗을 남기며 희한하게도 임신, 출산의 과정을 겪으며 주인공은 애초에 말기로 진단 받았던 결핵이 씻은 듯 낫게 됩니다. 


문제는 변호사인 그 부친입니다. 하나 있는 딸이 시집도 안 간 채 아버지도 없는 아이를 낳게 되는 걸 집안의 수치로 여겨 출산이 임박한 딸을 산부인과에도 보내지 않습니다. 한편 주인공은 깊은 정을 주고받은 그 남성을 잊지 못해, 자신의 낳은 아들을 그 남성과 아예 동일시하기에 이르니 부친의 근심이 더욱 깊어집니다. 부친은 법률가로서의 양심도 저버린 채 딸에게는 영아가 죽었다고 거짓말하고 가톨릭 시설에 위탁해 버립니다. 게다가 이 신생아는 다리가 불편한 채로 태어났다는 핸디캡까지 가졌으니 그 시대상을 감안하면 저 가부장적인 인물이 다른 선택을 할 리도 없었겠습니다. 


주인공은 이후 수녀가 되어 완전한 독신의 삶을 살게 됩니다. 자신이 낳은 아이가 실은 죽지 않고 어느 시설에서 보호받고 있다는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된 후 주인공은 가톨릭 시설마다 수소문하여 다리가 불편하고 일정 연령인 젊은 남성을 일일이 물색합니다만 시설 측에서 친절히 협조해 주지 않습니다. 아마도 짐작으로 이 사람이 내 아들이겠거니 싶은 어느 장애인 청년과 드디어 만나게는 되지만 어떤 확신 같은 건 없고, 자신도 마치 비구니처럼 세속에서의 인연만 내세울 입장은 또 아닙니다. 자신의 체면만 생각하여 딸의 인생을 비극에 빠뜨렸다는 죄책감에 휩싸여 부친은 결국 세상을 떠납니다. 


읽으면서 내내 왜 이 인물들이 이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 애써 생각해 보았으나 딱히 공감은 잘 가지 않았습니다. 물론 제가 놓친 포인트가 있었을 수도 있겠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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