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히 듣는다 - 오감을 깨우는 클래식의 황홀, 듣는 즐거움으로 이끄는 11가지 음악 이야기
서영처 지음 / 나무옆의자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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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이란 우리를 궁극의 고요, 안정, 평화의 세계로 안내합니다. 소설 <임프리마투르> 같은 작품을 보면, 도시에 창궐하던 전염병을 놓고 음악의 힘을 빌려 퇴치, 치유하는 흥미로운 내용이 펼쳐지기도 합니다. 마음 속에 근심과 불안이 가득할 때에도 우리는 차분히 마음을 가라앉혀주는 클래식 음악을 들으며 위안을 얻습니다. 


"한때 폴란드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곤 하던 게 김광균의 <추일서정>이었다(p79)." 그 시에서 시인은 "망명 정부가 발행한 지폐의 값없음"을 안타까운 어조로 짚습니다. 그런데 저자께서는 책 중에서, 폴란드가 배출한 가장 위대한 음악가, 그리고 아마도 프랑스에서 활동한 가장 대표적인 작곡가들 중 한 사람일 쇼팽을 거론합니다. 우리 역시 제국주의 세력에 의해 나라가 병탄당하고 자존을 훼손당한 뻐아픈 체험이 있기에 작곡가 쇼팽에 대해 더 각별히 공감할 수 있습니다. 책에서는 2002년작 영화 <피아니스트>도 회고되는데 공교롭게도 모 지상파 방송에서 이 영화를 며칠 전 방영해 주기도 했습니다. 


"인간의 영혼을 순식간에 꿰뚫고 흘러내리는 것은 이성이나 논리가 아니라 감성이다.(p85)" 저자는 이어 쇼팽 작품의 특성을 놓고 "반음계적 화성과 명암의 전이, 음을 지속시키는 페달 기법은, 다음 시기에 오는 인상파 화가들의 화풍과 직간접으로 연결된다"고 멋진 분석을 하십니다. 미를 추구하는 시대정신은 음악과 미술이라는 영역의 경계를 쉽게도 넘나들기 마련이죠. 


"베토벤의 음악은 헤겔의 철학이다. 그러나 동시에 베토벤의 음악은 헤겔의 철학보다 더 진실하다(p101)." 실제 두 사람은 비슷한 시기에 살았으며 둘 다 독일(아직 통일 국가를 이루지 못했던)을 문화적 정신적 배경으로 삼았으며 나폴레옹에 대한 태도의 변천도 서로 닮았습니다. 음악적 천재성의 본질에 대해서는, 나치에 대항했고 노벨상을 수상했던 작가 토마스 만의 장편 <파우스트 박사>가 주인공 아드리안 레버퀴인을 통해 심오한 분석을 시도했던 적 있습니다. 


저자는 p143에서 악기는 본디 인간의 신체를 요약한 것이라고 꿰뚫어 봅니다. 사람의 신체는 어떤 구멍에서 시작하여 다른 구멍으로 끝난다고 할 수 있으며, 이는 피리를 비롯한 관악기와 매우 비슷한 구조입니다. 또한 그는 이 구멍들을 통해, 명시적인 시각이건 아니면 진화 과정에서 퇴화한 시각이건 바깥 세상을 인간은 관측한다고까지 말합니다. 악기 역시, 인간의 내밀한 감정을 표현하는 수단이며 우리가 그 악기들이 내는 소리에 그토록 감명을 받곤 하는 건 과연 그들이 인간의 신체를 닮아 있기 때문입니다. 


슈베르트의 작품 <마왕>은 나쁜 기후를 뚫고 병든 아들을 구하려는 아버지의 사투를 묘사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지만 저자는 독특한 해석을 내립니다. 그러나 저자는 <타버린 비밀>이란 영화에서 이 작품을 배경음악으로 쓴 점에 주목하여, 애초부터 슈베르트는 이 작품을 한 소년의 성장통에 대한 격렬하고 처절한 묘사로 해석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어쩌면 세상의 모든 음악은, 우리의 감성과 이성을 일깨우고 종전보다 한 뼘 키를 키우는 목적으로 애초에 탄생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예술은 어떤 목적성을 떠나 독자로 존재하는 것이겠지만 말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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