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종, 조선의 지존으로 서다 - 타고난 절대군주가 뿜어낸 애민의 카리스마 숙종의 진면목 이한우의 군주열전
이한우 지음 / 해냄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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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요즘 주역을 좀 제대로 공부해 볼까 하는데 이미 여러 권을 소장도 하고 정독도 했습니다만 그리 만족스럽지를 못해서 이한우 씨 주해본을 시도해 볼까 생각 중이었습니다. 마침 숙종 관련 책을 이것저것 뒤지다가 이분 책이 눈에 띄어 읽게 되었습니다. 


이상하게도 한국인들은 특히 숙종 연간에 벌어진 비빈들의 혈투에 관심이 많은지, 중전까지 올랐다가 희빈으로 강등되고 마침내 사약을 받고 죽은 장옥정의 생이 TV 드라마로 자주 만들어진 편입니다. 그런데 딱히 이분이 한국인들 관심을 끌 만한 드라마틱한 인생을 살았다기보다(물론 그렇기도 하지만), 김지미, 남정임 등 1960년대 영화에서 이분의 생을 극화하여 대중의 큰 호응을 얻은, 어떤 우연적인 계기, 요인이 더 크게 작용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또 1980년대 이미숙씨가 TV 드라마에서 다시 이 역을 잘 소화함으로써, 시대를 대표하는 미인 배우들이 반드시 한 번은 거치는 역으로 아주 전통 하나가 만들어진 영향이 크다고 하겠습니다. 


"희빈 장씨의 그늘에 가려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던 숙종의 진면목.."이란 구절이 있으나, 사실 이는 그야말로 대중 매체가 자의적으로 각인시킨 이미지에 치중한 평가일 뿐입니다. 숙종은 젊은 나이, 아니 거의 어린 나이라 할 만한 때에 보위에 올랐는데, 경험이 일천한 청년으로서 (연상의 여인이기도 한) 장옥정에게 정말 휘둘리고 "그늘에 가려질" 법도 했습니다만 실제 행적을 보면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사실 영민하고 기질 드센 여인 하나가 정국과 역사를 좌우한다는 건 거의 판타지에 가까운 발상입니다. 아무리 신분제 사회였어도 세상은 그리 호락호락 돌아가는 게 아니라서, 세력 간의 치열한 다툼과 술수의 산물로 정치 궤적이 그려지는 것이지 개인의 영향이란 그리 크지 못합니다. 


22기 40주자 독후감에서 말했지만 예컨대 영빈 김씨 같은 경우 철저히 노론 진영의 정치 스파이로 궁중에 진입한 인물이겠으며, 이 장씨 역시 남인의 정치적 이해를 대변하여 의도적으로 심어진 케이스라 해도 과언이 결코 아닙니다. 숙종이 한 남성으로서 여인에게 개인적인 정을 준다 어쩐다 하는 낭만적 의도를 품었다손 쳐도, 이것이 살벌한 정치적 대립의 형국 속에 그대로 현실이 되리라곤 도무지 기대할 수 없었겠습니다. 숙종뿐 아니라 그의 여인들 역시 "선수들"이라, 무슨 로맨스 같은 게 애초에 꽃필 여지가 없었다는 소립니다. 


현실이 이와 같으면 구김살 없이 성장기를 보낸 청년 군주로서 좌절할 만도 했겠고 실제로 일생을 그리 낭비한 군주들도 적지 않으나 숙종은 그렇지 않았고, 젊은 나이였음에도 불구하고 냉철히 이성을 찾아 이후의 정국을 거의 오롯이 자신의 의도에 따라 이끌었습니다. 삼복의 변 같은 것도 정파 간의 중상 모략 암투 끝에 아까운 왕족들이 억울하게 죽어나간 것처럼 보이지만, 그 실상은 아마도 숙종 자신의 교묘한 조종과 세팅의 결과 아니었을까요? 책에서 지적하는 "리더십"의 정수도 결국 이런 쪽이며, 세상이 본디 무서운 곳인 만큼 공연히 감상에 젖거나 먹잇감이 되기보다 게임의 룰을 익혀 냉정히 헤쳐 나가고 마침내 승자가 되는 게 옳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그의 "리더십(?)"은 확실히 주목할 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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