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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배경은, 전쟁의 참화를 딛고, 이미 풍족한 삶의 여건을 갖춘, 현대 한국 "서울"의 아파트촌입니다. 주인공 노인은 오전 9시 30분~10시 사이만 되면 단지에 울려펴지는 총소리를 듣습니다. 다른 시간대에는 들리지 않는데다 하루도 거르지 않는 이 소리에 노인은 불안감과 불쾌감을 느낍니다. 대체 누가 주거지에서 이런 짓을 하는 건가. 노인정에 들러 이런 느낌을 이야기하니 동료들은 의아하다는 표정을 짓습니다. 


노인은 이미 사회적으로 기반을 잘 다진 아들 내외와 함께 사는데, 어느날 아들 내외는 "시중을 들어 줄 아주머니가 필요하실 것 같아서" 어느 여성 노인, 주인공과는 대략 십여 년 나이 차이가 나는 분을 모셔 옵니다. 시대 배경을 감안할 때 법적 혼인 관계까지는 알 수 없고 사실혼 배우자 겸 찬모 비슷한 스탠스인 듯합니다. 설령 법적 배우자라고 해도 거의 모든 재산이 이미 아들 앞으로 되어 있을 듯하므로 별 말썽은 생기지 않을 듯도 합니다. 단 이 시기가 민법 최종 개정 이전 시점이긴 하지만 후처의 상속지분은 지금과 큰 차이가 없으므로 혹 말썽이 생기려면 얼마든지 가능은 하겠습니다. 꼼꼼한 아들 내외(며느리가 특히)의 일처리 솜씨로 보아 그럴 일은 물론 없을 듯하지만.


새로 들인 아주머니, 또 노인정 친구들을 다 모아 놓고 같은 시각 같은 장소에서 작정을 하고 들어 봐도 그 총소리는 이 노인 외에는 들을 수 없는 그런 소리였습니다. 단지를 순찰하는 경비원한테 물어 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대체 왜 남들이 들을 수 없는 소리를 나만 들을 수 있는 걸까? 노인은 생전 그런 특별한 능력을 지녀 본 적이 없고, 이제 생을 정리해 가야 할 단계에 접어들어 새삼 그런 능력이 생긴 것도 믿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노인은 소개를 통해 이비인후과 전문의를 찾게 되고, 이 의사는 다시 어느 정신과 전문의를 소개해 줍니다. 정신과 의사는 다소 다그치는 듯한 말투로, 노인이 뭔가 숨기는 듯한 과거에 대해 눈치를 챈 후 모든 과거 사정을 자신에게 털어 놓아야만 이 이상한 소리를 더 이상 듣지 않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이에 노인은 오래 숨겨 온 과거를 하나씩 꺼내 이야기하기 시작합니다...


책프 25기 12주차에 리뷰한 김상렬 작가의 <객사>에도 이 비슷한 설정이 있었습니다. 그 작품에서는 가족(정확하게는 처와 둘째 자식)을 북에 버리고 혼자 내려온 영감님 본인은 아무 죄의식이 없었으나 모친과 생이별을 하게 된 첫째 아들이 아버지에 대한 원망 때문에 정신적으로 큰 문제가 생겨 평생을 폐인으로 지내는 이야기였죠. 지금 이 작품에서 노인도 "그건 내 잘못이 아니었어!"라며 일생을 합리화해 왔지만 말년에 들어 이런 문제가 터진 것입니다. 또 여기에는, 아들 내외가 홀로된 아버지를 서울에 두고 이민을 가려는 결정을 이미 내린 사정도 크게 작용했습니다. 노인은 젊었을 때 지신이 저지른 잘못(가족을 버림)의 대가를, 이제 업보처럼 자신의 아들을 통해 고스란히 똑같은 방식으로 치르게 된다고 느낀 것입니다. 


사실 아들 내외는 노인이 그 생활에 불편함이 없게 모든 걸 준비하고 떠나는 것이므로 큰 잘못은 없습니다. 며느리가 약은 게, 아들이 "아버지가 정 싫으시면 저희는 안 떠날게요."라고 하자(물론 빈말입니다), 잽싸게 그 말을 받아 "아무 불편함이 없으시게..."라며 이미 확고한 결심이 선 이민 결정이 철회될 일이 없음을 분명히합니다. 저 무렵(1980년대 중반)에 실제로 한국에서 일부 중산층 중심으로 캐나다 이민 바람이 잠시 일기도 했습니다. 


아마 정신과라고 하면 (지금도 그렇지만) 미친 사람들이나 찾는 곳이라는 인식이 당시에는 팽배했겠고, 저렇게 자발적인 진술, 상담, 대화를 통해 병을 치료해 간다는 메써드(method)가 당시로서는 대중에게 매우 신선하게 다가왔을 겁니다. 유재용 작가에 대해서는 지난 24기 38주차에 잠시 언급했던 적 있습니다. 이 책은 1987년 동인문학상 수상작품집이기도 합니다. 요 당시에는 수상을 조선일보사에서 주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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