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밀턴의 그리스로마신화 현대지성 클래식 13
이디스 해밀턴 지음, 서미석 옮김 / 현대지성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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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란 우리 인류가 집단 무의식으로 발전시켜 온 지혜와 열망, 낭만, 상상, 그리고 과거에 대한 묵시와 미래에 대한 예지의 총체적 형상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느 문명이건 자신들 부족 고유의 신화 체계를 발전시켜 왔고, 이런 사정은 중국이건 우리건 중동인이건 페르시아인이건 이집트인이건 다르지 않습니다. 그리스 신화만 그에 유독 탁월한 인류 정신사적 가치를 부여받아야 할 이유는 전혀 없습니다. 게다가 그리스 신화의 모든 내용, 모티브가 인근 문화권의 영향으로부터 완전 자유로운 전적 창의로 꾸려진 것도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그리스 신화를 공부하고 그에 깊이 침잠할 수 있는 이유, 혹은 그렇게 해야만 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싫든 좋든 지금 인류 문명은 유럽인들이 기본 틀을 닦아 놓은 토대에서 자라고 번영하고 있습니다. 그리스 신화를 모르면 국제 소통에서 문맹자나 마찬가지 처지에 놓입니다. 2) 굳이 "우리 아닌 저들의 것"이라며 선을 긋고 볼 필요 없이, 그리스 신화는 인류 보편적 정서와 가치, 그리고 문화적 의의를 충분히 담고 있습니다. 인간의 벌거벗은 욕망과 무의식적 충동을 그리스 신화 체계처럼 오롯이 담아낸 "거대한 이야기 보따리"가 또 있을까 싶을 만큼. 3) 그리스 신화는 그에 대해 가장 깊고 넓게 연구가 이뤄진 문예 영역입니다. 또 그리스 신화만큼 파생 서브컬처 창작이 활발히 이뤄지는 분야도 없습니다. 하나를 알게 되면 더불어 열을 알게 되는, 노력 대비 효율이 무지 높은 분야가 이 신화의 텃밭이라고 볼 수 있죠.


개인적으로 저는 이 신화 연구자들과 학문외적 일반 문인들 사이에 의외로 긴장이 높게 형성된 걸 보고 놀란 적이 있습니다. 신화만큼 열린 계(界), 진입과 퇴출이 자유로운 공유지가 또 어디 있다고, 어떤 정통 경전, 텍스트를 인정할 필요가 그리 크단 말인가 하는 회의감. 그런데 이 역시, 바른 학문적 체계를 잡고 파고 들어야 그 복잡다기한 이야기의 가지를 바로 파악하고, 정확한 이해를 도모할 수 있습니다.


고대 그리스어는 모든 인도-유럽 어족 중에서도 시제가 까다롭기로 유명한 언어죠. 정확한 구문의 이해가 선행되지 않고는 텍스트의 바른 전달(번역)이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유 박사님은 이 소재를 다루기에  최상의 적임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책 앞부분에는 그리스어 음가표, 표기법 등에 대한 원칙이 상세하게 적혀 있는데, 아직도 중구난방으로 혼란스러운 우리의 난맥상을 바로잡아 줄 중요한 지침이 되어 줄 것 같습니다.


특히 제가 이 책에서 주목한 건 시간의 신 크로노스와 제우스의 아버지 농경의 신 크로노스가 혼란 없이 바로잡히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 대목에 대해 정확한 이해가 선행되지 않으면, 신화의 맥락을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오해할 수 있습니다. 특히 후자인 크로노스에 대해서는 명화나 문예작품 속에서 다양하게도 그 의의가 원용되는데, 가끔은 서양인들도 이 두 신격에 대해 혼동을 범하거든요. 처음에 바른 체계를 잡고 그 위에서 인식의 지평을 넓혀가는 작업이 그만큼이나 중요한데, 이 책은 그런 독자들에게 완벽한 바이블로 기능할 것 같습니다.


<미들섹스>라고 (한국에도 "간성"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됨) 그리스계 작가가 뉴욕타임즈 베스트셀러를 대략 13년 전에 내놓아 큰 히트를 친 적 있습니다. 지중해성 기후대에서 비교적 빈도 높게 나타나는 현상인데, 고대인들에게는 이런 게 더 자주 보는 phenomenon이었나 봅니다. 저자 유 박사님은 이 변형적 성性에 대해 그 의의를 언급하고, 이 비슷한 착상이나 원형이 중국 신화에도 나옴을 언급합니다. 이처럼 이 책은, 신화학의 비교문학적 어프로치를 통해 독자의 이해를 돕는다는 게 그 탄탄한 학문적 장점 중 하나로 꼽힐 수 있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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