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성철 2 - 너희가 세상에 온 도리를 알겠느냐
백금남 지음 / 마음서재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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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 p151에 보면 대중공사에서 통과된 결의라면 조실이나 주지도 어찌할 수 없다는 말이 나옵니다. 극단적인 경우지만 "절을 팔아먹는 결의"라고 해도 마찬가지라고 하는데, 이 점을 들어 절의 살림살이는 철저히 민주적이라는 말까지 나옵니다. 


 

성철 스님은 철저한 수도의 자세로 유명합니다. 2권 p122과 p38에 보면, 그 공력 높은 춘성 스님(욕쟁이 스님)도 성철의 장좌불와를 따라하다가 치아가 다 빠졌다는 말이 나옵니다. 성철 스님도 노년(스님에게는 나이를 안 따지지만)에 신장이 나빠져 큰 고생을 했지만 여튼 그토록 혹독한 수행을 하고도 정정했기에 그런 명성을 얻었죠. 건강이 나빠지고 안 나빠지고가 문제가 아니라 어지간히 독한 마음가짐(혹은 득도를 향한 감연한 심지)이 아니고서는 수행을 시작한다는 자체가 어렵습니다. 장좌불와에 대해 약간의 의심을 품은 어느 학승의 질문에 대해 혼쭐을 내는 성철의 모습이 p171에 나옵니다. 

 

이런 성철도 젊었을 적 간월암에서 힘든 수행 끝에 결국 포기하자 만공 스님으로부터 호된 꾸지람을 들었습니다. 이런 일이 있었으나, 세월이 많이 지나고 "괴각쟁이"에 대한 명성을 익히 알던 만공이 정혜사로 찾아오자 성철도 급히 그곳을 찾고 반갑게 해후합니다. 여기서 성철은 청담 스님을 처음 만나게 되죠. 


 

p27에 다시 탄허 스님이 나옵니다. 성철 스님의 스승 동산은 탄허 스님을 두고 "선(禪)의 무리가 아니다"고까지 했지만 여전히 성철은 그를 경외했습니다. 1940년 여름, 그의 나이 스물 아홉 되던 해에 드디어 성철은 득도합니다. 소설에서는 이 대목에서 잠시 그가 신동, 책벌레 소리를 듣던 어린 시절로 돌아갑니다. 

 

성철 스님이 득도한 후 명성이 높아지자 속세에서 그의 처였던 이덕명이 찾아옵니다. 이미 성철의 모친 마산댁 강씨도 출가하여 법문에 귀의했지만 덕명은 십 년을 더 기다렸습니다. 그러던 차에 득도한 스님(남편)의 명성이 들리자 작정을 하고 찾아온 것입니다. 

 

"이 인간아, 나 이덕명이다."

 

성철은 당연히 호통을 쳐서 쫓았고 부인은 "잘 먹고 잘 살아라"며 절을 나섭니다. 명문가의 여식이고 선비 가문의 교양을 두루 쌓아 만석꾼의 집에 시집 온 그녀로서는 기가 찼을 터입니다. 후반부 p205 이하에서 출가하여 일휴라는 법명을 받은 그녀가 꿈에서 싯다르타를 만나는 장면이 있으며, p238에서는 열반에 듭니다. 천하의 성철 스님도 속세의 부인이 세상을 떴다는 소식을 듣자 일시 평정심을 잃습니다. 앞서 모친이 찾아왔는데도 만나지 않았다는 말을 듣자 승려들도 "스님이기 전에 인간이 아닌가?"라며 비판했다는 대목이 있었죠. 그러나 큰스님의 경지를 어찌 짐작하겠습니까.


 

p97에 우파사나라는 여인의 불교 설화가 나옵니다. 이 이름은 1권의 p85에도 언급된 적 있었습니다. 그때는 청년 이영주가 그를 두고 무슨 뜻인지 몰라 고개를 갸웃했으나, 이제는 훤히 도통하여 그 의미를 두루 설법하는 경지가 되었습니다. 1권에서 "석가모니야, 아들 말고 나를 잡아가라!"며 아들을 향해 화를 내고 아내의 눈을 멀게 한 부친 이상언은 2권 p109에서 출가한 아들의 모습이 의젓하더라면서 마음을 풀고 불교를 존중하게 됩니다.

 

성철 스님은 종래 대승의 경전이 중국을 거쳐 한국에 들어오며 오역이 많아 가르침이 그르쳐진 바 크다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또 대승의 경전이 실은 부처님의 육성은 아니라고도 했죠. 그러나 결국 불심(佛心)을 담았으니 문제될 게 없다고도 했는데, 이 발언이 큰 논란을 빚었습니다. 큰스님의 호방한 말씀이야 어찌보면 달과 손가락을 분별하자는 취지로 선해할 수 있는데, 속 좁은 이들의 관점에서는 또 그렇지 않았나 봅니다. 

