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안아준다는 것 - 말 못 하고 혼자 감당해야 할 때 힘이 되는 그림책 심리상담
김영아 지음, 달콩(서은숙) 그림 / 마음책방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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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살면서 누구나 크건 작건 상처를 받습니다. 이 상처는 어떤 방식으로든 치유가 되어야 합니다. 누군가가 내 상처를 좀 힐링해 줬으면 하는 마음은 누구에게나 듭니다. 하지만 그런 도움은 쉽게, 누구에게서나 받기가 매우 힘듭니다.

"우리의 마음 속에는 저마다 지울 수 없는 한 아이가 살고 있다. 귄터 그라스의 <양철북>에 나오는 오스카처럼 성장을 멈추어 버린 아이, 그래서 어린아이의 시선과 두려움과 공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사는 아이.(p28)"

저자는 한 내담자의 사연으로부터 다음과 같은 딜레마를 만납니다.

- 사랑해서 결혼하는 게 맞는가, 아니면 결혼 후에 사랑을 키워 가는 것이 맞는가?

여튼 저자와 그 내담자분이 얻은 답은 후자에 더 가까운 것 같습니다. 어렸을 때 내 부모님이 내게 준 사랑은 결코 찌질하지 않다, 그 이후에 겪은 사랑과 체험 또한 결코 찌질한 게 아니었다, 이 정도가 두 분이 얻은 꽤 큰 깨달음의 요지였겠습니다. 사실 우리가 받은 사랑, 또 지금까지 겪고 느껴 온 체험 등은 모두 찌질할 수 있습니다. 다만 그걸 내심으로 찌질하다고 여길 때, 그 체험이나 당사자의 그릇, 인간됨은 의문의 여지 없이 정말로 찌질한 게 되어 버리는 듯합니다. 자기 기만, 과장, 허위에 빠지자는 게 아니라, 얕은 체험으로부터도 깊은 감성을 뽑아내는 게 내 생을 진정 아끼고 사랑하는 길이란 뜻입니다.

p49에는 이런 말이 나옵니다.
"나를 가로막을 수 있는 사람이 오직 나뿐이듯이, 나를 사랑하고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는 사람도 오직 나뿐이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라 열정순이다.(p67)"

저자의 말씀대로, 열정을 가지고 일하는 사람은 그게 무슨 일이든 가치있고 아름답게 만드는 듯합니다. 일의 성질이 원래 그러하여서가 아니라, 그 일에 종사하는 이가 일의 천하고 귀함을 그 투입하는 열정에 의해 결정하는 것이 아닐지요.

"내 삶이 내 삶이 아니라 누군가가 세워놓고 닦아 놓은 목표를 따라 길을 내놓은 데로 가기만 하면 되니 일정 정도 편해서 타협해 버린 것이다. 이런 세대들이 사회 곳곳에서 주체가 되어 생활하며, 자기 표상과 대상 표상이 어그러진 채 심각한 징후들을 보여 주고 있다.(p98)"

어찌보면 무서운 일입니다. 사람은 어느 정도 나이를 먹으면 자신에게나 타인에게나 책임을 지고 주인의식을 가지며 살아야 합니다. 일정 연령이 넘으면 자연스럽게 리더가 되고 자신뿐 아니라 타인의 진로와 역량까지도 이끌어야 하는데, 그러질 못하고 일생 내내 성장을 거부한 타율적, 유아적 마인드에 머문 거죠. 이런 사람들이 알아서 조직으로부터 도태되기라도 하면 그나마 다행인데, 그렇지를 못하니 조직과 공동체 전체가 와해의 위기에 놓인 것입니다.

누군가는 말했습니다. 도전을 해서 실패하는 게 부끄러운 게 아니라, 실패가 두려워서 도전 자체를 않는 게 진정 부끄러운 것이라고요. 저자는 말합니다. "살면서 가장 중요한 건 나 자신을 믿는 일이다. 우리가 정말 두려워해야 할 건 실패가 아니라 포기다.(p101)"

안타까운 일이지만 군대에서는 관심사병이라는 이들이 있습니다. 군이라는 조직은 철의 규율로 움직입니다. 한국의 남성들은 신체에 특별한 이상이 없다면 일정 기간 동안 병역의 의무를 마쳐야만 합니다. 그래서 군의 체질에 적합하건 그렇지 않건 의무적으로 징집이 되는데, 절대 다수가 군 질서에 잘 적응하지만 간혹 그렇지 못한 이들이 있습니다. 아마 저자께서는 이런 관심사병들과 상담을 하셨나 봅니다. 정말 뜻 깊고, 또 감사한 일을 해 주셨다고 생각되네요.

