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셰프 서유구의 식초 이야기 임원경제지 전통음식 복원 및 현대화 시리즈 7
서유구 외 지음, 임원경제연구소 외 옮김 / 자연경실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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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시리즈 제8권 <식초 음식 이야기>와 마찬가지로 이 책 제7권도 문간공 서유구의 임원경제지 중 정조지 미료지류를 기본 출처로 삼고 정성들여 그 레시피를 현대 감각에 맞게 복원합니다. 저자에 따르면 유독 미료지류 편에는 식초와 그를 적용한 음식들이 자주 언급된다고 합니다. 저자의 현대식 복원뿐 아니라 이 책에는 문간공 저서 한문 원문이 상당 부분이 번역(직역)과 함께 소개되었으므로 이중삼중으로 우리 독자들에게 유익합니다. 앞으로도 계속 후속권이 발간되겠으나 여태 나온 여덟 권 중 두 권 분량이 오로지 식초와 그 응용에 대한 내용이니, 문간공 원저에서 식초 적용 발효음식의 비중이 얼마나 높았을지 이 분야 완전 문외한인 독자조차도 짐작이 가능합니다. 


식초도 여러 종류가 있습니다. 저자는 기본적으로 일제강점기, 이후 압축 성장기를 거치며 우리 조상들이 애써 가꾼 전통의 맛과 메뉴, 조리 방법이 많이 사라지거나 잊혀져서 고서들을 통해 이를 복원하자는 취지입니다. 이 중 식초에 초점을 맞추자면, 우리 현대 한국인들에게 익숙한 게 빙초산(헉) 희석 합성 식초, 양조 식초 정도이겠는데, 이 책에서 소개하는(<임원경제지> 등으로부터 복원한) 전통 식초는 발효 식품에 적용하는 본원의 기능에 훨씬 더 적합하고, 우리가 잊었던 맛을 다시 일깨운다는 점에서, 또 의외로 비용이 많이 들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도, 현대 한국인의 식단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끈다는 게 저자의 뜻 같습니다. 


저자는 예를 들어 이 책 p9 같은 곳에서 "우리 조상들은 다섯 가지 맛을 고루, 균형 있게 갖춘 식습관을 중히 여기고 이것이 올바른 정신 상태에도 큰 영향을 준다고 믿었다. 현재 우리가 이해 할 수 없는 사회 문제를 빈번히 겪는 건 극단의 단짠맵으로 치우친 식단 역시 그 원인의 일부"라고까지 주장합니다. 이견이 있을 수는 있으나 사람 사는 국면의 모든 것이 조화를 갖추어야 한다는 명제 자체는 지극히 타당합니다. 하물며 사람의 생명을 유지하는 식생활 습관의 경우야 더 말할 것도 없죠. 


p16의 프롤로그에서는 저자가 개인적 추억을 회고합니다. 어려서 어떤 친구가 "서커스 단원들 몸이 유연한 이유는 식초를 많이 먹어 뼈가 부드러운 덕분"이라고 한 것, 어머니께서 민물고기의 디스토마 균을 식초가 죽인다고 한 것(좀 뒤 p86의 식초 소독 기능에서 체계적으로 다시 설명됩니다), 고모분이 특히 강조한 식초의 효능 등을 회고합니다. 미디어에서 비블리오 패혈증, 디스토마의 위험성을 널리 강조하던 게 1980년대라고 들었는데 아마 이 부분 집필자께서는 그즈음 성장기를 보내신 건 아닐지 추측해 봅니다. 과거 식초는 그저 약방 감초처럼 어디나 끼는 부수 재료 정도였으나 지금은 아예 독자 병입으로 건강식품이 따로 나올 만큼 현대에 더 주목받습니다. 프롤로그 정독에 이어 이 책 본문까지를 다 읽고 나니 식초라는 게 아예 자신의 영역, 왕국 하나를 뚜렷이 구성하는 으뜸 식자재라는 생각도 듭니다. 8권까지를 읽으면 아마 많은 독자들이 오로지 식초의 관점에서 재구성한 음식의 세계 하나를 탐방한 느낌이 들 것입니다. 


p34 이하에는 문간공의 원저나 조선 후기 다른 실학 서적들의 관점을 일단 떠나 현대 식영학에서 식초가 갖는 의의, 성분, 종류 등이 자세히 설명됩니다. 전통 식초를 공부하기 전 우리 일반 독자들은 일단 이 부분부터 정독하여 앞으로 이어질 본문의 전통 식초 이야기를 어떻게 이해할지 먼저 기본을 갖출 수 있습니다. 


