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떠난 뒤 맑음 - 하
에쿠니 가오리 지음, 신유희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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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그럼 그 아가씨의....?"

"네. 사촌 동생이에요." (p87)


모르는 사람이 봐도 어떤 느낌은 오는 것 같습니다. 더군다나 동아시아인이니 말입니다.


비록 소설이지만 아직 나이 어린, 더군다나 여성 두 명에서 미국 땅을 이처럼 정처없이(?) 돌아다닌다는 게 독지 입장에서 위험천만하다는 느낌, 그리고 조마조마한 마음을 거둘 수 없습니다. 에쿠니 가오리 소설인데도 이건 무슨 마치 스릴러를 읽는 것만 같습니다. 물론 큰 사고 같은 게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정도는 압니다. 하지만 독자가 걱정되는 건 주인공 그녀들의 "감정, 정서, 영혼, 마음" 같은 것입니다.


방금 전 올림픽 경기를 보면서 어떤 이가 "사람 몸은 아주 강인하여 위기에서도 잘 살아남는 듯하지만,죽으려면 한순간"이라고 하는 걸 들었습니다. 몸뿐 아니라 마음, 영혼도 마찬가지입니다. 태어나면서부터 악한 이가 어디 있겠습니까? 살아가면서 나쁜 본을 보게 되고, 혹은 나쁜 사람한테 큰 상처를 입고, 그 자신도 똑같은 사람으로 변하는 것입니다. 여성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여성 특유의 선한 마음으로 제법 커서까지 좋은 심성을 간직하지만, 우연히 나쁜 인간을 만나 한순간에 악귀로 변하곤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룻밤 사이에 이렇게 쌓이는 건가?(p91)"


이츠카가 이렇게 말할 때는 약간 남자 같아서 당혹스럽기도 합니다. 아니면, 이츠카는 한 번도 열도의 북국(?)을 못 가 봐서 그 엄청난 적설량과 추위를 경험 못 해 본 걸까요? 


맡은 일이 바빠서인지, 아니면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브라이언은 우리 선입견과는 달리 말썽을 부리거나 그럴 것 같은 손님을 "Sir, ma'am" 호칭 등을 써 가며 부랴부랴 쫓아냅니다. 말은 정중하게 행동은 과감하게! ㅋ 어떻게 보면 브라이언 다운 행동이고 말씨라서 웃음이 지어집니다. 이런 생생한 인물 묘사는 아마도 작가 에쿠니 상이 실제로 미국에서 겪어 본 바 누군가를 모델로 삼아서가 아니겠습니까? 모르긴 해도 작가가 이 모델(...)을 실제로 보았을 때의 느낌이 지면을 통해 전해지는 것만 같습니다.


"헤이, 당신들이 일본에서 온 손님이로군. 리틀록을 즐겨요.(p230)"


"리틀록에 온 것을 환영한다" 같은 의례적인 인사말보다 "즐기라"고 하는 말투에 눈길이 갑니다. 리틀록은 한때 인종차별 관련 큰 사고가 일어난 곳이기도 하고, 가장 진보 성향의 대통령이었던 빌 클린턴의 출생지이기도 하죠. 


p278에서 오렌지남은 리틀록이 어땠냐고 묻습니다. 이때 레이나의 대답이 재미있습니다 ."최고였어요." 과거형을 썼다는 게 씁쓸한 기분이라고 하네요. 어딘가를 곧 떠나야 할 때는 그곳이 어디라도 아쉽습니다. 


p303에는 재미있는 묘사가 있습니다. 남자아이가 호텔로 데려왔는데 살찐 여성이 머리를 묶은 고무줄이 헬로키티라는 것입니다! 뭐 글로벌 캐릭터이니 그러려니 하면 되는데 구태여 놀라는 이츠카가 재미있습니다. 


p334에서 이츠카는 다시 과거형을 씁니다. "있었지"라고요. 이제 이 긴 여정이 서서히 마무리되어간다는 뜻도 되겠습니다.


아이올라이트를 손에 쥐고 둘은 "돌아옵니다". 길다면 물론 길었지만, 사실 그리 길지도 않은 여정이었습니다. 그래도 우리 독자들은 함께 지치고, 함께 뿌듯해하고, 함께 맛있었고, 함께 눈물 지었으며, 또 함께 많은 친구들(나이를 떠나)을 사귀었습니다. 다시 제목을 봅니다. "집 떠난 뒤 맑음". 내 마음의 날씨는 과연 어떨까요? 여태 안 겪어 본 많은 사람, 많은 고장, 또 많은 이별을 겪은 후에 말입니다. 여행은 확실히 많은 사람들의 마음의 키를 키워 주는 듯합니다. 눈으로 그들의 여행을 따라가보기만 한 경우에도 어쩌면.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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