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의 태양
마윤제 지음 / 특별한서재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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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인 저는 개인적으로 동해 하면 뭔가 약간 흥겨우면서도 상업적인, 금단의 무엇인가가 자리한 고장으로 여겨집니다. 아마도 고교 수학 여행 당시, 친구들이 그곳에 대해 퍼뜨린("몇 발짝만 나가면 무엇인가가 있는") 잡담 속의 불측한 이미지 때문인 듯합니다. 고교생 아이들이 세상에 대해 뭘 알까 싶고, 물론 그런 이미지는 실상과는 거의 무관한, 철없는 아이들이 제 멋대로 지어낸 허상과 과장에 불과합니다. 이성적으로는 이리 여기고 한 점의 의혹도 없는데, 사람의 감성이란 또 별개의 영역으로 자라는 듯합니다. 막상 이 장편 소설을 펴 보니 또 그때의 이미지가 작중 주인공들의 사연과 얽혀 묘한 감성을 불러일으키니 말입니다. 더군다나 이 소설은 다섯 청춘 남녀의 사연을 담았습니다. 그러니 예전 저의 수학 여행 당시, (아마 저보다는 한참 나이가 많았겠지만 여튼) 비슷한 또래의 시간을 보냈을 젊은 영혼들의 사연이라는 게 더 궁금해지는 거죠. 


요즘은 국제협약이라는 게 있어서 함부로 고래잡이를 할 수 없습니다(그러나 일본이 최근 그 협약을 깨려는 움직임을 보이죠..). 강주는 물론 가상의 도시입니다만 1980년대 고래잡이라면 아마 나이 좀 드신 분들이라면 대번에 어느어느 고장이 떠오를 것입니다. 


"사람의 성장은 어느 한 사건으로만 이뤄지는 게 아니다." 어촌에는 언제나, 고기잡이(물론 엄청 큰 포유동물인 고래이지만)를 나갔다가 돌아오지 못한 아버지의 사연이 항상 있습니다. 고려, 조선 이래 우리 나라는 풍족하게 농업을 일구며 산 적이 없습니다. 인구는 많지만 산지 위주의 지형 때문에 산물이 넉넉하지를 못했죠. 삼면이 바다인데 왜 어업에 다들 종사하지 않았을까? 답은 이처럼, 농사에 비해 어업이라는 게 예측 불허의 바다라는 터전에서 일을 해야 하는 위험이 따릅니다. 또 어업권이라는 게 텃세가 없지 않죠.


드라마 <스파르타쿠스>를 보면 빚을 지고 자진하여 검투사 노릇을 하는 가장이 있습니다. 돈을 보내 주기는 하나 너무 적은 나머지 그 부인은 다른 일을 하다 외간남자에게 몸을 빼앗기고 아이를 배는 사고를 당합니다. 어디까지나 사고였으며 외도 같은 건 아니었습니다만, 남편 입장에서 가슴이 찢어지는 건 마찬가지입니다. 어린 동찬은 살인범 강태호에게 어머니를 "빼앗기지만" 달리 대향할 방법이 없습니다. 여튼 이런 과정을 통해 그는 남자로서 성장합니다. 그 영혼에 새겨지는 생채기가 얼마나 깊고 독한 것인가와는 무관하게 말입니다. 


시골 어촌이라고 뛰어난 두뇌가 없겠습니까? 오상윤이가 바로 그런 아이이며, 오히려 큰 인물은 이런 나쁜 환경에서 더 독하게 마음을 먹고 성취 동기를 키웁니다. 친구이기는 하지만 처한 환경이 다 다른데 생각도 달리 가질 수밖에 없고, 얼굴이 엉망이 된 동찬은 상윤이한테 속 편한 소리를 듣습니다. "폭력적인 운동은 문명 세계에서 다 퇴출시켜야 해.(p118)" 그러면서 하는 말이 스포츠도 바둑이나 체스 처럼 두뇌를 쓰는 거만 남겨야 한다는 겁니다. 이거는 시대 배경을 좀 살펴야 합니다. 1980년대에 최고 인기 스포츠는 격투기 관련 종목들이었습니다. 복싱 세계 타이틀전이 열리면 지상파에서 생중계를 했으며 승자는 그날로 국민 영웅이 되고 돈방석에 앉았죠. 물론 바둑도 조훈현, 서봉수, 이창호 같은 스타가 있었으나 아직 올림픽, 아시안게임 등 국제대회 종목은 아니었고(응씨배 등 거액의 상금이 걸린 단일 대회는 있었다고 하죠)... 근데 과연 상윤이 같은 생각을 하는 이들이 많았는지 (상윤이 지금이라면 노년의 연령에 접어들었을) 한국에서 지금 복싱의 인기는 안타깝게도 완전 바닥입니다.


"9월 동진호는 세 마리의 밍크고래를 포획했다.(p210)" 이 대목은 독자 입장에서 마음이 뿌듯해집니다. 마치 내가 어떤 수확을 거둔 것처럼요. 허먼 멜빌의 <모비 딕>을 보면 에이허브 선장의 그 집요함에 전율이 느껴지듯, 동찬도 무슨 품은 한이 그리 큰지 내뱉는 말을 보면 살벌합니다. 영미문학의 진가가 그 복잡하기 짝이 없는 뱃사람 어휘를 풍부하게 구사하는 묘미에 있다고 하듯, 이 장편에도 같은 한국 사람인 우리가 들어본 적도 없는 희한한 말이 다 나옵니다. 무대가 바다라는 게 실감납니다. 


"나와 붙어 보자. 돼지xx, 자신 없냐?"


무모합니다. 아무리 그래도 류재열은 강한 상대입니다. 이제 "아버지" 없이, 동찬은 그 거친 주먹을 견딜 수 있을까요? 류재열은 그저 개인이 아닙니다. 강주라는 거친 도시, 비열한 거리를 상징하는 주먹입니다. 


사람은 결국 혼자 살아야 합니다. 부모님도 결국은 내 곁을 떠납니다. 어른이 되면 배우자 한 사람을 곁에 두고 자녀도 두어야 하며, 그때부터 헤쳐나가는 삶에는 저런 류재열이 계속해서 밀려들어옵니다. 삶은 누가 대신 싸워 주지 않습니다. 거친 바다도 바다이지만, 이곳 강주 역시 끝까지 내 편이 되어 줄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곁의 윤주를 지켜 주기 위해서라도 나는 강해져야 합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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