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불구하고, 씁니다 - 어쩌면 글을 쓰고 싶은 당신이 가장 궁금해할 현실작가 이야기
고혜원.민선이.지미준 외 지음 / 포춘쿠키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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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자의 고통이란 우리들 일반인이 전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라고 들었습니다. 매번 새로운 걸 만들어내고, 게다가 기존의 문법에 어긋나는 바는 없는지도 따로 검토해야 하며, 독자나 팬들을 실망시키지도 않아야 하니 얼마나 힘든 일이겠습니까. 그런 작가분들도 때로는 약한 모습 솔직한 마음 다 드러내며 우리 독자들과 진솔하게 소통하고 싶을 때가 있을 것입니다. 


무대에서 그 많은 대사를 외우고 멋진 연기까지 (수십 명에서 백여명의 관객이 지켜보는 가운데) 해 내어야 하는 배우들도 힘들고, 연출자도 정말 어려운 직분이겠지만, 희곡을 쓰는 작가 역시 뼈를 깎는 고통스러운 역할이 아닐 수 없습니다. "나(민선이)는 지금도 무대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어떻게 글을 써야 공연이 가능한지 잘 모른다.(p33)" 겸손의 말씀이실 터이며, 그만큼 희곡 쓰는 일이 자신의 역할에 오롯이 몰입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말로 들립니다. 


"문제는, 이퍼브(epub)라는 포맷을 만드는 코딩프로그램을 어떻게 다루느냐는 것이었다.(p60)" ,확실히 요즘 세살은 글재주가 설령 아무리 좋고 번역 실력이 탁월하다 해도 그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지미준 작가님처럼 인터넷 1세대답게 HTML이나 다른 도구를 능숙히 다루는 면이 있어야 두각을 나타내거나 더 큰 쓸모(...)를 증명할 수 있을 듯합니다. 다른 분이 쓴 글로, 책 뒤 p120에 보면 "생계형 문어발"이란 말도 나옵니다. "기회란 것은 정말 존재한다." 아무리 현재가 힘들어도, 이 말씀처럼 주어진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부지런히 재주를 연마하다 보면 언젠가는 그의 날이 올 것입니다. 


"같은 1%라도(=가능성이 희박하더라도) 분모가 큰 1%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p90)" 시나리오 작가 고혜원님의 말입니다. 신춘문예(한경)에도 당선되고 여러 기회를 모색하던 그는 이 책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 여럿을 말합니다. "어디에 소속되지 못하고 붕 뜨는 것" 저는 이 글을 읽고 이런 식으로 "작가 계약"을 한다는 게 있는 줄 처음 알았습니다. 영특한 돌고래를 좋아한다며 오늘도 기회를 잡으려고 애 쓰는 여러 예비 작가들에게도 격려의 말을 전합니다. 


"쟤 정말 열심히 하는구나." 우리 주변에는 여전히, 무수히 많은 무명작가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언젠가 유명작가가 되려는 꿈에 고달픈 오늘을 견딜 것입니다. "영원히 무명작가로 남은 채 생을 마감하면 어떡하지?" 그래도 유경 작가는 "존버는 승리한다(p112)"는 믿음을 버리지 않습니다. 꼭 작가가 아니라 해도, 누구나 좀 이런 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진짜 하고 싶은 건 영화였습니다.(p136)" "누구에게나 저마다의 스무 고개가 있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스무고개는 수수께끼를 가리킨다기보다, 인생의 여러 고비, 혹은 선택을 해야 하는 순간 등을 가리키는 것 같습니다. 박상영 작가는 제법 긴 이 글에서 "그 순간들"을 회고합니다. 누구에게나 이런 순간들, 잊혀지지 않는 기로가 되었던 순간들이 있을 겁니다. "이들도 사람이고 자사 제품을 이용하는 소비자이니 포용해야 한다.(p149)" 광고 작가는 생각에 잘 안 맞아도 받아들여야 할 것이 많습니다. 


"웹툰 글작가라는 소개를 듣자마자 보통 감탄과 함께 네이버인지 카카오페이지인지 물어온다. (대)기업에 다닌다고 하면 삼성이냐고 묻는 것과 같다.(p169)" 수익이 얼마인지 묻고 기안84 같은 사람을 아느냐고 물은 뒤 자신이 원하는 대답이 안 들리면 "경이롭다는 듯 바라보는 시선은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그럼 그렇지. 그 정도쯤 되는 사람이 여기 왜 있겠어'라 말하고 있다." 모든 직업은 그 나름의 고충이 있고, 어떤 직업은 마땅히 넉넉한 보수도 못 주면서 그 나름의 곤욕과 고충만 부가로 안깁니다. "이야기에는 각각의 옷이 있다." 많은 직간접 체험을 얻고, 그로부터 얻은 감흥을 아름답게 간직한 이가 얻은 깨달음일 수도 있겠습니다. 


"누군가의 죽음이 작가를 결심케 했다(p211)." 앞에서 아노 작가는 "상상이 내게 한 짓"을 얘기했지만 백민규 작가는 병으로 돌아가신 할머니의 장례식을 작가가 된 계기로 떠올립니다. 이 글에서도 계약 작가의 일이 자세히 언급되는데 세번이나 도전하고도 결국 실패한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작가가 되려는 분들은 현직 작가가 털어놓는 이런 고충과 어려움이 담긴 이야기를 읽고 많은 생각을 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앞에서 아노 작가는 "현실 작가에게 권선징악은 없다"고도 했는데, 작가가 특별히 더 그런 직업인지는 모르겠지만 사실 어느 직업, 어느 영역에서도 권선징악 같은 건 없습니다. 더 약고 더 악랄한 이가 과실을 챙겨 가는 게 흔할 뿐이죠.


"대학원에서는 작가의 작품을 써야 한다면, 회사에서는 관객에게 보일 작품을 써야 한다.(p243)" 이 역시 모든 작업, 직업에 고루 적용되는 이치입니다. 사회는 대중에게 팔아먹을 상품을 만들어내는 회사, 회사로 가득합니다. 안 팔리는 상품만 만드는 회사는 망할 수밖에 없고 쓸만한 아이디어를 못 안출하는 직원은 짤릴 수밖에 없죠. 정다워 작가는 "(언어로부터) 도피하듯 떠난(p252)" 베트남에서 사이공이나 호치민(아 참, 같은 곳이죠 ㅎㅎ)을 미아라는 여성, 같은 또래라 연대감이 더 컸을 미아의 안내를 받으며 여러 체험을 합니다. 회전율이 높던 어느 가게, 맛있는 바인쎄오... 특정 순간에 내 미뢰를 잠시 자극하고 지나간 어느 짧은 맛도 알고 보면 다 나의 무엇을 형성하는 귀한 손님이자 선물이죠. 


"그전에 누가 뭐라해도 나는 내 소설이 재미있었다.(p281)" 이런 생각이 자기 도취에 그치는 게 아니라, "누구나 내 책을 쓰고 가질 수 있는 세상"을 꿈꾸는 데까지 가면 정말 생산적입니다. 어떻게 보면 작가는 특별한 직업, 특별한 재능을 가진 사람만 될 수 있는 게 아니라, 누구나 자기만의 이야기를 펼쳐 내고 공유할 수 있게 돕는 직업인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작가분들이 이처럼 솔직한 속내를 털어놓은 책은 재미있고 유익하고 고맙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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