어느 문명권이라도 주류가 그 문화권의 특색에 맞게 발전되어 어떤 형태로든 널리 사랑 받는다는 사실도 과거 교통의 불편함과 정보 교류의 제한성을 생각하면 놀랍습니다. 인간이 그만큼 술을 좋아하는 습성이 있다는 거고 그 술로부터 몇 걸음 떨어지지 않은 식초 역시 다양한 방법으로 각 문명권에서 개발하여 음식에 쓰는 것도 놀랍다면 놀랍습니다. 책에서는 당화, 전분 등 식초의 제조 과정에서 반드시 거치는 과정과 성분에 대해 자세히 설명합니다. 이처럼 이론적 바탕이 잘 되어 있어야, 우리 독자들이 전통 레시피를 따라해 보는 체험을 넘어 창의적으로 식초(전통이든 현대식이든 간에)를 여러 음식에 어떻게 적용할지까지도 생각하는 결과에 이를 수 있습니다. 


풍미를 중시하는 프랑스, 이탈리아 등에서 자국의 풍토에 맞는 여러 식초를 개발한 것은 그렇다 쳐도, p70 이하를 보면 확실히 중국이 넓기는 넓은 나라이며 역사도 오래된 곳임을 새삼 확인하게 됩니다. 식초 하나도 이처럼 다양하게 발전했으며 그 지방색을 잘 반영합니다. p73에는 섬나라이기에 생선이 풍부하고 염장의 필요성이 특히 높았던 조건의 일본, 그 일본에서 자기네 식으로 발전시킨 토착 식초의 개성에 대해 설명합니다. 한국도 삼면이 바다인 지형인데 어째서 일본처럼 생선 요리가 넉넉하게 성행하지 못했는지 그 점이 아쉽긴 합니다. 세계 방방곡곡, 그 술이 다양한 만큼이나 식초도 다양하다는 결론도 다시 확인합니다. 그건 그렇고 식초 맛이 다 다른 이유를 생화학적으로 따지면 "초산균의 대사 차이(p87)"라고 요약 가능합니다. 


술도 과일, 곡물 등이 그 원료가 되듯 식초 제조도 마찬가지라서 pp. 93~98에는 여러 대표 곡물에 대한 설명이 니오는데 식초를 떠나서 곡물에 대한 간명한 설명으로 참 유익하다는 생각이었습니다. p99의 술지게미 설명도 여태 못 보던 측면을 이해시켜 주어서 좋았습니다. 8권에는 "온몸을 강타할 정도로 강렬한 신맛의 기억"이라는 표현이 있었는데 이 7권 p116에는 "마음의 잡념을 몰아내는 강렬한 신맛"이란 표현이 있습니다. 마음수양과 정진은 유가의 중요 지침이기도 하지만 불가에서도 매우 강조합니다. 이 7권이 각종 식초를 소개하는 내용이니만치 醋(초)라는 글자가 자주 나오며, 예컨대 p116 상단 한자어는 "선초방(仙醋方)"입니다(方은 그저 처방, 레시피라는 뜻이겠죠). 잘 생각해 보니 비록 도교가 (더 오래된) 불교의 영향을 받았다고는 하나 저 글자가 禪이 아니라 仙인 만큼 이 대목은 불교보다는 도교 관련으로 생각의 방향을 잡아야겠네요. 


p118에는 문간공 본인의 말씀이 간만에 인용됩니다. "선가에서는 식초를 화지(華池)라고 한다." 식자재에 대한 일종의 극찬이죠. 화지... 화지... 불교든 도교든 수행자가 아무것도 안 먹고 살 수는 없으므로 기본 대사를 유지하는 데 최소한의 섭식을 하되 그 정신을 맑고 정갈하게 지키는 여러 전통의 비방이 있었을 터입니다. 그런 분들이 고작(?) 식초를 두고서 그만큼이나 큰 의미를 부여했으니... 책에서는 아예 "수행"을 위한 식초를 따로 논할 정도입니다. 