 

"조사가 오면 조사를 죽이고, 부처가 오면 부처를 죽여야 하지 않겠습니까?(p152)"

 

"정화에 매진했던 동산 스님은 열반하는 날까지 도량을 청소했다고 하니...(p140)" 맥락이 좀 다르긴 하나 1권의 p213에는 "도량을 쓸고 또 쓰는" 주리반특의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성철 스님은 사소하고 번잡한 예를 극히 꺼렸습니다. 본인 자신이 왜정에 대한 거부감이 극도로 컸었고 스승들도 항일에 한 발 담근 분들이기도 했는데... 어느날 일본 승려들이 한국의 고승으로 이름 난 성철을 찾아와 다례를 선보이자 성철은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거친 매너로 차를 마셔 버립니다. 해방 후 대처 등 왜습을 일소하려는 움직임에 성철 스님도 한 몫을 보탭니다. 

 

가난한 사람들을 돕되 결코 그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받거나 굴욕을 느끼지 말게 하라는 동산 스님의 가르침이 1권 후반부에 나왔죠. 성철도 득도 후 많은 부자들의 방문, 시주를 받았으나 세속의 권력, 부 등에 초연한 대스님 답게 그들을 골탕도 먹여 가며 가난한 사람들의 딱한 형편에 눈도 돌리게 만듭니다. 

 

속세의 현실에 대해 결코 외면하지 않은 스님이, 예를 들어 박정희나 전두환 같은 군부 출신 지도자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대처했을까요? 박 대통령은 생전 그를 여러 차례 만나려 했고 한번은 그의 장모가 찾아온 적도 있으나 성철은 매번 거절했다고 합니다.

 

"출가한 승은 부모와 국왕을 예(禮)하지 않는 법이다.(p184)"

 

성철 스님 하면 "삼천배"로 유명합니다. 삼천배를 한 사람이라야 자신을 만날 자격이 있다는 겁니다. 법정은 이를 두고 "굴신 운동"이라 비판했으나 성철의 의도는 그런 게 아니었습니다. 삼천 번 절을 하면 당연히 기진맥진이 됩니다. 그 와중에, 수행하여 득도한 여러 고승이라든가 석가모니의 고행에 대해 조금이라도, 정말 조금이라도 실감해 보게 되죠. 내 안에 있는 부처님을 만나 보라는 게 성철의 의도였지 자신을 높이고자 하는 게 당연히 아니었습니다.

 

따님인 수경은 할아버지(이상언)로부터 각별히 신경 써서 교육도 받은 신여성이었건만 기어이 출가하여 불필 스님이 됩니다. p243에는 "와 개한테는 불성이 없노?"라는 부친, 아니 큰스님의 질문에 미소만 짓습니다. 마치 마하가섭의 심심상인 고사를 떠올리게 하는 장면이죠. 개한테 불성이 있고 없고는 1권의 p92에 "구자무불성" 화두가 언급되었더랬습니다. 스님의 청년 시절이었죠. 

 

이 땅에 조계종을 처음 만든 지눌이 무려 700년 전에 "돈오점수"를 제창했건만 성철은 이를 수정하여 "돈오돈수"를 내세웠습니다. 이 역시 수백 년 종조의 가르침을 뒤엎는다 하여 많은 비판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글자 자구에 집착하면 이는 이미 교승(敎僧)이요 소승(小乘)에 지나지 않는다며 대범하게 대처한 자세 역시 우리 모두가 잘 아는 바입니다.

 

"승은 잘나서는 안된다. 알음알이의 사냥꾼이 되어야 한다. 나무꾼도 돌아보지 않아야 한다.(p248)"

 

"석가는 원래 큰 도적이요, 달마는 작은 도적이다."

 

"사탄이여 어서 오십시오. 나는 당신을 존경하며 예배합니다."

 

이 법어는 많은 오해를 받았으나 법어 뒤에 나오듯 "악마와 성인을 구별 않고 다 같이 섬긴다"는 불교의 본래 정신에 조금도 어그러지지 않는 말입니다. p249에는 못된 남편에게 학대 받은 아내더러 오히려 네 남편에게 가 사과를 하라고 권합니다. "금마도 인간이면 뭐 느끼는 기 안 있겠나." 기가 막혔지만 스님의 가르침이라서 여인은 시킨 그대로 합니다. 남편은 처음에 너무 학대를 많이 받아 아내가 미친 줄 알았으나 전후 사정을 듣고 스님 앞에 나아가 진심으로 참회를 합니다. 이렇게 해서 구제불능의 악인을 교화하다니 과연 우리 곁에 왔다 간 부처님이라는 말을 들을 만합니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으로부터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된 서평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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