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패배자들 - 인생의 성패를 떠나 최선을 다해 경주한 삶에 대하여
유필화 지음 / 흐름출판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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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미스토클레스는 페르시아를 물리친, 아테네 입장에서는 구국의 영웅이었으나 스파르타 측에서는 그가 눈의 가시였습니다. 민주정이었다 보니 아테네 내에서도 정파에 따라 여러 입장이 있었으며 정치적으로 수세에 몰린 후 도편추방(오스트라시즘을 통한 축출)을 당합니다. 그를 가장 증오했던 페르시아가 최종의 망명지가 될 줄은 누구도 몰랐을 터입니다. 바로 다음 장에 나온 악비처럼, 누명을 쓰고 고국의 소인배들에 의해 중상모략을 당한 후 배척당한 점이 매우 비슷합니다. 단 서로의 시대 차이는 1500년이 넘습니다. 


저자는 악비와 비스마르크의 차이를 논합니다만 애초에 둘의 포지션과 성향 차이가 너무 나기 때문에 논의를 할 이유가 그리 큰지 의문입니다. 오히려 비스마르크는 악비의 정적이었던 진회와 비교를 하는 편이 그나마 토픽이 생길 정도죠. 물론 진회는 나라를 결국 말아먹었고 비스마르크는 통일 제국의 초석을 놓은 인물이니 비교가 안 됩니다만. 악비는 게다가 천고의 충신이긴 했으나 평면적 캐릭터였고 비스마르크는 그 술책의 자유로운 구사가 현대의 정치인을 능가할 정도였습니다. 본래 중화문물을 숭상하는 지역에서 악비는 숭배, 추앙의 대상입니다만 다민족 융합을 방해한다는 점에서 현대 공산당이 배척한다고 하니 그저 어이가 없을 뿐입니다. 


트로츠키는 혁명가, 이론가로서 레닌에 버금가는 위상이었으나 정치에 능하지 못했습니다. 반면 스탈린은 그와 비교 대상 자체가 아니었으나 정적을 안심시키고 자신의 편으로 만든 후 이용가치가 떨어지면 숙청하기를 자유로이 행했습니다. 두뇌 자체도 트로츠키가 몇 레벨 위였으나 현실의 흐름에 밝고 사람 속을 잘 꿰뚫어보았던 스탈린을 당할 수 없었습니다. 


주원장은 생전에 모든 시스템을 만들어 놓았으나 그의 손자 건문제가 주체에게 쫓겨 났으므로 그 점에서는 실패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생은 창업 군주로서 눈부신 업적의 연속이었고 어떤 관점에서도 그를 실패자라 부르기에는 좀 어폐가 있지 않나 싶네요. 한 무제도 마찬가지입니다. 리지웨이 장군은 물론 말년에 자신이 원한 만큼, 혹은 능력만큼 커리어를 가꾸진 못했으나 패배자라고 규정할 수 있는지 솔직히 의문이 듭니다. 


고르바초프는 고령자 체르넨코의 뒤를 이어 젊은 나이에 권력을 잡았고 글라스노스트, 페레스트로이카 등을 표방하며 각광을 받았으나 1990년부터 서서히 힘이 빠지더니 공산당 수구파의 쿠데타로 인해 일차 실각했으며, 수구파는 다시 반대 진영 옐친 파의 역습에 의해 쓸려나갔습니다. 이 과정에서 이미 위신을 잃은 고르바초프는 다시 권좌에 복귀할 수 없었습니다. 위대했는지는 모르겠으나 패배자임은 확실하고, 아직도 그는 생존해 있는데 이 책에 등장한 인물 중 유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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