한국 등 동아시아에서는 밀을 주식으로 삼지는 않으나 여튼 밀은 민중에 친숙한 작품입니다. 정조지 중 "소맥초방"으로부터 인용(복원)한 p142의 밀식초는 밀의 별칭을 따라 소맥초라고도 불리나 봅니다. 술을 좋아하건 안 좋아하건 간에 원 주정의 냄새까지가 달콤하게 느껴지는 이들이 그리 많을까요? 잘 모르겠습니다. 책에선 "밀식초의 달콤한 꽃 향기"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밀식초 담그면서 종래의 선입견이 완전히 깨지고 심지어 그 고유의 향기까지에 놀랐다는 거죠. 인공적 방법을 배제하고 그저 자연의 섭리를 좇아 순응하듯 만든 음식과 자재는 이처럼 그 과정부터가 건강하고 심지어 아름답기까지 합니다. 우리가 이런 오랜 섭리를 거역하고 온갖 첨가물로 범벅이 된 몹쓸 걸 먹으니까 몸에 탈이 나고 아토피 같은 게 생기는 겁니다.


앞서 p99의 술지게미 설명이 예사롭지 않다고 했었는데 p157에도 이 술지게미가 놀랍게 응용됩니다. 밀기울식초 만드는 법이 나오는데 역시 오른쪽 상단의 한자는 보리 맥(麥)변에 사내 부(夫)를 쓴 것인데 "밀기울 부"자 입니다(윈도 기본에서 지원하지 않아 이 독후감에 쓸 수 없네요). 저자분의 경우 이 밀기울 레시피는 그리 고유한 맛이 나지 않아 실패로 여기지만(책에서 드물게 봅니다), 대신 술지게미의 활용법 하나를 얻어 가신 듯합니다. 저는 이 파트 제목이 "돌아갈 수 없는 고향 같은 맛"이라고 해서 무슨 뜻인가 했었는데 다 읽고 나서 그 의도를 겨우 알았습니다^^


뷸가에서는 연꽃을 신성히 여깁니다. 어찌 보면 연은 그리 화려하고 존귀하게 보이지 않는데, 그 중에서 깊은 뜻을 애써 찾아내는 자세부터가 경건한 종교적 마음가짐이겠습니다. 정조지가 소개한 레시피 중에는 "연화초방"도 있는데 이 역시 복원 결과가 그리 확연히 드러나는 건 아닌가 봅니다(독자인 제 생각입니다). "연꽃을 닮은 사람만 이 식초에서 연꽃의 그것을 느낄 수 있다시니 말입니다. 어떤 분은 복원 결과가 그리 성공적이지 않을 때 이것을 환경 오염의 탓으로도 돌리신다고 합니다.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 


대추, 창포... 나아가 꿀, 엿으로 만드는 식초도 있습니다. 위 밀기울 식초에서 저자는 제조 도중 벌 한 마리가 빠지는 사고가 있었다고 하는데 주위에서는 이러면 못 먹는다고들 했으나 그렇지는 않다고 저자는 말씀합니다. p213에는 벌들과 벌집 사진이 나오며, 이곳뿐 아니라 이 시리즈 전체가 컬러 사진으로 가득하여 텍스트만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느낌과 정보를 독자에게 넉넉히 전달합니다. 식초는 두루 소독 기능을 가지지만 특히 p237의 녹두식초는 해독 기능까지 있습니다. 크림빵 하면 생각나는 흑임자, 그 흑임자로 만들어 두놔에도 좋다고 하는 식초도 나오네요. 선비의 첫째 덕목은 지조인데 그 지조를 상징하는 매화식초(p262)도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들이 먹는 것으로 만들어진다는 서양 격언도 있지만 조상들이 남긴 지혜의 집결 중 이처럼이나 식초 단일 품목(차라리 장르입니다만) 안에 엄청난 처방과 효험이 깃들 줄은 몰랐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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