한번 관심사병으로 낙인 찍힌 그들의 낙담과 열패감이란 이루말할 수 없습니다. 대부분은 입대 전에도 일정 부분 문제를 안고 들어온 이들입니다만, 군 생활 중 다른 전우들처럼 무난한 적응을 이루지 못하고 "불편한 관심의 대상"으로 찍혔다는 자체가 더 큰 수치심을 부르는 것입니다. "교수님, 가시고 나면, 결국 우리에게 변한 게 뭐가 있나요?" 가슴 아픈 질문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들에게 집단 상담 중 동병상련의 감정이 일게 한 것은 큰 위안이 되었다고 합니다. 서로가 서로를 부둥켜안고 울었습니다. 자신의 상처가 자신만의 상처가 아님을 비로소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파트를 읽으면서 관심사병 상담이라는 난도 높은 코스를 선뜻 맡아 이끌어 주신 것만으로도 고마운데, 일정 부분 성과까지 내신 점이 더 놀라웠습니다. 사실 많은 경우 상담은 그저 들어 주는 데서 의의를 찾고 끝나는 게 보통이며, 관심 사병들의 경우는 답이 없는 게 보통입니다. 그런데도 저자께서는 놀라운 통찰력을 발휘하여, 저마다의 이유로 관심사병이 되었지만 그들 사이에는 일정 부분 공통점이 있다는 걸 그들 스스로 깨닫게 했습니다. 내가 나 혼자가 아니라 같은 아픔을 공유하는 "동지"가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든든한 마음을 갖게 했겠습니까. 인생의 같은 아픔을 공유할 뿐 아니라 비로소 "전우"까지도 곁에 생겼으니 말입니다.

이 책은 치유심리학자 김영아 박사님이 저술했지만 일러스트레이터 달콩님도 기여한 책입니다. 김박사님은 여러 내담자들에게 적실한 상담을 해 주실 뿐 아니라, 각각의 치유에 적합한 다양한 "그림책"들을 추천해 주기도 합니다. 이 책 중에서도 여러 번 그런 책들이 언급됩니다. 따라서 독자들도 혹시 내가 여기 해당된다 싶은 케이스가 있으면, 그 파트에서 언급된 그림책도 꼭 찾아 읽어 봤으면 좋겠다 싶었습니다.

어떤 가족에게는, 남에게 보이고 싶지 않고 창피스럽고, out of the league다 싶은 낙오 구성원이 있기도 합니다. 이런 사람을 보통 가족들은 closet 안에다 가둬 둡니다. 그 사람 역시 "나는 부끄러운 사람"이란 자책 끝에 closet 안에 결국 자발적으로 갇힙니다.  더 이상 이럴 필요가 없다는 자각 후에 스스로 골방에서 나오는 게 coming out of the closet이죠. p170에 소개되는 <쿵쿵이와 나>에서 쿵쿵이는 나의 단짝 친구라 소개되지만, 사실은 남에게 들키고 싶지 않은 나의 숨겨진 부분입니다. 이런 점까지 과감하게 남들에게 드러내고, 더 이상 나의 일정한 부분을 부끄러워하지 않아야 비로소 그는 일에 열정을 제대로 쏟을 수 있고, 당당히 행복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나를 제발 그냥 좀 놔두시오."

파트릭 쥐스킨트의 소설에서 좀머 씨라는 주인공이 입버릇처럼 내뱉곤 하던 대사입니다. 특히 학업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던 수험생들에게 큰 인기를 끌기도 했죠. 생(生)에서 너무 한 장면 한 장면을 집착 말고, 그저 관객의 입장에서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할 줄도 알아야 한다(p251)는 게 저자의 말씀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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